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맛에 우중런

송도국제마라톤 하프코스 완주

by 김형준

수십 년 만에 원 없이 맨몸으로 비를 맞았다. 하프코스를 달리면서. 작년 초 달리기를 시작하고 빗속에서 달린 것은 처음이었다. 비 오는 날에는 달리지 않아도 그만이었다. 옷과 신발이 젖는 것은 불편한 일이었다.


비는 밤사이 시작된 것 같다. 6시에 집을 나섰을 때, 가늘고 양이 많은 비가 내리는 중이었다. 주차장을 빠져나와 도로에 올랐다. 자유로를 지난 외곽 순환 도로에 들어서는 동안 비는 더 굵고 세찼다.


이런 날씨에도 사람들은 달릴까? 비 오는 날 마라톤 대회가 정상적으로 진행되는지 경험해 보지 못했다. 비 때문에 대회가 취소됐다는 소식도 얼핏 들은 것 같았다. 일단 내 눈으로 확인이 필요했다.

대회장까지 가는 도중에 비가 잠잠해질 수도 있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쨍하고 해가 모습을 드러낼 지도. 기대와 걱정으로 외곽 순환도로를 빠져나와 경인고속도로를 지나 송도에 들어섰다.


대회장이 가까워질수록 도로에 차가 많아졌다. 인도 쪽 차선은 이미 주차한 차들이 행렬을 이뤘다. 인천대학교 내 주차장으로 진입하려는 차도 1킬로미터 이상 길게 늘어섰다.


20분 정도 줄 선 끝에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지하주차장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나처럼 자리를 찾지 못한 차들이 더 많았다. 나는 결국 출구로 방향을 틀어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왔다.


대회 시작까지 30분 남았다. 무작정 도로 위를 달렸고. 어정쩡하게 남는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망설이지 않고 주차했다. 남 눈치 봤다가는 뛰지도 못하고 돌아갈 참이었다. 달릴 복장에 우산만 들고 대회장으로 갔다.


비가 온 탓인지 대회장 분위기는 차분했다. 몸을 풀기보다 비를 피해 모여 있었다. 좁은 곳에 많은 사람이 모이니 몸풀기 마땅치 않았다. 스트레칭밖에 할 수 없었다. 출발선으로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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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온 우산은 잃어버릴 각오로 눈에 띄는 곳에 걸어뒀다. 우비를 입은 사람은 우비를 벗었다. 일부는 입은 채로 출발선에 섰다. 입은 사람 대부분은 출발 후 1킬로미터도 안 지나 다 벗었다.


출발선에 섰을 때부터 윗옷은 이미 다 젖었다. 바지는 5분도 지나지 않아 젖었다. 신발도 마찬가지다. 온몸이 비에 젖은 채로 달렸다. 초등학교 때 비 맞고 실 것 놀던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50에 다시 젖었다.


비에 젖어 집에 돌아오면 늘 엄마의 잔소리로 이어졌었다. 빨랫감 많아졌다며 타박했었다. 그때는 그 말이 와닿지 않았다. 놀다 보면 젖을 수도 있다고 속으로 생각했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게 특권이었을지도.


사춘기를 지나면서 옷을 입은 채로 비를 맞는 게 아니라고 주입했다. 혼자 살 땐 젖은 옷을 빨기보다 갈아입을 옷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또 빨래도 귀찮았다. 그러니 한 번 꺼내 입은 옷으로 며칠은 버텨야 했다.


직장인과 가장으로 살면서도 비에 옷이 젖는 일은 거의 없었다. 기껏 출근할 때 내린 비에 바짓가랑이 젖는 정도였다. 그런 날은 하루 종일 찝찝했고, 그때마다 출근하는 현실이 못마땅했었다.


퇴직 후에는 장대비가 내리면 반바지에 운동화 신고 사무실로 출근한다. 그나마 덜 젖기 위해서다. 직장을 벗어나니 이건 좋다. 내 의지대로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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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건강 지키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다. 사계절 내내 달리면 사계절 날씨를 몸으로 체감한다. 비나 눈이 오면 달리지 않았다. 옷과 신발이 젖으니까. 비나 눈이 오지 않으면 한겨울에도 땡볕에도 달렸다.


돈 내고 신청한 대회이니 비가 오든 오지 않든 달리는 것은 내 선택이다. 비 때문에 기록도 안 나오고 감기도 걸릴 게 걱정되면 달리지 않으면 된다. 비가 와도 달리기를 선택했다면 완주가 목표여야 한다.


젖은 몸으로 달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전 구간 페이스도 일정하게 유지했다. 군데군데 피해야 할 물웅덩이는 장애물이나 다름없었다. 그조차도 기록에는 크게 영향 미치지 않았다.


결승선을 통과한 기록은 작년보다 3분 빨랐다. 2시간 내 통과가 목표였지만, 나름대로 선방했다고 위로했다. 이만큼 줄인 것도 연습에 결과라고 생각했다. 9월 내내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달린 보람이 있었다.


비에 몸이 옷이 젖고 몸이 무거워지는 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요인이다. 그게 걱정되면 대회를 포기하면 된다. 대신 달리기를 선택했다면 환경을 탓해서는 안 된다. 모두 같은 조건에 달릴 테니까.

결국 자기 관리가 우선이다. 앞서 충분히 연습했으면 비에도 기록을 낼 수 있을 것이며, 연습이 부족하면 그만큼 기록도 달라질 테다. 또 레이스 관리도 오롯이 자기 몫이다. 선택에 따른 책임이다.

바를 맞으면서도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달린 나를 칭찬한다. 출발선을 통과할 때 포기는 버렸다. 버린 자리에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채웠다. 그 믿음 덕분에 마침내 두 번째 하프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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