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12일 첫 번째 글
둘째 책상 위에는 항상 잡동사니로 빈 틈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느 책에서 그 사람의 의식 상태는 그가 머무는 방 상태가 말해 준다고 했습니다. 깔끔하게 정리된 방 주인은 생각과 행동도 명쾌하고, 그렇지 못한 방 주인은 생각과 행동이 산만하다고 말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 둘째는 후자라 할 수 있죠.
독서록을 쓰기 위해 읽은 책 무더기가 한 곳에 쌓여있고, 과자만 빼먹고 남은 봉지, 친구에게 선물 받은 인형, 화장에 필요한 각종 도구, 수십 종의 포카, 포카 포장에 필요한 재료 등등. 책상 위에 널린 것들만 봐도 둘째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짐작이 갑니다. 또 필요한 것들은 수시로 다이소 올리브 영 알파 문구를 드나들며 사 나르기 바쁘죠. 있는 것도 또 사고 보이지 않는다고 또 사고 신상은 신상이기 때문에 구매하죠.
꼭 필요한 것만 사라고 말하지만 듣지 않습니다.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필요한 걸 꼭 손에 넣더라고요. 그게 정말 필요한 건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죠. 그 물건이 나에게 있냐 없냐만 중요할 뿐이죠.
한편으로 물건이 쌓이는 건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려서부터 자기 손에 들어온 건 쉽게 버리지 못했습니다. 어쩌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몇 시간 울기도 했었죠. 아무리 작은 것도 자기 손에 들어온 이상 애착물건이 됩니다. 평소에는 관심도 없다가 버릴라치면 가장 소중한 물건으로 탈바꿈하죠. 지켜보는 저도 어이없지만 그 나이 때 감성이겠거니 합니다.
새벽에 출근 준비하며 젖은 머리를 둘째 방에서 드라이기로 말립니다. 손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털고, 눈으로 책상 위 널브러진 물건들을 하나씩 봤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물건 하나하나 마다 '추억'이 담겼겠구나 싶었습니다. 선물 받은 인형에는 친구와 추억이, 쓰다 남은 화장품에는 엄마를 따라 하고 싶은 은밀한 마음이, 먹다 남은 과자 봉지에는 먹을 때의 즐거움이, 정성스럽게 포장하는 포카는 좋아하는 아이돌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을 겁니다.
저마다 추억이 깃든 물건이니 쉽게 버리지 못했나 봅니다. 심지어 바닥이 빵구난 실내화조차 버리지 말라고 엄마에게 떼쓰는 아이입니다. 새 실내화를 사줬는데도 말이죠. 아마 학교 다니는 내내 함께 했던 추억 때문에 구멍 난 실내화도 버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도 자랄 때 보물상자가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그때 가장 소중했던 것들을 모아두었죠. 괜히 꺼내놨다가 부모님 눈에 띄어 쓰레기통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어 감춰두었죠. 모르는 이가 보면 별것 아닌 것들에 저만의 의미를 담았던 것 같습니다. 추억이라고 할 수 있죠.
성인이 되고 직장에 다니고 가족을 꾸렸어도 버리지 못하는 물건이 있기 마련입니다. 둘째처럼 (내 눈에) 잡동사니는 아니어도 저마다 추억이 있다고 의미를 부여해 놓은 물건들입니다. 하나 일상에 쫓겨 시간이 지나면 어느 순간 기억에서 사라져 버립니다. 그 물건을 왜 거기에 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죠. 그 안에 담긴 의미와 추억조차 기억하지 못할 때가 더 많습니다. 기억력이 점차 희미해질 나이이기도 하지요.
반면 30년 지나도 여전히 기억나는 것도 있죠. 물건이기보다 추억이 대부분이죠. 어느 날 어느 순간이 문득 떠오르기도 하죠. 고등학교 때 당구장에서 경찰에 붙잡혀 파출소에 간 기억, 대학 때 쉬는 시간 매점에서 컵라면 먹던 순간, 군대에서 동기 편들었다가 조교에게 찍혀 화생방 두 번 들어가고, 두 딸이 엄마 뱃속에서 나와 처음 마주했던 순간까지. 어이없고 즐겁고 안타깝고 행복했던 기억이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나이 들수록 추억으로 버틴다고 말합니다. 얼마나 다양한 추억이 있느냐에 따라 노년의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하죠. 추억이 될 상황을 경험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상황을 얼마나 오래 기억하느냐도 중요할 것입니다. 기억할 때 추억이 될 테니까요. 바꿔 말하면 별 일 아닌 순간에도 의미를 부여해 기억하면 추억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둘째가 사소한 물건에 의미를 부여해 버리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죠.
중년의 일상은 터보 엔진이 달린 것 마냥 틈을 내어주지 않고 달려갑니다. 지나고 보면 늘 아쉬움과 후회만 남죠. 하여, 별 볼일 없는 일상에도 의미를 부여하면 추억이 될까 싶어 매일 글로 남기는 중입니다. 여기저기 쌓인 글이 지나고 보면 추억으로 남아있을 겁니다. 언제든 다시 꺼내 읽으면 그날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테고요. 쌓이는 글이 많을수록 노년에 기억할 추억도 많아지겠죠. 여러분도 일상을 글로 남겨 기억하고 훗날 꺼내 볼 추억으로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