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갈 땐 당신이 운전해. 나도 옆자리에 앉아 편히 좀 가보자."
입을 닫고 운전한 지 6시간 만에 내뱉은 첫마디였다. 아내도 "뭔 소리야? 갑자기 왜 그래?"라며 당황해했다. 아내 말대로 나도 갑자기 입안에 고였던 침이 아무 저항 없이 흘러내리듯 입 밖으로 샌 말이었다. 그 한 마디 하겠다고 6시간 내내 온갖 의심과 억측으로 상상의 나래를 폈으니 말이다.
연휴를 맞아 한 달 전부터 준비된 여행이다. 광주에서 처가 형제 모임을 시작으로 전주 한옥 마을까지 다녀오는 2박 3일 여정이다. 네 식구가 시간 맞추는 게 점점 어려워진다. 두 딸도 자기 세상을 만들어 가는 중이라 더더욱 그렇다. 이번 여행은 그나마 긴 연휴와 큰딸의 희생으로 가능했다. 그러니 모든 순간에 감사해하고 추억이 될 수 있게 각자 노력이 필요했다. 앞서 여행에서도 내 마음 상태에 따라 분위가 달라졌다는 걸 잘 안다. 감정 조절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나 때문에 망치고 망칠뻔한 순간이 꼭 있었기 때문이다.
고속도로에 당연히 차가 몰릴 거라 짐작했다. 빨리 출발할수록 정체 구간에 머무는 시간이 짧아진다는 걸 잘 안다. 새벽 5시 반 출발을 예고했지만, 6시에 집에서 나섰다. 서울을 빠져나오면서부터 정체가 시작됐다. 여느 주말 수준일 거로 짐작했다. 첫 휴게소에 도착한 게 출발 후 2시간 만이었다. 휴게소는 명절을 방불케 했다. 우리 넷은 사람 많은 걸 싫어한다.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큰딸은 설렁탕 반을 남겼고, 작은딸은 치즈 돈가스 중 고기만 먹었다. 나와 아내는 아메리카노 한 잔씩 들고 다시 차에 탔다. 휴게소를 빠져나오면서부터 다시 정체는 시작됐다. 뒷자리 두 딸은 이미 잠들었다. 옆 자리 아내는 스마트 폰으로 무언가 열심히 찾는 눈치였다. 차는 여전히 걷는 속도보다 느렸다. 운전이 싫고, 막히는 게 싫은 나는 슬금슬금 짜증이라는 감정에 아내 몰래 먹이를 주고 있었다.
엉덩이밖에 꼼지락 할 수 없는 공간에 갇힌 건 넷 다 마친가 지다. 운전하는 나를 제외하면 셋은 그나마 자유롭다. 그러니 운전자를 배려한다면 운전하는 동안 힘들지 않게 해 주길 내심 바랐다. 말주변이 없는 터라 옆자리 아내나 두 딸이 무슨 말이든 건넸으면 했다. 이른 시간이라 잠에 취한 두 딸은 차치하더라도 적어도 아내는 이런 나를 이해해 줄줄 알았다. 여행 때마다 아내는 나름 제 역할을 충실히 해줬다. 어쩌면 말수가 적다는 핑계로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 나를 상대하기 어려워했을지 모르겠다. 아내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왔을 테다.
이제까지 노력해 왔다는 걸 알았지만, 어제 아내 태도는 이전과 달랐다. 끝을 알 수 없는 정체 구간 내내 혼자 운전하는 기분이었다. 한 시간 넘게 아내의 손과 눈은 스마트 폰을 떠나지 않았다. 그 모습을 곁눈으로 보며 나도 말을 걸 수 없었다. 아니 점점 말하고 싶지 않았다. 말하고 싶지 않은 감정은 점점 짜증으로 바뀌었다. 짜증은 아내에 대한 원망에서 시작됐다.
2시간 뒤 기름을 넣기 위해 다음 휴게소에 멈췄고, 정체도 어느 정도 풀린 것 같았다. 출발하고 5시간 만이었다. 나는 이 시간 내내 대화 다운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속을 가득 채운 짜증은 그대로 표정과 몸짓으로 드러났다. 눈치 빠른 아내는 내 표정과 몸짓을 읽고 말을 삼가는 듯했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을 거다. 휴게소에서도 나는 화장실에만 다녀왔다. 아내와 두 딸 손에는 간식거리가 하나씩 들렸다. 아내는 내 것도 챙겨 왔다. 먹어보라고 건네는 손을 쳐다도 안 보고 거절했다. 이유를 모르는 아내도 표정이 바뀌고는 문에 달린 수납함에 욱여넣었다. 이때부터 2차전이 시작됐다.
