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집착에서 비롯된다"라고 제가 말했습니다. 왜 집착하면 불안해질까요? 집착은 손에 쥔 걸 놓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손에서 놓지 못하는 데 이유가 있을 겁니다. 직장인에겐 월급이, 부모에겐 자식이, 투자자에겐 투자금이, 인간관계에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저마다 어느 정도 가중치를 두느냐에 따라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다를 겁니다. 하지만 손에서 놓지 못한다면 분명 꽤 높은 비중을 차지할 것입니다. 함부로 포기하지 못할 만큼 말이죠. 어쩌면 그것 하나만 바라보는 이들도 분명 있습니다.
집착을 내려놓으면 몸도 마음도 편해진다는 걸 머리로는 압니다. 불행히도 아는 대로 행동하기에는 그것들은 삶에 꽤 크게 자리 잡고 있을 겁니다. 나만 편해지려면 얼마든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정이 있고 혼자 살 수 없기에 어떤 식으로든 지고 가려고 합니다. 그래야 사람답게 살 수 있고 더 큰 의미와 가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월급은 안락한 삶을 보장해 주고, 자식에 대한 투자는 의무이자 기대이고, 던 많은 돈과 사람은 충만한 인생을 보장해 줄 것입니다.
집착 때문에 안달복달하지만, 한편으로 그게 삶을 지탱하는 힘일 수도 있습니다. 의미와 가치를 두고 집중하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과정과 결과에도 차이가 날 겁니다. 겉으로 보기에 눈살을 찌푸릴 만큼 과몰입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정작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겐 지극히 당연한 행동일 것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삶의 목적을 어디에 두느냐가 다르기 때문이죠. 나에게 지극히 정상이지만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누구의 행동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그런 기준은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요.
직장을 아홉 번 옮기면서 직장만 고집했던 것도 집착입니다. 분명 그 사이 다른 선택할 기회는 있었지만 용기 내지 않았습니다. 두려웠습니다. 직장을 그만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죠. 설령 용기 내 시작해도 그게 내 일인지, 그 일을 더 잘할 수 있을지 불분명했죠. 다른 선택지에 눈을 두는 게 오히려 직장에 더 집착하게 만든 건 아닐까 싶습니다. 당장에는 직장만큼 안정적이고 빠르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게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조금만 버티면 더 좋은 때가 올 거라는 막연한 기대도 한몫했을 것입니다.
공기가 빵빵한 공이 높이 튀어 오르는 법입니다. 불만으로 가득했던 과거 때문에 어린아이들에게 더 잔소리를 했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너희들은 나처럼 살지 말라는 마음으로요. 이 또한 다른 형태의 집착이었던 것 같습니다. 서로가 공감하는 방법은 아니었지만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 포장했죠. 그러니 아무렇지 않게 아이들에게 상처되는 말을 내뱉었습니다. '다 너희들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정당화시켰죠. 그러니 뜻대로 행동하지 않는 모습에 더 집착하고 더 불안해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20년 넘게 술을 끊지 못했던 것도 관계에 집착했기 때문이라고 여깁니다. 술이 좋아서 마신 것 같지 않습니다. 술을 마셔야 사람들과 이어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실제로도 관계의 시작도 술이고, 인연을 이어가는 과정에도 술이 빠지지 않았습니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과는 만나도 할 게 없다고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면 남들도 똑같이 생각할 거로 믿었고, 그러니 술을 끊는 건 관계의 단절이나 다름없었죠. 술 때문에 관계가 돈독해진 건지, 관계가 돈독해 술을 끊을 수 없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발전시키는 건강한 집착은 필요합니다. 어떤 일을 하든 집착이 곧 그 일의 성과를 내는 데 일조하기 때문이죠. 성과를 내기까지 불안할 것이며 불안할수록 더 잘하려고 집착할 것입니다. 이는 선순환으로 이어집니다. 좋아하는 일을 더 잘하고, 목표를 달성하는 원동력인 것이죠. 이런 불안과 집착은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반대로 이 둘이 없다면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듯한 인생이 되고 말 겁니다. 한편으로 건강하지 못한 집착과 불안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과거의 저처럼 말이죠.
불안하기 때문에 집착할까요? 집착하기 때문에 불안해질까요? 중요한 건 이 둘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느냐 일 것입니다. 현실에 안주할 목적으로 반복되는 일상에 집착하는 사람 있습니다. 내가 이루지 못한 걸 자식을 통해서 이루지 못할까 노심초사합니다. 더 좋아질 것 없는 그저 그런 인생인 걸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합니다. 여기서 벗어나 본 적 없고 벗어나면 큰일이라도 날까 싶어서요. 그러니 더 불안해지고, 불안해질수록 더 집착을 키우는 겁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겠지요.
모든 결과에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대가를 치르는 과정은 불안과 집착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대신 이 과정을 거치면 오히려 불안과 집착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겠죠. 대가를 치르지 않고 손에 넣는 건 그만큼 쉽게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애초에 내 것이 될 수 없는 것들이죠. 그런 것들에는 집착도 불안도 생길 리 없죠. 어떤 면에서 불안과 집착은 자신을 성장시키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건강한 면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요. 지금보다 한 단계 더 나아지고 싶다면 불안과 집착을 활용해 보면 어떨까요? 방법은 직접 찾아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