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시대 인류는 야생 동물로부터 생존을 위협받았습니다. 맹수가 나타나면 뇌는 이를 위험으로 감지하고 코르티솔을 분비해 투쟁 또는 도피를 선택하게 유도합니다. 문명의 발전은 야생으로부터 인류를 보호해 주었습니다. 더 이상 맹수는 위협의 대상이 아닙니다. 불행히도 현대인은 또 다른 위협에 노출되었습니다. 복잡한 관계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문제에서 비롯된 스트레스 상황입니다. 우리 뇌는 이러한 상황에 노출되면 과거 인류와 마찬가지로 투쟁 도피 반응을 보입니다. 이 말은 스트레스를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인식한다는 의미이죠. 환경의 변화에 따라 스트레스를 대하는 기본값이 변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을 잘 믿고 거절하지 못했고 쓴소리도 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는 저를 만만하게 봤고, 누군가는 저를 함부로 대했습니다. 저의 흐리멍덩한 태도가 상대방 행동을 결정하게끔 여지를 줬습니다. 사회생활에 요령이 생기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직장에서 만남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배웠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나만의 방법이 흐리멍덩한 태도였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상대와 불편한 관계로 이어지지 않았죠. 내가 조금 더 손해를 감수하면 말이죠.
그때는 시키는 일만 할 때라 회사에 대한 나만의 기준 같은 게 없었습니다. 회사는 상행위를 통해 영리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집단이라고 정의합니다. 구성원 개개인의 직업적 역량을 통해 이익을 창출해 내는 그런 곳이죠. 구성원은 이를 통해 생계를 해결하고요. 이 과정에서 개인의 역량은 수치로 평가받고, 이를 바탕으로 수직 서열이 만들어집니다. 서열 관계는 보다 체계적인 수익 활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장치가 되었죠. 달리 말하면 회사 내 구성원은 목적만 같을 뿐 경쟁 관계가 기본입니다. 상대방보다 더 뛰어날 때 높은 자리에 오르고 더 많은 월급을 받고 더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죠. 그러니 회사는 애초에 친밀해질 수 없는 기본값을 가진 곳입니다.
원시 인류는 맹수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투쟁도피를 선택했습니다. 현대 인류는 다양한 관계가 만들어내는 스트레스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투쟁도피를 선택합니다. 과거와 비교해 우리를 위협하는 주체는 맹수에서 인간관계로 변했습니다. 주체는 달라졌지만 같은 스트레스를 받는 건 여전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투쟁도피 반응에는 어떤 게 있을까요?
20년 동안 직장을 아홉 번 옮겼습니다. 옮기는 곳마다 회사 성격도 다양했습니다. 죽기 직전까지 일만 시키는 곳, 월급 안 주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곳, 윗사람의 만행을 눈감아주는 곳, 어리다고 노력을 인정해주지 않는 곳 등 다양했죠. 물론 사람답게 대해준 곳도 없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사람답게 대해주지 않는 곳이 더 많았다는 거죠. 그러니 스스로 살아남는 방법을 익혀야 했습니다. 과거 흐리멍덩한 태도로는 나는 물론 가족의 생계도 보장할 수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선택했습니다. 사람과 거리 두기를요.
맹수로부터 도망치려면 우선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늘 주변 경계해야 하죠.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나를 괴롭힐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무에게나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먼저 말을 걸기보다 걸어와 주길 기다렸습니다. 말주변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죠. 또 먼저 나서서 일하지 않았습니다. 나설 만큼 능력이 뛰어나지 않았다는 것도 다행이었지만, 모난 돌이 정 맞는 걸 여러 차례 봤기 때문입니다. 시키는 일만 조용히 잘해도 자리를 지키는 건 무리가 없었죠. 일과 관계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거리를 두었습니다. 언제 어떻게 틀어지더라도 도망칠 수 있게 말이죠.
회사를 다녀도 다니지 않아도 사람과 떨어져 살 수 없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어울려 살고 어떻게든 스트레스를 받게 되죠. 그렇다고 상대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굶주린 맹수에게 나를 잡아먹지 말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죠. 이처럼 상대를 바꿀 수 없다면 내가 달라지는 수밖에 없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오래 함께할수록 가까워집니다. 어느 순간 정신 차리면 도망갈 거리가 없게 좁혀져 있죠. 상대방은 오롯이 자기 필요에 의해 거리를 좁혀 옵니다. 나도 나의 필요에 의해 거리를 좁히듯이요. 그렇기 때문에 필요한 거리를 지켜내는 건 자기 몫이어야 합니다. 스스로 먼저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이죠. 저처럼 적당한 이유를 대며 적정한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는 거죠. 그래야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투쟁이든 도피든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가만히 있으면 잡아먹히고 말 것입니다. 상대방에게든 아니면 스스로 판 무덤에 빠지고 마는 거죠.
회사 안에서 인간관계가 내 뜻대로 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서로 이해관계로 엮여서 원치 않는 일도 뜻하지 않는 사건사고를 경험하게 됩니다.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일들로 인해 다양한 스트레스에 노출됩니다. 현대인에게 스트레스는 과거 생명을 위협했던 맹수와 같다고 했습니다. 원시 때도 지금도 위협에서 살아남기 위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상대에 맞서 '투쟁' 할지, 아니면 상대를 피해 '도피' 할지를 요. 한 가지 분명한 건 투쟁으로 얻을 수 있는 건 운이 좋아 살던 가 힘도 못 쓰고 잡아 먹히든가 둘 중 하나일 뿐이죠. 대신 도피는 살 확률이 더 높습니다. 스스로 기회를 만드는 거죠. 그러니 이왕이면 나에게 유리한 걸 선택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평소 적당한 거리를 둠으로써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로부터 나를 지켜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