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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속에 있어야 파도를 탈 수 있다

by 김형준


"점심 먹으러 오는 것도 이번 주가 마지막입니다. 저 퇴직합니다."

"안 온다고 하니 서운하네요. 요즘 경기도 안 좋은 데 하는 일도 잘 되길 바랄게요."

2021년 1월부터 주중 점심을 먹어왔던 샐러디 매장 사장에게 퇴직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동안 든 정 때문인지 많이 아쉬워했습니다. 한편으로 자영업자로 요즘 경기를 피부로 체감하시기에 걱정이 담긴 조언도 해주었습니다. 주변 아파트형 공장 근로자도 점심밥 아끼려고 매장 찾는 이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합니다. 경기가 나빠지면 제일 먼저 먹는 걸 줄인다는 말처럼요. 비단 이곳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제 주변 어떤 직종이든 힘들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퇴직하는 저를 응원하면서도 걱정이 담긴 한 마디도 빼놓지 않습니다.


서른 살부터 건설업에 몸담아 왔습니다. 20년째 체감한 결과 어느 해도 경기가 좋아졌다고 말하는 걸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해마다 건설 경기는 부정적인 전망이 우세했습니다. 그런 탓에 규모가 작아 오래 버티지 못하는 기업도 많은 반면, 그 와중에도 경쟁력 갖춘 기업은 해마다 우상향을 이어온 기업도 있습니다. 이는 어느 산업이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경기가 좋지 않아도 누군가는 살아남아 승승장구하고, 누구는 얼마 버티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흔히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라고 말하는 것처럼요. 짐작 건데 한두 해 만에 꽃 피는 봄이 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더 나빠지지 않길 바라는 게 더 희망적일 수 있습니다. 현상만 유지해도 버틸 수 있을 테니까요.


상황이 이러니 퇴직할 시기를 결정하는 것도 고민이 되기 마련입니다. 이왕이면 파도가 높을 때 올라타야 서핑을 제대로 만끽하는 것처럼 말이죠. 문제는 그 파도가 언제 올지 아무도 모른다는 겁니다. 경기가 좋아질 시기도 파도가 올 때를 맞출 수 있는 사람은 없죠. 서퍼들은 높은 파도에 올라타기 위해 잔잔한 바다에서도 보드에 올라탑니다. 계속 몸을 움직이며 파도에 적응하고 파도가 올 때를 기다리고 있는 거죠. 커다란 파도 왔을 때 뛰쳐나가면 이미 파도는 지나가고 없을지 모릅니다.


경제 상황만 보면 지금은 월급쟁이가 마음 편할 수 있습니다. 자리만 지킬 수 있다면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이 가정에 보탬이 될 것입니다. 적어도 현상 유지는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저도 한편으로 지금이 맞는지 의심해 보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인 큰딸이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만이라도 직장에 다녀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아마 3년 버티고 나면 작은딸이 고등학생이 되고 다시 대학에 갈 때까지 버텨야 할 상황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때면 60살을 바라볼 때입니다. 그때가 돼서 퇴직을 하려고 마음먹었는데 지금보다 경기가 더 안 좋아졌으면 어쩌죠? 다시 꽃 피는 봄이 오길 기다려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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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든 경제가 잘 돌아갈 때 시작하는 게 좋다는 걸 모르는 사람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갈수록 불확실이 커지는 중입니다. 예측은 더더욱 어려워지고요. 이런 상황에서 확신할 수 있는 건 지금에 집중하는 것뿐입니다. 알 수 없는 내일을 걱정하기보다 내 힘이 닿는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죠. 오늘 열심히 산다고 찬란한 내일을 맞는 건 아닙니다. 대신 하루하루 버텨내며 큰 파도가 왔을 때 올라탈 수 있게 감각을 잃지 않는 거죠. 저도 같은 심정으로 퇴직을 결심했습니다. 이제까지 8년을 직장과 내 일을 해오며 버텨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성공 경험했고 시행착오도 겪었습니다. 어떤 영향에도 쉽게 넘어지지 않을 잔근육을 키워왔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나를 믿고 오롯이 내 시간의 주인이 되는 도전을 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장밋빛 미래만 기대하지 않습니다. 경기는 지금보다 더 최악으로 이어질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몇 달안에 가파른 상승세로 돌아설 수도 있고요. 중요한 건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그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로 성공하고 싶다면 온전히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죠. 운도 실력이고,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고 했습니다. 운이 찾아오는 것도 살아남았을 때 가능하고, 실력을 키워야 강해질 수 있습니다. 백 날 모래 위에서 서핑보드 중심 잡고 서봐야 실력은 늘지 않습니다. 몇 시간이라도 바다에서 파도에 올라타는 연습할 때 내 실력이 됩니다. 저도 바다에서 살아남으려면 계속해서 손발을 움직여야 합니다. 꼴은 엉망일지 몰라도 적어도 물속으로 가라앉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버티다 보면 어느 순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을 테고요. 운이 좋으면 파도에 떠밀려 눈 깜짝 사이 닿고자 하는 곳에 도착해 있을지도 모르죠.


한발 물러나 바라만 보던 세상 속으로 이제 들어갑니다. 두렵고 불안합니다. 한 편으로 설레고 기대됩니다. 저는 당연히 후자에 더 집중할 것입니다. 남에게 내어 준 내 시간을 이제 나만을 위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내가 주인이 되는 시간을 더 가치 있고 즐거운 일을 하는 데 사용할 것입니다. 그 시간은 나를 더 쓸모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줄 테고요. 그런 매일이 쌓이다 보면 경기도 좋아지고, 실력도 출중해지고, 나름 팬덤도 생길 것입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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