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을 학원에 내려준 뒤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일요일인데도 학생들이 조용히 공부하고 있었다. 그들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시험 준비란 결국 마라톤과 닮았다는 사실을. 결승선까지 가는 사람은 빠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페이스를 지키는 사람이다.
마라톤에서 가장 중요한 건 속도 조절이다. 옆 사람에게 휘말려 오버페이스 하면 초반 기세와 상관없이 중반에 무너진다. 시험도 그렇다. 체력이 부족하면 계획은 허상이고, 계획이 없으면 체력도 허사가 된다. 이 둘이 균형을 맞출 때 비로소 결승선을 넘을 힘이 생긴다.
얼마 전 달리기를 하다 다시 그 사실을 실감했다. 10km를 목표로 뛰었지만 7km 지점에서 숨이 턱 막혔다. 잠시 걸으며 생각했다. ‘체력이 부족했나, 아니면 페이스 조절을 못했나.’ 답은 둘 다였다. 욕심을 내면 초반엔 기분이 좋다. 하지만 그 기분이 오래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머지는 고통이 맡는다.
달리기는 솔직하다. 준비한 만큼 달리고, 속도 조절한 만큼 완주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직장에 다니며 건축기사 시험을 10번 넘게 봤다. 다 떨어졌다. 원인은 단순했다. 페이스 조절 실패. 초반에 의욕만 높고 꾸준함은 없었다. 체력은 술자리에서 소모했다. 매일 공부는 못 했어도, 매일 술은 마셨다. 그때 문제집 대신 잔을 들었던 손이 지금 생각하면 참 아쉽다.
자격증 실패는 오래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렇다고 다시 도전하고 싶진 않았다. 대신 다른 곳에 투자하기로 했다. 그중 하나가 달리기다. 건강을 만들고 싶은 마음도 있고, 성취를 맛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무엇보다 달리기는 정직하다. 준비하면 결과가 오고, 준비하지 않으면 그대로 들킨다.
시험도, 달리기도, 인생도 계획이 있어야 변수에 대처할 힘이 생긴다. 계획이 변수를 없애진 못한다. 하지만 변수에 휘둘리지 않게 만든다. 체력이 바닥나면 쉴지, 조금 더 갈지 선택할 수 있다. 공부가 막히면 오늘의 기준을 조정할 수 있다. 계획이란 결국, ‘다시 돌아올 자리’를 미리 만들어 두는 행위다.
인생은 예상 못한 변수 투성이이다. 열대야, 무더위, 상사의지시, 끝없는 알림창. 여기에 매일 휘둘리다 보면 정작 ‘나’는 사라진다. 계획적 삶이 필요한 이유는 단순하다.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나를 잃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구조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계획대로만 살 수는 없다. 하지만 계획이 있으면 다시 계획으로 돌아올 수 있다. 오늘 조금 무너져도 내일 다시 기준선으로 복귀할 수 있다. 마라톤에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듯, 인생도 가다 서다 반복하며 결국 목적지에 닿는 것이다.
당신에게는 ‘나를 나답게 만드는 계획’이 있는가?
가장 작은 계획부터 세워보자. 10분 읽기, 30분 걷기, 술자리 한 번 줄이기. 이 작은 계획들이 쌓여 당신의 기초체력이 되고, 기초체력은 변수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당신만의 페이스를 만들어줄 것이다.
https://youtu.be/GUQYs4IInHs?si=OKxs1Bq8WFmOGHY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