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만 하는 직장인 말고, 일도 하는 직장인으로
지난 8년은 제 인생에서 가장 치열한 시기였다. 책을 읽고 글을 썼지만 눈앞에 변하는 건 없었다. 읽을수록 막막했고, 쓸수록 불안했다. 그럼에도 계속할 수 있었던 건 믿음 하나 덕분이었다. 독서와 글쓰기가 평생의 일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그 믿음이 불안을 잠재웠고, 내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했다.
직장을 다니며 하루 열아홉 시간을 깨어 있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깨어 있었다. 그 시기엔 변명할 여유도, 합리화할 틈도 없었다. 어쩌면 인생의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었기에 후회 없이 살고 싶었다. 스스로 세운 목표가 분명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서른 살에 첫 직장을 얻었다. 운이 좋아서 괜찮은 사람들과 일할 수 있었고, 큰 고생도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목표가 생기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이라기보다, 생계를 위해 선택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 일을 통해 이루고 싶은 게 없었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도 몰랐다. 그저 일상을 버텼다.
그럭저럭 20년이 흘렀다. 돌아보면 큰 위기도 없었지만, 큰 의미도 없었다. 목표가 있는 일과 없는 일의 차이는 분명하다. 목표가 있으면 시작이 단단하다. 가는 길이 험해도 어디로 향하는지 알기에 흔들리지 않는다. 목표가 없으면 방향이 늘 바뀐다. 이 길이 나은가, 저 길이 빠른가 고민하다가 에너지만 낭비한다.
과정도 다르다. 목표가 있는 사람은 어려움이 와도 버틴다. 예상치 못한 일도 과정의 일부라 받아들인다.
목표가 없는 사람은 금세 남 탓, 상황 탓을 한다. 결국 시작부터 다르니 결과도 달라진다.
목표가 있는 사람은 끝을 맺고, 없는 사람은 중간에 멈춘다. 그렇다고 목표만 세운다고 되는 건 아니다. 목표를 이루고 난 뒤 허무함을 견디는 일도 남는다. 많은 직장인이 이 단계에서 혼란을 겪는다. 열심히 일했는데 어느 순간 공허함이 밀려온다.
이 일이 내 인생의 전부인가 의문이 든다. 그건 게으름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묻는 신호다. 우리는 대부분 좋아서 일하기보다 살아남기 위해 일한다. 배운 대로, 시키는 대로 산다. 그 결과 일은 잘하지만, 삶은 서툴러진다.
일을 잘한다는 이유로 잘 사는 줄 알았지만 막상 퇴근 후엔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 모를 때가 많다. 일은 늘 바빴지만, 삶은 비어 있었다.
8년 전 나는 하루를 다르게 살기로 했다. 출근 전에 글 한 편을 쓰기 시작했다. 잘 쓰고 못 쓰고를 따지지 않았다. 쓰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었다. 그 한 편이 나를 다시 나에게 연결시켰다. 퇴근 후엔 회사원 김 모씨였지만 아침엔 작가 김 모씨였다. 이 균형이 나를 버티게 했다. 직장에는 노동을, 글에는 존재를 담았다.
목표는 거창할 필요가 없다.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사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잘 살아낸 하루가 쌓이면 결국 인생이 된다. 오늘을 소홀히 한 사람이 내일을 특별하게 만들 순 없다.
30대, 40대, 50대 직장인에게 두 가지 길이 있다. 일만 하는 사람으로 살거나, 일을 하며 삶도 하는 사람으로 사는 길이다. 전자는 월급으로 버티지만, 후자는 의미로 살아간다. 같은 일을 해도 태도에 따라 삶의 깊이가 달라진다.
회사의 일은 나의 전부가 아니다. 일은 나를 증명하는 수단이지, 나를 대체하는 이름이 아니다. 때로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일하고 있는가, 아니면 일에 끌려가고 있는가. 일에 의미를 부여하면 삶이 넓어지고, 일에 매달리면 삶이 좁아진다.
의미는 거창하지 않다. 퇴근 후의 짧은 독서, 아침의 한 줄 일기, 누군가에게 전한 격려 한마디가
당신의 하루를 다르게 만든다.
인생은 긴 마라톤이 아니다. 매일의 단거리 질주가 이어진 것이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달릴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사람이 결국 완주선에 선다. 목표가 없다고 멈추지 말고, 작은 목표라도 세우면 된다. 오늘의 나를 어제보다 덜 후회하게 만들자. 그 정도면 충분하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잠시 눈을 들어 보자. 화면 대신 창밖을 바라보는 그 순간, 내 마음의 풍경이 달라질 수 있다. 작은 생각 하나, 짧은 기록 한 줄이 인생의 방향을 바꿀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도 일은 해야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자신을 잃지 않는 일이다. 삶이란 결국 자기 자신과 오래 함께 가는 일이다. 그 여정을 위해 오늘 한 걸음만 제대로 내딛자.
https://youtu.be/uU8awOB1Muw?si=RNypkQ29pSd16_h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