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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Aug 04. 2024

글로 쓰면 보이는 것들

글을 쓰면 얻는 것들(3)

지하철에서 세 자리 나 차지한 채 잠든 아저씨, 옆 테이블에 들릴 만큼 큰소리로 대화하는 모녀, 깜빡이도 켜지 않고 끼어드는 앞차, 이들을 직접 본다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들 것 같은가요? 몰상식한 아저씨?, 배려를 모르는 모녀?, 싹수없는 운전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저도 그럴 것 같습니다. 대놓고 말은 못 하고 속으로 구시렁거렸을 것 같습니다. 이런 일은 집 밖에만 있지 않습니다. 가족과 주변에도 이해 못 할 일을 겪습니다.      


사춘기 자녀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입니다. 부모는 이미 투명 인간이 된 지 오래입니다. 말대꾸라도 하면서 목소리 들려주면 그나마 감사합니다. 어쩌다 상의도 없이 사고라도 치면 감당이 안 됩니다. 수습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목덜미 잡기 일쑤입니다. 


직장 동료나 상사는 어떤가요? 며칠 밤새며 준비한 자료를 자기 것인 양 채가는 상사, 거래처에 정성껏 공들여 놨더니 중간에서 채가는 동료, 알아듣게 말한 것 같은데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후배. 살아남으려면 경쟁이 당연하고, 경험이 부족하면 배워야 한다지만, 기본적인 상도덕을 무시하는 태도에 피가 거꾸로 솟습니다.

SNS를 7년째 해보니 별사람 다 만납니다. 근거 없는 비방은 애교로 봐줍니다. 내 글을 자기 글인 양 출처도 밝히지 않고 퍼가고, 피드백을 원해서 시간과 정성을 들였더니 모른 척하는 사람까지. 아무리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 사람의 인성까지 숨길 수는 없습니다. 선의를 베풀었지만, 악의로 되돌아오니 씁쓸했습니다. 

    

이제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그 일들에 다 일희일비했으면 지금쯤 온전한 정신으로 살지 못했을 겁니다. 다행인 건 글을 쓰면서부터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과 사람들에 대해 써봤습니다. 글로 쓴다는 건 보이는 것을 시작으로 보이지 않는 것까지 쓰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대상에 대해 쓰려면 온전히 대상에 집중해야 합니다. 집중하면 보이지 않았던 부분에까지 마음이 갑니다.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보려면 상대 행동을 곧이곧대로 보지 않게 됩니다. 그들에 왜 그랬는지 한 번 더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대상에 대해 올바로 쓸 수도 온전히 이해했다고 할 수 없을 테니까요.     


다시 글머리에 적었던 상황으로 돌아가 볼까요? 사실은 이랬습니다. 납기를 맞추기 위해 3일 밤낮을 꼬박 새운 아저씨는 지하철 의자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온기 탓에 곯아떨어졌습니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엄마를 위해 딸은 주변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큰 소리로 말해야 했습니다. 뒷자리에 양수가 터진 아내를 응급실에 데려가야 하는 남편에게 깜빡이는 중요치 않았습니다. 어떤가요? 이제 그들의 행동이 다르게 보이시나요?      


살다 보면 못마땅한 사람과 어울릴 수밖에 없습니다. 싫어도 싫은 티 내지 못합니다. 안 보고 살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어울려 살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들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이때 필요한 게 글쓰기입니다. 글로 쓰면서 다르게 보려고 노력하고 나와 다름을 발견하는 겁니다. 상대방이 몰라줘도 괜찮습니다. 오롯이 나를 위한 글입니다. 이런 글이 쌓일수록 내 마음은 점점 편안해질 것입니다. 마음이 편해지면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에도 변화가 생기겠지요. 그 변화 또한 온전히 나를 위한 것입니다. 사람 사이에서 이만큼 근사한 효과를 누릴 수 있다면 글을 쓰지 않을 이유 없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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