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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얼마나 나와 대화했는가?

by 김형준

혼자 있는다는 건 뭘까요?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홀로 앉아 있는 걸까요? 아니면 마음속에서 스스로와 대화하는 걸까요?


출근길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드라마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것도 겉보기엔 ‘혼자’입니다. 하지만 그건 ‘혼자 있는 척’하는 상태죠. 진짜 혼자 있는 건, 같은 공간에서 스마트폰 대신 노트를 펴고 생각을 정리하거나 글을 쓰는 순간입니다. 중요한 건 공간이 아니라 집중의 방향입니다. 뇌과학자들은 말합니다. “생각의 깊이는 외부 소음이 아니라 내부 잡음이 줄어들 때 생긴다”라고. 즉, 귀를 막는 게 아니라, 자기 안의 소란을 줄이는 것이 혼자 있는 시간의 본질입니다.


스마트폰은 우리에게 전례 없는 ‘혼자 있는 시간’을 줬습니다. 하지만 그건 역설적인 선물입니다. 언제든 혼자일 수 있지만, 동시에 절대 혼자일 수 없게 되었으니까요. 손바닥만 한 화면 속 세상은 늘 나를 부릅니다. 뉴스, 광고, SNS, 남의 일기까지. 우리는 잠시도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문제는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는 걸 모르는 데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한 사람은 대개 ‘해야 하는 일’로 하루를 채웁니다. 그리고 퇴근길에 말하죠. “오늘도 아무것도 못 했네.” 사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니라, 아무 의미도 느끼지 못한 것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서른 살 무렵엔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혈기왕성할 땐 사람과 어울리는 게 더 좋아 보이죠.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의 저는 늘 누군가의 시간 속에만 있었습니다. 나만의 시간표는 한 장도 없었습니다.


하기 싫은 일을 하며, 혼자 있는 시간도 없이 살면 어떨까요? 매일 같은 시각에 출근하고, 같은 사람들과 점심을 먹고, 같은 말로 불평하다가 퇴근합니다. 마치 매일 리셋되는 인생의 복사 버튼을 누르는 것 같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건 인생의 자동 재생 모드였습니다. 내가 ‘재생’을 멈추지 않으면, 세상은 ‘다시 보기’를 계속 틀어줍니다.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가 말했습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이 문장은 사실 인생의 경고문입니다. 내가 주체가 되지 않으면, 세상은 나를 타인의 스케줄에 맞춰 살게 합니다.


그래서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혼자 있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에만 내면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나는 뭘 좋아하지?”, “나는 왜 이 일을 계속할까?”, “나는 어떤 사람으로 늙고 싶은가?”

이 질문들은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습니다. 스마트폰도, 회사도, 가족도 모릅니다. 오직 나만이 압니다.


그럼 직장 다니며 어떻게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을까요?

의외로 간단합니다. 시간을 찾지 말고, 확보하면 됩니다.

퇴근 후 30분, 점심시간의 10분,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가능합니다. 중요한 건 공간의 고요가 아니라 의식의 전환입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나와 대화 중이다.” 그렇게 선언하면 그 공간이 곧 나만의 서재가 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메타인지’라 부릅니다.

즉, 생각을 바라보는 나를 자각하는 상태입니다.

명상도, 글쓰기도, 혼자 걷는 일도 결국 같은 목적을 향하죠. ‘내 안의 나’를 깨우는 일.


우리는 흔히 혼자 있는 시간을 ‘외로움’으로 착각합니다.

하지만 외로움은 ‘관계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의미가 없는 상태’입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두려운 이유는 그 고요 속에서 나의 공허함이 들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공허함을 견딜 때 비로소 삶의 방향이 또렷해집니다.


저도 서른에 그걸 몰랐습니다.

그땐 혼자 있으면 ‘지루함’이 찾아오는 줄 알았습니다.

지금은 압니다. 그 지루함은 사실 나를 부르는 신호였다는 걸요.

그때 그 신호에 귀를 기울였다면, 저는 아마 조금 더 일찍 작가가 되었을 겁니다.


마흔, 오십이 되면 혼자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듭니다. 아니, 줄어드는 게 아니라 ‘용기’가 줄어듭니다.

혼자 있는 건 고독이 아니라 용기입니다.


가족과 회사, 사회의 기대 속에서 자기 시간을 지킨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하지만 용기 내서 자기만의 시간을 확보한 사람만이 세상과 건강한 거리 두기를 할 수 있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은 나를 ‘조율’하는 시간입니다.


회사에서 하루 종일 상사에게 맞춰 살아온 내 마음의 피치(pitch)를 다시 내 음으로 되돌리는 순간이죠.

누구에게나 인생의 피아노가 있습니다. 문제는 매일 남이 건반을 치고 있다는 거죠. 혼자 있는 시간은 그 피아노에 다시 내 손을 올리는 일입니다.


이제야 알았습니다.

‘혼자 있다’는 건 세상과 단절하는 게 아니라, 세상에 휩쓸리지 않는 기술입니다.

혼자 있는 사람은 외로운 게 아니라, 중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남이 뭐라 해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리듬을 유지하는 사람.


마지막으로, 꼰대 같지만 중요한 말을 하나 하겠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은 인생의 이자입니다.

그 시간을 잘 쓰면 시간이 늘어납니다.

반대로 흘려보내면 원금까지 까먹습니다.

하루에 10분이라도 자신에게 투자해 보세요.

생각보다 인생의 복리가 빠르게 붙습니다.


세상은 시끄럽지만, 마음은 조용해야 방향을 잡습니다.

“나는 오늘 얼마나 나와 대화했는가.”

이 질문 하나면 충분합니다.

혼자 있는 시간, 그건 결국 자기 자신과 평생을 함께 살기 위한 리허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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