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살아도 될 줄 알았습니다.

[직업] 하루 한 페이지 나를 돌아보는 글

by 김형준

2년째 매일 글을 쓰고 있지만 시작이 쉬운 적은 없었습니다. 한 시간을 멍 때리기도 하고, 한 문장도 시작 못하기도 하고, 한 문장에서 막히기도 하고, 결말을 못내 며칠을 묵혀두기도 했습니다. 마음대로 안 될 땐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의구심을 갖기도 했습니다. 시작하지 않으면 마음도 몸도 편할 텐데 왜 이렇게 고생스러운 일을 사서 하는지 묻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쓴다고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쓴다고 내 아이들이 나를 알아주는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쓴다고 월급이 오르거나 승진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렇게 안 쓰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것 같아 포기하지 못합니다.


마흔이 되면 기회가 적어질 것 같았습니다. 2,30대 때 바라본 마흔의 삶이 그래 보였습니다. 그들처럼 사는 게 당연한 공식으로 준비해왔습니다. 직장 내 입지가 좁아져도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라고 배웠습니다. 직장은 전쟁터지만 직장 밖은 지옥이 될 거라 했습니다.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 창업을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경력과 적성은 무시하고 수익 좋은 프랜차이즈가 노후 준비의 전부였습니다. 그렇게 모든 돈을 쏟아붓고 화려하게 다시 시작합니다. 시작과 동시에 직장보다 못 한 경험이 시작됩니다. 어쩌면 월급쟁이가 제일 편했다고 합니다. 주말이면 쉴 수 있었던 직장생활을 그리워합니다. 공휴일이면 가족들과 나들이 갔던 때를 그리워합니다. 휴가철이면 한 껏 기분을 내며 떠나던 여행을 그리워합니다.

이제 그들에게, 주말은 일주일 중 가장 바쁜 날입니다. 공휴일도 문 열고 손님을 기다리는 날입니다. 휴가철은 손님이 끊어질 수도 있는 두려운 날들입니다. 그들의 모습은 새로운 기회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안이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모아둔 돈이나 물려받을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대안도 없고 돈도 없으니 이렇게 살아도 될 줄 알았습니다.


직장을 떠나기 전 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고민했습니다. 등 떠밀려 내 자리를 잃기 전에 무언가 해 놓아야 할 것 같았습니다.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으로 생계유지가 되는 지금이 적기라 생각했습니다. 월급은 손대지 않고 해 볼 수 있는 일을 찾았습니다. 제일 먼저 스마트 스토어를 기웃거려 봤습니다. 물건도 올려 팔아보고, 팔 수 있는 물건도 찾아봤습니다. 남는 시간만 잘 활용하면 학원비 정도는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어디나 노력 총량의 법칙이 존재합니다. 시간을 쪼개 투자하는 만큼 수익은 보장됩니다. 물론 그 이면엔 남다른 안목과 든든한 유통망도 필요할 겁니다. 도전해보면 나름의 안정된 루트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가능성을 확인하니 다른 곳으로 눈이 돌아갑니다. 끈기의 문제가 아닙니다. 다양성의 대한 실험입니다. 직장을 다니며 어떤 일까지 가능한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또 나에게 맞는 일을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책을 읽으니 글이 쓰고 싶어 졌습니다. 글을 쓸수록 책을 읽어야 했습니다. 매일 둘 다 하기엔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둘 중 하나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글과 책, 나이 들어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이라 확신했습니다. 아무것도 재지 않고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건을 따졌다면 시작도 못 했을 겁니다. 글쓰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마흔세 살, 그때까지 회사에서 공문 쓰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마저도 여러 번 고친 뒤 보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제가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의심했다면 시작조차 못했을 겁니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고민했다면 더 두려웠을 겁니다.


하고 싶게 되니 더 잘하고 싶었습니다. 더 잘하려고 노력하니 좋아지게 되었습니다. 좋아하게 되니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글쓰기에도 양질 전환의 법칙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아는 1만 시간의 법칙입니다. 좋아하는 걸 위해 하루에 몇 시간을 투자할지는 자신의 몫입니다. 잠도 줄이고, 티브이도 안 보고, 술자리를 안 갖고 책 읽고 글을 씁니다. 1만 시간은 너무 멀어 보입니다. 마흔 다섯이 되면서 조바심이 스물스물 올라옵니다. 버텨야 한다고 눌러 보지만 누르면 삐져 나오는 고무공 처럼 조바심은 고개를 쳐 듭니다. 조바심이 모든 걸 그르칠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걸 한 번에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 쌓아놓은 게 없지만 그래도 무너질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악으로 버티고 깡으로 써 내려갑니다. 버티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들처럼 그렇게 살아야 하는 줄 알았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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