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에 무게는?

by 김형준


타인의 이름을 빌려서 할 수 있는 게 없는 세상입니다. 병원 처방부터 기차표에 이르기까지 내 이름이 아니면 꼼짝 못 하죠. 그만큼 중요해진 이름은 그 무게가 얼마나 될까요?


내일 하프 마라톤에 도전합니다. 두 달 동안 준비했죠. 본인이 아니면 신청도 되지 않습니다. 선수 등록, 참가비 결제, 기념품 배송지까지 본인 인증 후 진행됩니다.


혹여 타인을 위해 대신 등록했다면 대회에도 대신 나가야 하는 게 맞겠죠. 한 사람이 두 사람 몫 할 수 없고, 나를 위해 타인이 대신 뛰어주는 건 더더욱 의미 없을 것입니다.


내 이름으로 등록하고 대회까지 연습해 당일 오롯이 자기 노력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는 게 당당한 거죠. 설령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인해 완주하지 못했다면 적어도 남 탓할 일은 없을 테니까요.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우리는 자기 이름으로 삽니다. 잘한 일에는 이름 뒤에 칭찬이 따르고, 실수한 일에는 이름 뒤에 직책과 책임이 따르죠. 그게 떳떳한 태도일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이름 값하지 못하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자기가 실수한 일에 남 탓하고, 함께 해야 할 일에 슬그머니 빠졌다가 나중에 숟가락만 얹고, 남이 이룬 성과를 아무렇지 않게 채가는 사람까지 있죠.


그들은 당장 조명을 받겠지만, 오래가지 못합니다. 자기 이름에 스스로 먹칠을 하다 보면 어느새 주변 사람에게 잊히기 마련입니다. 존재로써 가치를 잃습니다. 껍데기만 남죠.


여러분 중에도 겉모습에만 신경 쓰고 있지 않나요? 이름을 꺼내놓고 부끄러울 만큼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나요? 그런 삶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게 정말 내가 바라는 삶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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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내가 바라는 삶을 살기 위해 작가가 되었습니다. 직장에 다니는 동안 퇴직을 준비하며 부지런히 글을 써왔죠. 매일 노력한 덕분에 출간 기회도 갖게 되었고, 그렇게 11번째 책까지 세상에 나왔습니다.


매번 책을 낼 때마다 책 표지에 제 이름이 항상 있었습니다. 이 말은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 정성을 다해 썼다는 의미이지요. 그러나 정성에 비해 사람들 눈에는 띄지 않았습니다. 늘 판매 부수가 발목을 잡았죠.


내 이름값이 컸다면 신간을 낼 때마다 더 많은 사람에게 닿았을 겁니다. 이제까지 팔린 부수가 제 이름값이라고 할 수 있죠. 다행인 건 출간 횟수를 거듭할수록 숫자가 점점 커지는 중이라는 점입니다.


사실 첫 책을 낼 때는 주변에 알리는 데 소극적이었습니다. 작가라는 직업이 새 신발처럼 발에서 겉도는 느낌이었죠. 걷는 게 불편했고 뒤꿈치가 까지고 했었죠. 통과의례라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쓴 글이 쌓이고 경험이 더해지며 어느새 신발도 편해졌습니다. 처음에 걷기도 힘들었다면 이제는 달리기를 할 만큼 편해졌죠. 편해진 만큼 치러야 할 대가도 많아졌습니다.


이름에 무게입니다. 나를 선택해 준 출판사는 오로지 판매 부수로만 저를 평가합니다. 저 또한 판매량으로 저를 입증해 보여야 하죠. 이 둘의 접점에 해당하는 숫자에 닿았을 때 서로 윈윈 하는 결과를 얻습니다.


9월 26일 기준, 교보 문고 국내 도서 중 692위, 시/에세이 분야 58위에 올랐습니다. 제 이름을 달고 출간한 네 번째 책의 가치를 평가받는 중입니다. 이름값이 어느 정도인지 입증하는 중이라고 할 수 있죠.


숫자에 연연해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스치는 바람과 같다고요. 정작 당사자가 되어보면 아마 같은 말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니면 이미 이런 말을 할 정도로 충분히 경험했다면 저 또한 수긍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 신간이지만 여전히 숫자가 이름을 짓누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다 제가 원해서 시작한 일입니다. 벌써 네 번째라 맷집도 제법 생겼습니다. 덤덤하고, 무덤덤하게 주변에 책 사달라고 말합니다


이름의 무게는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질수록 무거워질 것입니다. 무게만큼 책임도 따를 테고요. 그 책임이 더 나은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어야 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기꺼이 이 상황을 즐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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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제 이름을 달고 두 번째 하프 마라톤에 도전합니다. 9월 1일부터 오늘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달렸습니다. 중간에 포기가 아닌 완주자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서죠.


달리기뿐 아니라 어떤 일을 하든 이름은 따라옵니다. 이름 앞에 더 당당해지려면 자기에게 부끄럽지 않은 게 먼저입니다. 매일 달리기 연습을 한 것도 같은 의미이고요.


자신에게 당당해진다는 것은 내 이름에 무게를 감당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어떤 일에서든 이름의 무게를 버텨낼 수 있는 게 가장 나다운 삶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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