[자신감] 하루 한 페이지 나를 돌아보는 글
“늘 비슷한 소재의 내용이라 좀 지루합니다. 재미난 얘기도 자꾸 들으면 지루한 범인데 힘들었던 얘기를 반복해서 얘기하면 독자들이 식상하지 않을까요? 또 이런 메시지는 가능한 심플하게 쓰는 게 중요합니다.” 한근태 작가
“원하는 곳에 도달하기 위해 용기를 내기로 했다고 했는데 원하는 곳은 어디고 용기는 어떤 용기인지, 스스로 원하는 것을 하는가 아닌가로 고생과 고통이 갈린다고는 하지만 책 읽고 글 쓰는 것이 고생일까, 고생이라면 뭘 위해서 이런 고생을 견디고 있다는 것인가….. 비유도 잘 와 닿지 않았습니다.” 김자옥 작가
8주 만에 무너졌다. 좋아하는 걸 잘하고 싶어 선택한 수업이라 잘 견뎌 낼 줄 알았다. 그들의 피드백을 감사하게 받아들여 내 것으로 만들려 했다. 쓴소리, 단 소리 기꺼이 내 몫이라 생각했다. 8주 동안 감정의 실금이 가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다고 애써 감추는 게 오히려 감정에 금을 키웠던 것 같다. 차라리 처음부터 감정을 열어 놨으면 달랐을 수도 있다. 겨우 붙잡고 있던 감정의 실금이 커지며 시야가 불투명해졌다. 며칠 째 허리가 잘린 글들이 쌓여가고 있었다. 잔잔한 호수 위를 떠있듯 생각이 멈춰있었다. 생각의 꼬리를 잡아 쓰려해도 몇 줄 넘기지 못했다. 낡은 엔진을 얹은 자동차가 한 뼘도 안 되는 방지턱을 넘지 못하는 꼴이었다. 이유를 찾아보려 했다. 이른 새벽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 봤다. 잔 돌이 체이듯 감정 몇 개가 걸린다.
잘 해내고 싶은 욕심.
마흔세 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늦은 나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돌아보면 늦었다 할 수 있지만 앞을 보면 지금이 가장 좋은 때라 생각했다. 글쓰기를 통해 당당하게 은퇴하고 싶었다. 글쓰기는 나이 들수록 나를 가치 있게 만들어 줄 거라 믿었다. 글을 쓸수록 자신감이 붙었다. 글이 좋고 나쁨을 떠나 좋아하는 걸 잘하기 위해 매일 노력하는 내가 좋았다. 좋아하는 걸 잘하고 싶은 건 당연하다. 시간을 쪼개 강의도 듣고, 꾸준히 책도 읽었다. 매일 쓰는 연습을 놓지 않았다. 지금껏 살면서 가장 열정적으로 매달렸다. 하루 한 페이지, 벽돌로 담을 쌓듯 한 장씩 쌓아갔다. 글을 쓸수록 부족한 부분이 드러났다. 벽돌의 틈을 줄눈으로 메워야 튼튼해지듯 부족한 부분은 책과 강연으로 메웠다. 잘 쓰기 위해 매달릴수록 조바심이 꿈틀댔다. 쇠는 충분히 달군 뒤 망치질을 해야 원하는 모양을 쉽게 만들 수 있다. 좋은 글도 연습과 공부를 통해 충분히 달궈져야 한다. 조바심이 앞서 덜 달궈진 쇠를 두드리면 원하는 모양을 낼 수 없다. 삐져나온 조바심이 보기 싫었는지 주변 분들이 한 마디씩 두들겨 주었다. 늦을수록 완성도를 위해 노력하라고 했다. 빨리 성과를 내려할수록 어쭙잖아 보인다고 했다. 그럴 때면 부끄러웠다. 그렇게 한 번씩 벌거벗겨지고 나면 의욕이 떨어졌다.
바닥난 글감
항상 촉을 세우고 다녔다. 다양한 책을 읽었다. 책에서 일상에서 글감을 찾았다. 보이는 것을 다르게 보려고 했다. 경험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 했다. 일상 속에서 배움을 얻으려 했다.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쉽지는 않았다. 모내기를 한 논엔 물을 가득 채워야 한다. 모가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 물이 차 있어야 한다. 물이 마르면 모가 자랄 수 없듯 글감이 마르면 글을 쓸 수 없다. 글을 써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글감이 마르지 않는 게 더 중요했다. 논에 공급되는 물량이 적으면 바닥이 드러난다. 요즘 들어 마른논처럼 글감이 말라가고 있었다. 핑계는 필요 없다. 노력이 부족한 것뿐이다. 노력으로 극복하지 못할 건 없다고 생각한다.
말을 잘 달리게 하려면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써야 한다. 못한다고 채찍만 쓰기보다 당근이 약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잘할 때 한 번 더 채찍질을 하면 한계를 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동안 당근에만 익숙했던 것 같다. 정작 필요한 채찍을 외면하고 있었다. 채찍을 주는 사람도 없었고, 스스로에게 채찍질할 용기도 없었다. 사실 나는 멘털이 약하다. 멘털이 약하다는 핑계로 당근만 주고 있었던 것 같다. 피드백을 받는 게 두려웠다. 쓴소리가 한 단계 올라설 수 있는 약인 걸 알면서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로 인해 상처 받을 나를 두려워했다. 결국 쓴소리 몇 번에 멘털이 무너졌었다. 회의감에 빠져 포기의 갈림길까지 갔었다. 며칠간 손을 놓고 나를 돌아봤다. 왜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 다시 생각해 봤다. 글을 통해 얻고 싶은 게 무엇인지 고민해 봤다. 왜 조바심이 나는지, 왜 밑천이 떨어지고 있는지 생각했다. 답은 알고 있다. 이 모든 노력을 과정이라 받아들이면 된다. 내일 당장 성과물을 제출하는 과제가 아니다. 1등을 위한 순위 싸움도 아니다. 단지 좋아하는 걸 잘하기 위한 노력만 이어갈 수 있으면 된다. 가을 수확 위해 논에 잡초도 뽑고 약도 쳐야 한다. 비바람에 쓰러진 벼는 일으켜 세워 줘야 한다. 매 순간 정성을 다할 때만 원하는 만큼 수확을 거둘 수 있는 건 당연한 진리이다. 좋아하는 걸 찾은 내가 자랑스럽다. 좋아하는 걸 잘하기 위해 시간을 쪼개는 내가 대견하다. 잘하고 싶은 걸 더 잘하기 위해 배움을 이어가는 내가 만족스럽다. 좋아하는 걸 잘하기 위해 부족함을 인정하고, 쓴소리도 달게 받아들이고, 실패를 과정이라 인정하게 될 때 내가 바라는 내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