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원인을 아시나요? 구름 속 수증기가 뭉쳐 물방울이 되면서 땅으로 떨어지는 걸 비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비 올 때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라고 표현합니다. 왜 우리는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고 말할까요? 아마도 한동안 메말랐던 땅을 빗방울이 적시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을 우리는 땅에서 얻습니다. 땅에서 나는 모든 것들에는 물이 꼭 필요하죠. 그 물은 구름이 만든 빗방울이고요. 바꿔 말하면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땅을 적시고 물기를 먹은 땅은 다시 새로운 생명을 틔우는 순환이 일어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순환이 비가 내리면서 시작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땅에 입장에서 비는 시작이면, 반대로 구름에게 비는 끝을 의미합니다. 땅에서 올라온 수증기가 뭉치면서 무게가 늘어나고 무게를 이기지 못한 물방울이 땅으로 떨어지게 되죠. 한바탕 물방울을 퍼붓고 나면 구름은 사라지고 맙니다. 비를 내리기 위해 구름이 만들어졌고, 비를 내린 구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죠. 한순간 자기 역할에 충실하며 비를 뿌리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땅에서 올라오는 수증기로 인해 다시 구름이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시작과 끝이 무한 반복되는 게 자연입니다.
우리 사는 모습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시작과 끝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게 우리네 인생인 것 같습니다. 태어나고 죽고, 입학하고 졸업하고, 취직하고 퇴직하고, 만나고 헤어지고, 잠들고 깨고, 먹고 싸고, 싸우고 화해하고, 화내고 후회하고, 성공하고 실패하기를 반복하는 게 인생이죠. 어느 하나만 평생 계속되는 일은 없습니다. 반드시 시작이 있으면 끝이 오는 법이죠.
성인이 되고 26살에 사업을 시작했고 4년 만에 실패를 맛봤습니다. 30살에 건설회사에 입사했고 42살까지 9번 회사를 옮겼습니다. 그 사이 결혼 생활을 시작했고 두 딸도 태어났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책을 읽기 시작했고, 또 어느 날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책도 첫 페이지와 마지막 페이지가 있었고, 글 한 편도 첫 단어로 시작해 마침표로 끝이 났습니다. 직장 생활이 영원하지 못할 걸 알기에 그 끝이 두려웠습니다. 끝에서 근근이 시작하기보다 할 수 있을 때 하고 싶은 걸 찾아 다시 시작해 보고 싶었습니다. 직장에 다니며 두 가지 세 가지 일을 새로 시작했습니다. 어떤 시작은 보잘것없이 끝났습니다. 다른 시작은 실패했지만 얻는 게 있었습니다. 한 번씩 부딪치며 세상이 호락하지 않다는 걸 배웠습니다. 또 시작이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끝이 난다는 것도 다시 깨달았습니다. 중요한 건 그 끝이 끝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죠. 하나의 문이 닫히면 새 문이 열린다는 의미입니다. 구름이 비가 되고 비가 땅을 적시고, 젖은 땅에서 다시 구름이 만들어지는 것처럼요.
오늘, 마지막 출근입니다. 8년을 꽉 채운 직장입니다. 그동안 이곳에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여느 직장인처럼 실수도 하고 잔소리도 듣고 성취감도 맛보고 동료애도 느끼고 좌절도 경험했습니다. 또 월급으로 번듯한 집에서 모자람 없이 두 딸을 키웠고 사람 구실할 수 있었습니다. 하루 9시간 직장에 매였지만, 그 덕분에 습관적으로 나머지 시간을 나에게 투자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8년 동안 꾸준히 성장해 준 회사가 뒤에 버텨줘서 매일 읽고 쓰기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8년 전 이 회사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좋은 감정으로 끝맺을 수도 없었을 것 같습니다.
내일, 다시 출근합니다. 이제는 나를 위해 일하는 직업입니다. 남은 평생 이 일을 할 각오로 시작합니다. 이 일을 끝낼 때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내 역할에 충실했고, 많은 이들을 도왔고, 모든 면에서 충만한 삶을 살아낸 나를 향해 미소 짓는 겁니다. 누구의 기준이 아닌 오롯이 나로 살아낸 나에게 말이죠. 다행입니다. 하나의 끝을 잘 마무리하고, 다시 열릴 문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어서요. 그동안 수고한 나에게 감사를 전하고, 앞으로 더 수고할 나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