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계획적인 삶이 필요한 이유

by 김형준

큰딸을 학원 앞에 내려주고 끝날 때까지 기다리려고 근처 카페에 갔습니다. 자리가 많은 곳이라 곳곳에 공부하는 학생들이 보입니다. 일요일에도 저마다 정해놓은 분량을 소화하기 위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시험이든 시험 당일까지 계획에 따라 레이스 이어가야 합니다. 마라톤 코스를 달리듯이요.


마라톤 완주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일까요? 자기 체력에 맞게 속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주변 사람 속도에 휘말려 오버 페이스해 이른 포기로 이어집니다. 출발부터 결승선을 통과할 때까지 체력 안배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자신의 체력 수준에 맞게 자기만의 속도로 꾸준히 달릴 때 원하는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할 수 있겠죠.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도 다르지 않습니다. 공부도 체력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중간에 지치지 않으려면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죠. 체력이 유지될 때 매일 정해놓은 분량도 소화할 수 있습니다. 마라톤이든 시험이든 결승선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곳을 통과하기까지 중간에 빨리 뛰든 걷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해진 코스를 다 채울 때에만 결승선을 통과하고 시험에서도 합격점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지난주보다 조금 선선해진 기분으로 출발했습니다. 지난번에는 8킬로미터를 채우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최소 10킬로미터는 뛰자는 각오였습니다. 초반에는 순조로웠습니다. 바람도 간간이 불었고 해도 구름에 가렸습니다. 욕심부리지 않으면 10킬로미터를 넘어 목표한 14킬로미터를 뛸 수 있을 거로 기대했습니다.

호수 공원 한 바퀴, 5킬로미터까지는 안정적으로 달렸습니다. 반환점을 돌아 두 번째 바퀴에 접어들었습니다. 7킬로미터 구간을 지나면서 숨이 가빠졌습니다. 이때 달리기를 멈추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체력이 예전만 못해진 것 같습니다. 벌써 피로감이 들었습니다. 수백 미터 걸었습니다. 걸으면서 생각했습니다. 오버 페이스를 한 게 아닌가 하고요. 일찍 지쳤다는 건 둘 중 하나였습니다. 체력이 부족하든 가, 오버 페이스였든가.


잠시 뒤 다시 달렸습니다. 얼마 못 가 다시 멈췄습니다. 날씨는 도와줬는 데 페이스 관리를 잘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몇백 미터 걸은 뒤 다시 달렸습니다. 결국 10킬로미터까지 달리고 멈췄습니다. 페이스와 체력 관리를 하지 못해 목표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목표보다 덜 달렸어도 몸이 천근만근인 건 다르지 않았습니다. 연습도 중요하지만 우선 체력부터 끌어올려야겠습니다. 그래야 페이스 조절도 가능할 테니까요.

직장에 다니는 동안 건축 기사 자격증 시험에 10번 이상 응시했었습니다. 다 떨어졌습니다. 원인은 페이스 조절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초반에 의욕적으로 시작하지만, 얼마 못 가 회사 핑계로 공부를 놓아버렸죠. 합격한 친구들의 조언은 한결같았습니다. 매일 꾸준히 다섯 번 이상 반복하면 무조건 합격한다고요.

그러기 위해 시간 관리도 필요하지만, 체력도 필요했겠죠. 일하면서 공부도 하려면 말이죠. 그때는 남는 체력을 공부 말고 술 마시는 데 썼던 것 같습니다. 매일 공부하지 않았어도 매일 술은 마셨으니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술잔 대신 문제집을 들었어야 했는데 말이죠.


자격증을 따지 못한 게 한으로 남았습니다. 그렇다고 이제와 다시 도전할 마음은 없습니다. 대신 다른 것 들에 투자하는 중입니다. 그중 하나가 달리기입니다. 내 건강을 위해 꾸준히 달리면서 기록도 만들려고요. 그러기 위해 체력도 키우고 연습도 꾸준히 합니다. 정해진 코스를 어떻게 달릴지는 스스로 정할 수 있습니다. 그 선택에 따라 완주할 수도 좋은 기록을 얻을 수도 있죠. 시험도 마찬가지이고요.


달리기도 시험도 우리 인생도 계획한 대로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안타갑지만 어떤 것도 늘 변수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어쩌면 그 변수에 얼마나 적절히 대처하느냐가 성패를 가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격증 시험에 10번 이상 떨어진 건 변수에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직장에 다니면 당연히 뜻하지 않은 일이 생기는 게 당연하죠. 그런 상황에서도 꾸준히 할 방법을 찾고 실천했으면 분명 자격증을 땄을 겁니다. 달리기도 그날의 날씨와 내 몸 컨디션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 또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변수이지요. 이에 대처하기 위해 체력을 키우고 반복 연습을 하는 거죠.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대처할 수 있게 말이죠.


인생은 변수의 연속입니다. 변수에 대처하기 위해 필요한 게 계획적인 삶입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라고 했는 데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제 말은 어떤 일이든 계획적으로 실천할 때 변수에도 대응할 요령이 생긴다는 의미입니다. 계획 없이 시도하면 변수가 생길 때 오히려 대처할 방법이 없습니다. 평소 마음 내키는 대로 달리면 자기 체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합니다. 오늘은 5시간 공부했다가 내일은 30분 공부하는 것도 다르지 않겠죠. 스스로 정한 기준에 따라 꾸준히 반복했을 때 기초체력이 만들어집니다. 기초체력은 자신의 한계를 알게 하죠. 한계를 알 때 할 수 있는 일과 포기해야 할 게 분명해집니다. 이는 변수가 생겼을 때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게 하죠. 나를 아는 게 인생이 보내는 변수를 극복할 힘을 갖게 할 것입니다.


여름휴가, 잠을 설치는 열대야, 무더위에 지치는 몸과 마음, 시시때때로 울리는 스마트폰 알림, 앞뒤 안 가리는 상사의 지시 등에 매일 노출되는 우리입니다. 그렇다고 건건이 휘둘리며 대처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랬다가는 '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겁니다. 이럴수록 나를 잡아주는 계획적인 삶이 필요합니다. 비록 계획에서 자주 벗어나도 말이죠. 계획이 있다면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해도 결국에는 목적지에 닿는 게 중요할 테니까요. 여러분에게는 나를 나답게 만들어 줄 계획이 있나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멀어진 가족이 가까워지는 유일한 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