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화를 통해서 상대방의 생각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상대방에 대한 선입견이 바뀌기도 합니다. 선입견은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반대로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상대방에 대해 아는 만큼 선입견도 줄일 수 있겠죠. 이런 과정이 비단 낯선 사람을 알기 위해 필요한 건 아닙니다. 어쩌면 가족끼리도 점점 줄어드는 대화로 인해 선입견이 자라 견고해지는 게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20대 후반에서 30대로 구성된 독서모임에 참석 중입니다. 50인 제가 끼어도 되는지 걱정은 됐지만, 새로운 사람과 생각을 만날 수 있는 기회라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처음에는 어색했습니다. 자기 생각도 거르고 걸러 조심스레 말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 또한 편집을 거쳐 꼭 필요한 내용만 꺼내 놓았죠. 이런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된 후에야 서로에 대해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정보 양이 많아질수록 친근감은 쌓이는 법이죠. 그 이후에 비로소 속내를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한편으로 가족은 제법 긴 시간 함께해 온 탓에 서로에 대해 웬만한 건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한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을 뿐 생각은 제각각이기 때문이죠. 또 하나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대화가 줄어드는 건 자연 현상에 가깝다고 할 수 있죠. 어떤 면에서 남보다 못한 가족이 되는 건 이러한 대화 부족에서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가족이 그렇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자녀를 키우는 많은 수의 가족이 사춘기를 거치면서 자연스레 대화가 부족해진다 할 수 있습니다. 아이의 사춘기는 자아가 자라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 아이들도 부모 말에 귀 기울이기보다 자기 생각을 우선합니다. 이로 인해 소통보다 자발적 단절로 이어집니다. 흔히 생길 수 있는 오해도 대화로 풀지 못할 경우 소통 단절 또는 서로에 대한 미움으로 자리하게 됩니다. 풀리지 않은 오해는 또 다른 오해를 부르고 결국 더 큰 선입견을 서로에게 갖게 되는 지경이 이릅니다. 자연히 관계는 점점 멀어지는 결과를 낳죠.
24살부터 독립했습니다. 몸은 그때 떨어져 나왔지만 마음은 사춘기 때부터 부모님과 사이 벽을 쌓아 대화를 하지 않았습니다. 몸도 멀어진 탓에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도 대화가 없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50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 부모님은 이혼을, 큰형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남은 가족은 어머니와 작은형뿐입니다. 대상이 줄어서 대화도 줄 수밖에 없겠죠. 한 번은 왜 말수가 줄었는지 고민해 봤습니다. 어느 시점부터였던 것 같은 데 이유는 뚜렷하지 않습니다. 많은 가정이 경험하는 부모님의 잦은 다툼과 형들에 대한 불만이 원인으로 생각됐습니다. 어릴 때라 부모님의 다툼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다름을 인정하지 못했던 탓에 형들에 대한 미움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제와 따져보면 부모님은 부모님의 인생을 산 것이고, 형들은 자기만의 기준으로 생활했을 뿐입니다. 어린 내 기준에 맞지 않았다고 무조건 틀리다고 단정 짓고 대화할 가치 없다고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근 겁니다. 그래도 한 번 닫힌 입은 생각처럼 열리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여전히 마음을 굳게 닫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때의 부모님과 형들을 이해하고 용서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죠. 이런 생각과 태도를 고쳐보려고 노력했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습니다. 50인 지금 여전히 대화가 없기는 마찬가지이지요. 지나온 세월 속 이런 저의 태도로 인해 가족에 대한 미움과 오해가 더 견고해지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그래도 많은 가정에서 이런 비슷한 상황을 겪어도 분명 다른 선택을 하고 더 나아진 관계를 만들어 내는 이들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독서모임 멤버끼리 저녁식사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음식을 함께 나눠 먹는 건 서로에 대한 경계를 낮춰주는 역할을 하지요. 그러다 보니 대화 내용도 보다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20대 중반에 혼자 살기 시작한 여성멤버는 독립에 대해 예찬했습니다. 그중 독립으로 인해 가족과 관계가 더 돈독해졌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로 자주 만나지 않기 때문에 한 번 볼 때마다 서로에 대한 애틋함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또 부모님에 대한 감사 마음도 남달라 졌다고 했고요. 어릴 때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결코 당연하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고 했지요. 부모님에 대한 생각과 행동이 달라질 수 있었던 건 독립 후 가끔 갖는 진솔한 대화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짐작했습니다. 그렇다고 독립을 해야 다시 돈독해진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들과 대화에서 제가 느낀 건 대화의 양보다 질이라는 점입니다. 질이 좋아지기 위한 전제는 상대에 대해 마음을 여는 것이고요. 마음을 여는 건 자기의 몫입니다. 저처럼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벽을 둘러치고 지낼 건지, 아니면 스스로 벽을 허물고 먼저 한 발 다가설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어떤 가족은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되기도 합니다. 여러 문제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상대에 대한 이해부족이 원인이라 생각합니다. 이해부족은 선입견으로 이어집니다. 선입견은 결국 입을 닫게 만들겠지요. 가족이기 때문에 더 노력할 여지도 없을 테고요. 하지만 포기가 답은 아닙니다.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고요. 무엇보다 정답이 존재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각자의 상황과 가치관에 따라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찾은 방법을 시도하면서 멀어졌던 관계도 다시 좁혀질 것입니다. 정답이 없는 문제는 스스로 찾은 답이 정답이라는 게 삶의 진리이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