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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Oct 17. 2024

관계를 망치지 않는 부탁의 기술

부탁의 성패는 타이밍이 결정짓는다

"실장님, 저희 이러다 이번 강연 망하는 거 아니겠죠? 아직 30자리 더 채워야 하는 데 광고도 한계에 다다른 것 같은 데요."

"너무 걱정하지 마. 원래 강연 당일에도 신청하는 사람 있어. 조금만 여유를 가져."

최실장은 김대리에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이 타기는 마찬가지였다. 사실 최실장도 당황했다. 작년에만 해도 공지 후 이틀 만에 만석인 강연이었다. 그만큼 티켓 파워가 있는 강사였다. 그 사이 박창국강사의 인지도가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다양한 매체 인터뷰 기사가 끊이지 않을 만큼 고공행진 중이었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관심이 옮겨간 거라고 짐직했다. 하루가 다르게 흥미 끄는 콘텐츠가 쏟아지는 요즘이다. 굳이 강연장을 찾지 않아도 유튜브를 통해 유명인사를 만날 수 있다. 아마도 과도기이라고 생각됐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날짜가 다가올수록 최실장은 가슴이 쪼그라드는 느낌이었다. 뭐라도 해야 했다. 카카오톡을 열었다. 발을 담근 단톡방이 30여 곳이다. 이 중 강연 성격과 맞는 방에는 슬쩍 공지를 올려도 괜찮다. 유난히 공지에 신경 쓰는 단톡방도 있다. 방장의 허락 없이 올렸다가는 그날도 강퇴당할 만큼 엄격하다. 불행히도 그런 방은 1천 명 이상 활동하는 곳이라 선뜻 포기할 수 없었다. 방장에게 굽신거려서도 공지를 해야 했다. 얼마나 효과가 날지는 미지수였지만 아무것도 안 할 수 없으니 문을 두드렸다.


효과는 미미했다. 30곳 중 25곳에 공지를 올렸고 사흘 동안 5명 신청받았다. 여전히 25자리 남았다. 돈을 주고 사람을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랬다가는 강사 이미지에도 스크래치가 남는다. 당연히 최실장 회사 이미지도 나락이다. 이제는 수익을 따지기보다 자리 채우는 게 먼저다. 순수한 의도로 강연장을 찾아 줄 사람이 필요했다. 문뜩 생각이 스쳤다. 전화기를 들었다.


"강사님 안녕하세요. 최찬수 실장입니다. 많이 바쁘시죠? 통화 잠깐 괜찮으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실장님. 통화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다음 주에 예정된 강연에 혹시 강사님이 초대하고 싶은 분이 계신가 해서요? 이번에 주제도 많은 사람이 들길 바란다고 처음부터 말씀하셨던지라."

"그러게요. 저도 야심 차게 준비한 내용이라 주변에서도 관심이 많더라고요. 몇몇은 이미 신청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아! 그러셨군요. 그래서 말인데요. 혹시 주변에 더 참석을 희망하시는 분이 있다면 저희가 초대해도 될까요? 진작에 말씀드려서 먼저 초대하는 게 순서였는데요. 지금이라도 괜찮으시면 강사님 지인 초대하는 건 어떨까요?"

최실장은 차마 빈자리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당연히 강사도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을 터였다. 목구멍까지 나온 말을 꾹꾹 눌렀다.

"그래도 된다면 저야 좋죠."   

그도 눈칫밥 30년 차다. 최실장이 무슨 의도로 말하는지 알아챘다. 그도 대놓고 말할 입장은 아니었다. 애쓰는 그에게 몰인정하게 모른척할 수 없었다. 다행히 연락하면 올 이들이 제법 있었다. 그도 진작에 물어볼 작정이었지만 유료 강의인지라 차마 먼저 묻지 못했었다.




최실장이 준비한 강연은 성황리에 마쳤을까요? 강연의 흥행은 곧 수익으로 이어집니다. 한 자리마다 수입과 연결되지요. 그러니 초대는 손익분기점을 따진 후 정해야 할 것입니다. 혹은 초대를 하지 않는 게 형평성에도 맞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빈자리가 많은 강연을 서로가 원하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지어내면서까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이 글을 씁니다. 혼자서 북토크를 준비해 보니 몇 가지 문제를 발견했고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했습니다. 아직 경험이 적어서 적절한 대처를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무엇보다 사람을 모으는 게 가장 큰 스트레스였습니다. 앞에 적은 것처럼 별 짓을 다해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노력한 만큼 성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실망도 좌절도 원망도 한 게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주저앉지는 않았습니다. 내 손으로 시작한 일 내 손으로 마무리해야 했습니다. 


역할 구분을 하자면 사람을 모으는 건 주관자의 몫입니다. 이를 연사나 주변 사람에게 떠넘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인들에게 부탁하는 게 더 조심스러웠습니다. 모르면 모르고 넘어가지만 부탁하는 순간 같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들이 원치 않아도 말이죠. 하지만 시간에 쫓기니 뒤늦게야 몇몇 지인에게 부탁하기에 이릅니다. 당연히 그들이라고 달갑지 않습니다. 북토크를 한다고 진작에 알리기는 했지만 참석을 종용하지는 않았습니다. 선택은 온전히 그들의 몫이니까요. 상대방도 미리 공지를 읽었어도 참석하지 못할 사정이 있으니 응답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들도 한편으로 미안해하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니 뒤늦게 연락 와 사정하니 난감할 수밖에요.


사정이 이러니 초대한 연사에게도 점점 미안한 감정만 들었습니다. 괜한 짓한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정원이 채워지지 않은 강연장에서 어떤 생각이 들지 짐작이 갔으니까요. 이번 일을 겪으면 가장 크게 깨달은 한 가지는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어떤 타이밍이냐면 상대에게 부탁하는 시점입니다. 부탁의 전제는 내 말을 들어주길 바라는 겁니다. 바꿔 말하면 상대방에게도 고민할 시간을 충분히 줘야 한다는 겁니다. 시간에 쫓겨 부탁하면 상대방은 난감할 것입니다. 시간이 넉넉했다면 들어줄 수 있었던 일도 시간에 쫓긴다면 안 될 가능성이 더 큰 거죠. 


참석 형태가 유료이든 초대이든 부탁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머뭇거리면 시간만 보냅니다. 그 사이 자리를 다 채웠다면 걱정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서두르는 게 서로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거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주변 사람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미리 부탁했어도 자리를 다 채우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보다 미리 부탁했다면 서로가 불편해지는 건 막을 수 있었을 겁니다. 일찍부터 상대방도 내 사정을 알았다면 다른 방법으로 도왔을 테고요. 초대한 연사도 함께 고민했을 겁니다. 할까 말까 망설여질 때는 무조건 하라는 말이 맞습니다. 부탁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지나고 보니 경험하고 나니 깨달았습니다. 다음번에는 같은 실수 하지 않을 겁니다. 큰 수업료를 치렀으니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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