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13일 두 번째 글
40대가 희망퇴직 대상자가 된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한창 일할 나이지만 의지와 상관없이 일자리를 잃게 됩니다. 살아남은 이들도 자리가 평생 보장되는 것도 아니죠. 조직이 휘두르는 파리채에 언제 나가떨어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 늘 마음 졸이며 직장에 다닙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퇴직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당장은 남의 일일지 모르지만, 언제 어느 때 당사자가 될지 모를 일입니다. 넋 놓고 있다고 당사자가 됐을 때 어떤 기분일까요? 퇴직이라는 문제를 스스로 마주해 보고 나니 어떻게 하면 그 과정을 조금 더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희망퇴직도 결국에는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선택 앞에서는 누구나 당사자가 되어야 하는 거죠. 남이 대신 판단해 줄 수도 대신해 줄 수도 없겠죠. 문제는 자기 앞에 놓인 그 문제에 지나치게 몰입하면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할 수 있다는 겁니다. 주변 사람의 조언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자기를 객관화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객관화를 달리 표현하면 '관찰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 문제를 제삼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거죠. 이를 통해 보다 냉정하게 문제를 바라보는 겁니다. 선택에 따른 장단점을 비교해 보고 놓치는 게 없는지 따져봅니다. 냉정해질수록 정보의 양도 많아집니다. 정보가 많아지면 판단의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거죠. 이를 통해 최선의 선택을 내릴 수 있게 됩니다.
관찰자는 어떻게 될 수 있을까요? 마주한 문제를 글로 써보는 겁니다. 저도 퇴직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수많은 글을 쓰면서 관찰자가 되었습니다. 섣부른 판단을 내리지 않기 위해서요. 또 쓰면서 필요한 정보를 두루두루 모았습니다. 완벽할 수 없지만 후회는 남지 않게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글로 쓰다 보면 이전에 놓쳤던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퇴직 후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다른 각도에서도 고민해 보게 되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가는 과정이죠.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는 건 분명 퇴직의 장점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그걸 발견하는 것도 이전과 다른 관점에서 비롯될 수 있습니다. 글로 쓰는 과정을 통해서 말이죠.
퇴직뿐 아니라 살면서 마주하는 다양한 문제도 이 같은 방법을 활용해 볼 수 있습니다. 문제를 직면해 시야가 좁아진 당사자에서, 상황을 멀리서 바라보면 새로운 해결책을 고민할 수 관찰자가 되는 거죠. 내가 지금 어떤 상황이고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글로 적어 보면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내가 직면한 문제에 당사자가 될 수도, 관찰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좁은 시야의 당사자로 답을 찾을지, 한 발 떨어져 넓은 시야로 더 나은 해결책을 찾을지는 선택의 문제이고 방법의 차이입니다. 다행인 건 방법을 바꾸면 선택이 수월해지고 결과도 만족스러울 수 있다는 거죠. 그 방법은 앞서 말한 글쓰기입니다. 글로 쓰며 새로운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현명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글을 쓰지 않을 이유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