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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Oct 14. 2024

걱정에 꼬리 잡히지 않고 살기


잠들기 전에 고민을 오래 하면 수면에 방해가 되는 게 확실하다. 한 시간가량 저자 프로필 작성에 골똘해 있었다. 결국 속 시원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침대에 누웠다. 이대로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을 이어서 읽었다. 몇 장 읽으니 초점이 흐릿해진다. 11시였다. 둘째 딸에게 안방 불을 끄게 하고 나는 침대에 둘째는 바닥에 누웠다. 이대로 잠이 들길 바랐다. 잠이 들지 않았다.


선잠이 든 채로 계속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잠들기 전 고민했던 문제부터 회사일, 북토크 모집, 원고 수정, 강의 준비, 특강 일정 등등 꼬리를 이었다. 반듯하게 누워서 잠이 오지 않나 싶어 몸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오른쪽 얼굴이 눌려 불편할 뿐 잠은 오지 않았다. 다시 몸을 바로 누웠다. 양팔을 가슴에 올렸다가 내려놨다가 왼 팔만 배에 올려보고 오른팔과 왼팔을 번갈아 올려놓기도 했다. 몸을 왼쪽으로 돌려도 왼쪽 얼굴과 팔이 눌릴 뿐 잠이 오지 않았다. 뒤척이다가 시계를 보니 1시가 넘었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모르게 자고 있었다. 잠결에 시계를 보니 작은 바늘이 3을 가리켰다. 얼른 눈을 감았다. 1시간 뒤 알람을 울릴 터였다. 이대로 다시 깨버리면 낭패다. 다행히 다시 잠에 빠졌다. 


알람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몸을 일으키기 싫었다. 온갖 경우의 수를 떠올렸다. 30분 더 자면 몇 시에 나갈 수 있지? 한 시간을 더 자면 일기를 못 쓰는 데? 한 시간 더 잔다고 잠이 올까? 괜히 이랬다가 후회만 하지 않을까? 잡생각 걷어내고 몸을 이불밖으로 빼냈다. 4시 40분, 씻으러 욕실로 들어갔다.


5시 10분, 식탁에 앉았다. 일기장을 열었다. 펜을 잡았다. 첫 줄을 썼다. 그리고 생각했다. 걱정 탓에 잠을 설쳤다. 자고 일어나도 걱정했던 것 중 달라진 건 하나도 없었다. 밤사이 독서모임 단톡방에 철수님이 올려 준 글을 읽었다. 김창완 씨가 쓴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중 한 문장이었다.  


"그렇게 피곤해진 몸이 아침이면 다시 생기를 찾는 게 신기하기도 합니다. 아침이 와도 바뀐 건 거의 없지요. 어제의 고민거리가 저절로 사라졌을 리도 없고, 어제의 고단한 몸이 아침에 청년이 돼 있을 리 만무하지만 달라져 있어요. 뭐가 달라졌을까? 

아침 내내 그 생각을 해봤는데요. 결론은 그거더군요. 밤사이에 제게 일어난 일은 다른 일이 아니고 포기와 망각이었어요. 잠이라는 지우개가 쓸데없는 것 몇 개를 지워버린 거예요. 선뜻 잊을 수 있는 것도 지혜입니다. 용서이기도 하고."


잠들기 전 고민과 걱정이 자고 일어나도 달라질 게 없다는 건 누구나 안다. 내려놓지 못하기에 나처럼 걱정에 사로잡혀 잠을 설치기도 한다. 그렇다고 걱정을 내 의지대로 스위치처럼 껐다 켰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쓸 뿐이다. 잠이라도 편히 자고 싶어 의식적으로 생각에서 몰아내려고 발버둥 친다. 그런들 몰아내지지 않는 건 변함이 없다.  


잠은 그렇다 치더라도 자고 일어난 새 아침은 적어도 다르게 시작할 권리가 있다. 밤 사이 걱정을 다시 끄집어내 붙잡고 있을지, 아니면 새 아침에 맞게 새로 해야 할 일에 집중할지를 말이다. 걱정은 그 일이 끝나기 전까지 나를 따라다닌다. 걱정 때문에 정작 해야 할 일을 못하면 나만 손해이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김창완 작가의 글처럼 잠시 포기와 망각이 필요한 게 아닐까? 적어도 새롭게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는 말이다. 


해결되지 않는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아침을 값지게 보낼 수 있고 나에게 의미 있는 일을 했다. 일기를 썼고, 짧은 글 한 편을 블로그 남겼고, 에르난 디아스의 소설 <트러스트>를 출근길 운전하며 들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아침에 든 생각을 정리해 또 한 편 글을 쓰고 있다. 여전히 걱정은 해소되지 않았지만 해야 할 일은 하나씩 끝냈다. 만약 할 일을 하지 않았다면 그 또한 걱정이 되었을 테다. 


삶은 끊임없는 걱정의 굴레에서 꼬리 잡기를 하는 게 아닐까? 걱정 탓에 꼬리를 잡히면 제 발로 멈춘다. 반대로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당장 할 일을 하면 꼬리 잡혀 주저앉을 일은 없다. 걱정에 꼬리를 내주지 않고 할 일을 해내며 새 아침을 맞는 게 그나마 조금 더 나은 인생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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