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느끼지 못했다면 글을 썼을까요? 8년 전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 중 하나는 그 당시 고통을 느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외부 자극에 의해 통증을 느끼는 것만이 고통은 아닐 겁니다. 채워지지 않는 어떤 결핍도 일종의 고통이겠죠. 그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글을 쓴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8년 전 저는 몸과 마음이 힘든 시기였습니다. 속 사정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습니다. 그럴 성격이 못 됐죠. 속으로 끙끙 앓으며 병을 키우는 편입니다. 오히려 누구든 붙잡고 말했다면 도움을 받았을지 모릅니다. 쉽게 그 시기를 이겨냈을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스스로 방법을 찾으려니 더 늪에 빠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때마침 책을 만났고 비슷한 시기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책과 글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줄 거라는 걸 그때는 몰랐습니다. 단순히 손에 잡힌 걸 놓을 수 없어서 붙잡고 있었을 뿐입니다. 하루하루 읽고 쓰기를 반복하면서 어쩌면 이 두 가지가 나에게 희망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고통은 마음이 만든 통증입니다. 돌이켜보면 8년 전 몸과 마음이 힘들다고 느꼈던 건 스스로 만들어낸 감정이었습니다. 그때 그 강점을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었습니다. 만약 마음 근육이 단단했다면 말이죠. 불행히도 여물지 못한 마음 탓에 힘든 시기였다고 단정 지었던 것입니다.
이제 와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는 것도 그사이 읽고 쓰면서 마음 근육을 키웠기 때문입니다. 고통을 고통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죠. 8년 동안 매일 읽고 쓰면서 내 감정과 생각에 대해 끊임없이 객관화해 왔죠. 그러면서 무엇에 더 집중해야 하는지 스스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는 동안 고통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고통은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다만 고통을 대하는 태도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으로 인정하지 않는 거죠. 단지 여러 감정 중 하나라고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래야 고통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마음에 근육이 생겼기 때문이죠.
읽고 쓰는 행위는 마음을 단단하게 해 줍니다. 단단해진 마음은 어떤 고통이든 무디게 해 주고요. 물론 완벽하게 무뎌지지 않습니다. 다만 고통으로부터 빠르게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오게 해 주겠죠. 그래야 흔들리지 않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원하는 모습으로 살 수 있고요.
우리는 저마다 자기만의 고통을 안고 삽니다. 누구의 고통이 더 크다고 감히 가늠할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누구든 그 고통에서 스스로 빠져나와야 한다는 겁니다.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자기 노력에 의해서 말이죠. 이때 필요한 게 읽기와 쓰기라고 감히 말합니다.
컵에 물을 따르면 밑바닥부터 채워집니다. 절대로 중간부터 차지 않습니다. 읽고 쓰는 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매일 조금씩 반복하면 나의 가장 못마땅한 부분부터 서서히 변화가 찾아옵니다. 상처가 난 자리에 새살로 채워지는 것처럼요. 새살이 자란 자리는 이전보다 더 단단해질 테고요.
오늘도 읽고 쓰기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당장 눈에 띄게 달라진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주 작은 변화가 생겼을 겁니다. 내일도 똑같이 반복합니다. 그러면 또 아주 작은 변화가 생기겠죠. 그러다 지금 느끼는 고통으로부터 서서히 벗어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꾸준히 읽고 쓴다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