나는 나대로 서운한 감정과 짜증이 멈추지 않았다. 아내도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고 잔뜩 인상 쓴 나를 보고 입을 닫았다. 입은 닫았어도 아내는 여전히 스마트 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검색을 하는지 대화를 나누는지 손은 계속 움직였다. 도로 정체로 운전대만 잡고 있어 멍청해진 것 같은 나를 챙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지 의심이 들었다. 나는 의심에도 먹이를 주기 시작했다.
의심의 가장 큰 특징은 꼬리를 문다는 것이다. 한 번 문 꼬리는 상상하는 대로 자란다. 아내가 바라보는 화면에 어떤 내용이 있을지 내 마음대로 상상했다. 귀띔이라도 해주길 바랐다. 심각한 문제라면 같이 고민하자 말할 줄 알았다. 나도 나지만, 아무 말 없이 스마트 폰 화면만 본 아내도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핑계대자면 아내가 먼저 이런저런 일로 대화하고 검색 좀 하겠다 말해 줬으면 엉뚱한 상상은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쓸데없는 상상은 결국 나를 아빠나 남편이 아닌 운전기사로 여기게 했다. 그러니 더 핸들 잡은 손을 가만히 두지 못했고,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고, 얼굴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참다못해 6시간 만에 내뱉은 말이, "올라갈 땐 당신이 운전해. 나도 옆자리에서 편히 좀 쉬자"였다.
아내 입장에선 그 말이 뜬금없고 이해되지 않았을 것 같다. 어쩌면 스마트 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나에게 차마 말하지 못할 일이 생겼었을 수도 있었다. 눈치 보며 말할 때를 두고 보고 있었을지 모른다. 점점 굳어지는 내 얼굴을 보고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을 수 있다. 아니면 내가 먼저 대수롭지 않게 농담을 건넸어도 된다. 나도 괜한 자존심에 아내의 태도를 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면 내가 먼저 말하는 게 당연하다. 아내도 나도 서로에게 해야 할 말을 때를 놓쳤기 때문에 이지경에 이른 게 아닐까?
처형네 집에 장모님과 네 형제가 모였다. 하룻밤 사이 아내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냉랭한 분위기를 드러내지 않으려 과장되게 웃어 보이기도 했다. 다행히 우리는 관심사에 끼지 못했다. 오늘 아침 다음 일정을 위해 준비하는 동안에도 서로에게 눈길 주지 않았다. 형제들과 인사를 나누고 다시 차에 타면 아내는 분명 어제보다 더 차갑게 나를 대할 거다. 다른 문제로 이전에도 그랬다. 그때도 나는 툴툴거릴 뿐 문제를 제대로 마주하지 않았다. 풀지 못한 감정은 그대로 쌓이기 마련이다. 그동안 쌓인 감정에 또 하나 덧대졌다. 해결방법은 단순하다. 속마음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내가 아내에게 서운했던 점, 아내가 나에게 못마땅해하는 부분을 솔직히 말하는 거다. 말하면 오해는 풀리고 의심은 해소된다. 설령 더 크게 싸우더라도 찌꺼기를 남기지 않는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나는 솔직히 자신 없다. 조리 있게 내 감정을 설명하지 못하겠다. 이렇게 글로 써봐도 내 마음이 제대로 표현될지 모르겠다. 괜한 오해만 더 키우지 않을까 걱정된다. 부딪치지 않는 게 서로를 배려하는 걸로 여겼다. 내가 한 번 더 참고, 아내가 한 발 물러서주고, 그렇게 슬쩍 모른 척 넘기는 게 익숙했던 것 같다. 그건 정답이 아니었다. 이제까지 쌓인 감정이 이번 일을 키운 게 아닐까 싶다. 할 말이 있으면 그때 그때 했어야 했다. 함께 살아온 시간에 빗대에 한 번 용기 낼 필요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때문힌 곳을 끄집어내 깨끗이 빨고 햇볕에 말려야 뽀송해질 것이다. 그게 부부관계가 오래 건강하게 유지될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