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어느 순간 깨닫게 되는 게 있습니다. 세상은 공정하지 않다는 거죠. 학교에서는 ‘공정’이 마치 도덕 시간의 주인공처럼 등장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편에서 능청스럽게 웃고 있습니다. 어쩌면 공정을 가르치는 교실 안에서도 이미 불공정은 교과서보다 오래 앉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직장에 들어서면 이 의심은 곧 확신이 됩니다. 사회생활의 첫 관문은 업무가 아니라 불공정 견디기 테스트죠. 통과한 자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통과 못한 자는 그 자리에서 멘털이 야근합니다. 흥미로운 건, 많은 사람이 불공정을 ‘나중에 써먹을 기술’로 배운다는 겁니다. “나도 언젠가 칼자루를 쥐면 써먹어야지”라는 묘한 복수심이 생기죠. 슬프게도 이건 성장의 복수가 아니라 닮음의 비극입니다.
왜 유독 직장은 공정하지 못할까요?
간단합니다. 계급이 있기 때문입니다. 계급의 본질은 욕망입니다. 위로 올라가려면 뭔가를 딛고 올라야 하죠. 사다리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사다리는 누가 잡아줘야 오를 수 있습니다. 즉, 사다리를 잡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이미 서열이 정해졌다는 뜻입니다. 직장은 말하자면, 서로의 발을 살짝 밟으며 웃는 곳입니다.
공정은 이상이고, 처세는 현실입니다. 직장에서는 공정보다 ‘균형’이 더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내가 조금 손해 보면 팀이 평화롭다.”
“내가 조용히 있으면 부장은 나를 좋아한다.”
이런 방정식이 조직을 유지시킵니다. 물론 공정의 사전적 정의는 울고 있죠.
문제는, 이렇게 불공정한 생태계 속에서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입니다.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째, 배운 대로 따라 하기. 즉, 불공정의 족보를 잇는 것.
둘째, 탁월함으로 게임의 규칙을 바꾸기.
전자는 편하지만 오래 못 갑니다. 후자는 힘들지만 오래 남습니다.
심리학적으로 사람은 ‘자신이 만든 질서 속에서만 행복’을 느낍니다. 남이 짜놓은 질서에 순응하면 편하지만, 오래 갈수록 자존감이 침식됩니다. 반대로 스스로 질서를 만드는 사람은 불편해도 자유롭습니다.
“싫은 사람 옆에서 웃는 법”을 배우는 대신, “싫은 사람에게 영향받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게 낫습니다.
철학자 니체는 ‘정의’ 대신 ‘힘’을 이야기했습니다. 그가 말한 힘은 남을 짓누르는 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힘이죠.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정을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공정해질 정도로 강해지는 겁니다. 실력이 탁월한 사람에게는 아무도 불공정을 적용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판의 규칙을 바꾸기 때문이죠.
물론, 너무 이상적인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운이 좋아 공정한 조직을 만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조직은 마치 야생에서 발견된 네 잎클로버처럼 드뭅니다. 대부분의 직장은 ‘적응력 테스트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필요한 건 처세가 아니라 방향감각입니다. 불공정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느니, 내 실력의 배를 띄우는 게 낫습니다.
조직에서 공정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설득하는 기술’로 작동합니다. 상사를 설득하고, 동료를 설득하고, 나 자신을 설득합니다. 대화법의 핵심은 ‘내가 옳다’가 아니라 ‘상대가 틀리지 않다’는 걸 인정하는 데 있습니다.
공정하지 않은 세상에서도 관계를 유지하려면, 이 작은 기술 하나가 큰 차이를 만듭니다. 결국 대화는 논리의 싸움이 아니라 감정의 온도 조절입니다.
그래서 똑똑한 직장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공정은 바라지 않는다. 대신 불공정을 견딜 만한 실력은 갖추겠다.”
이건 체념이 아니라 전략입니다.
불공정을 바꾸려면 먼저 그 위에서 흔들리지 않을 자신감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다니는 직장은 언젠가 떠나야 할 곳입니다. 이직이든 퇴직이든, 끝은 정해져 있죠. 그때 남는 건 직함도 연봉도 아닙니다. 실력, 태도, 그리고 평판입니다. 공정하지 않은 세상에서도 자신의 색을 잃지 않은 사람은 어디서든 환영받습니다.
반대로 남 눈치만 보며 색을 지운 사람은, 결국 투명인간처럼 잊힙니다. 인생은 불공정을 없애는 싸움이 아니라, 불공정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는 연습입니다. 빛이 없는 방에서도 스스로 빛나는 전구가 되는 것. 그게 진짜 프로의 자세죠.
혹시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너무 힘들다. 나 혼자 정의롭게 산다고 뭐가 달라지나.”
맞습니다. 세상은 쉽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 하나가 달라지면 세상을 대하는 내 표정이 달라집니다. 그 표정 하나로 얻는 평화는 생각보다 큽니다.
세상은 완벽히 공정하지 않지만, 내가 나를 공정하게 대하는 순간, 삶은 조금 더 단단해집니다. 그래서 결론은 단순합니다. 불공정한 세상에 분노하지 말고, 스스로를 정의롭게 관리하라. 그게 어른의 품격이고, 직장인의 생존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