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볼 수 없다.
너는 많은 이야기와 의미를 담고 있다.
사람들은 너를 보고 나를 짐작하게 된다.
기분 좋은가?
우울한가?
힘든가?
가까운 사이 일 수록 너를 더 신경 쓰게 된다.
가까운 사이라 더 자주 보게 되고,
자주 볼 수록 너를 더 이해하게 된다.
어릴 때 너는 누구보다 당당했다.
한껏 힘이 들어간 모습은 누구에게도 질 것 같지 않았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신감
실패에도 다시 일어서는 용기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뚫고 나가는 돌파력
원하는 모든 걸 손에 넣을 것 같은 기대로 가득했었다.
하지만 세상은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좌절하고, 외면당하고, 밀려날 수 있는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게 현실에 순응하며 잔뜩 움츠려 들게 되었다.
누군가는 너를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애써 강한 척한다.
강한 척은 강한 게 아니다.
강함은 있는 그대로 인정할 때 드러난다.
자신에게 솔직해질 때 인정도 할 수 있다.
솔직해지려면 용기가 있어야 한다.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는 용기,
그게 강한 게 아닐까.
반대로 약해 보인다고 약한 건 아니다.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게 자칫 약해 보일 수도 있다고 오해한다.
남들을 의식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게 남들을 의식해야 하는 건지 묻고 싶다.
아이들은 너를 통해 안정감을 갖게 될 거다.
아이들 눈엔 세상의 전부로 보여질 거다.
어릴 땐 너의 모습에 담긴 의미를 완전히 이해 못 할 수도 있다.
자라며 생각이 부딪히며 때론 오해하기도 하겠지.
오해로 인해 너를 두 번 다시 안 보려 할 수도 있다.
긴 시간 쌓여온 오해의 감정이 무뎌질 때쯤
문득 눈에 들어온 너의 모습에 후회가 밀려들 수도 있다.
세상의 중심이라 믿었던 그 모습은 사라졌고,
더 이상 안락함을 느낄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갈 시간이 적어지고 있다.
다가올 시간은 너를 더 초라하게 할 수도 있다.
살아왔던 대로 산다면 초라해지는 걸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살길 바라고,
이전과 다른 모습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가진 걸 나누며 함께 살기를 선택한다면
지금 보다 더 빛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영원히 볼 수 없는 나의
'뒷모습'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따라
나의 뒷모습도 달라질 거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