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27일 첫 번째 글
48년생 최여사는 아들 목덜미를 잡고 앞세웠다. 함께 나서는 게 못마땅했던 아들은 아내에게 SOS 눈빛을 보냈다. 심성이 고운 아내는 남편 뜻대로 곁을 지켰다. 최여사가 아들을 데려간 곳은 로가디스 매장이었다. 반 백 살 아들이 추레하게 다니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는 게 표면적 이유였다. 앞서 몇 번 당신의 뜻을 거슬렀던 탓에 이번에도 모른 척할 명분이 부족했다. 내심 옷이 필요했기에 꼭 필요한 한두 가지만 고를 작정이었다. 아웃렛 매장을 간 게 화근이었다.
매장 주인 촉은 예사롭지 않았다. 최여사, 나, 아내 셋 중 누가 돈을 낼지 입구에서부터 알아차린 눈치다. 순식간에 최여사 밀착마크에 들어간 주인. 손으로 옷을 골라주면서 눈은 내내 최여사를 응시했다. 타고나길 손이 큰 최여사는 주인의 싹싹함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이것도 사고, 저 옷도 사고, 마음에 드는 거 다 골라 담아."
50년 만에 의심이 들었다. 최여사가 사실 '경주 최부잣집' 맏딸이 아니었을까? 그동안 숨겼고, 이제야 정체를 드러내는 거라고. 여태 1천 원어치 상추 사면서도 1백 원 깎는 분이었다. 내 눈에 검소하다 못해 궁색해 보일 정도였었다. 같이 다닐 때 그 모습이 창피했었다. 일부러 멀찍이 떨어져 걸었다. 그런 최여사 지갑이 활짝 열리는 순간이었다.
매장 주인은 단 한순간도 나와 최여사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손에 잡히는 대로 던지는 통해 쉴 새 없이 피팅룸을 들락거렸다. 이미 신발은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딱 한 벌만 고르자'라고 먹었던 마음이 어느 순간 '이래도 돼'라고 바뀌어 있었다. 점점 나도 대범해졌다. 표정에 변화 없이 이것저것 골랐다. 사실 좋다고 티 내는 건 30년 넘게 이어온 무뚝뚝한 콘셉트에 대치됐다. 최대한 기분 좋은 표정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어쩌면 어느 순간부터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걸 최여사는 눈치챘을지 모른다. 그래서 더 신나 해 하며 마음대로 고르라고 크게 외쳤던 게 아닐까 싶다. 최여사 아들로 살아온 5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1시간 남짓 태풍이 휘몰아친 매장 안에는 이곳저곳 입고 벗은 옷들로 널렸다. 매출만 보면 이 정도 수고는 기꺼이 감당하겠다는 주인의 흐뭇해하는 표정이 감지됐다. 내가 느끼기에 계산기를 두드리는 손끝은 이미 이 세상 텐션이 아니었다. 아마 이날 첫 개시 치고는 상당한 매출이지 않았을까 싶다. 서로 느낌이 통했는지 매장 주인도 최여사가 만족해할 만큼 할인에 할인을 더했다. 어느 포인트에서 기분이 좋아졌는지 모르겠지만, 최여사는 계산기 숫자를 보고도 깎지 않고 시원하게 긁었다. 대개는 아무리 할인을 해줘도 두어 번 실랑이가 오갈 걸 안다.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았던 순간이었다.
부지런히 주워 담아 위아래 여섯 벌 챙겨 나왔다. 주인장은 우리가 탄 차가 무사히 주차장을 빠져나갈 때까지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이런 대접받아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최여사 덕분에.
어머니는 퇴직하고 자기 사업 시작한 아들이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할까 싶어 옷을 사줬다. 남 앞에서 강의도 하는 데 후줄근하게 입지 않을까 걱정도 됐단다. 당신 주머니에서 나온 돈은 복지관 공공근로로 받은 월급일 터였다. 어떤 돈인 줄 알기에 처음에는 필요한 게 없다고 말했다. 결국 따라나선 건 이 한 마디 때문이었다.
"앞으로 얼마나 살겠다고, 주머니에 돈 쟁여놓으면 뭐 하겠니. 있는 돈 너희들 주고 갈란다."
어느 순간부터 이 말을 입에 달고 사신다. 그 말에 엉뚱한 소리 말라고 괜히 윽박지르는 나다. 평소 아들 노릇 못하면서 그 말은 듣기 싫다. 그렇다고 앞으로 잘하겠다고 마음먹거나 행동으로 옮기지도 않는다. 그냥 그 말이 듣기 싫을 뿐이다. 얼마나 더 살지 말지를 누구도 정하지 못한다. 사는 동안은 '얼마나 더 살겠나'라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은 말한 대로 된다고 했으니까.
2년 전부터 강의를 시작했는 데 제대로 된 프로필 사진이 없다. 스마트폰 셀카로 찍은 사진으로 땜빵 중이다. 이번 기회에 최여사가 사준 때때옷 입고 프로필 사진 찍어야겠다. 남겨진 사진에 자식에게 옷을 입히던 그날 당신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기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