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은 쓸모라도 있지, 분노는...

by 김형준


연필은 자신이 어느 순간 사라질 거라는 걸 알까요? 종이에 자기 몸을 비빌수록 흔적은 남기지만 존재는 사라지죠. 연필을 쓸수록 사라지는 게 안타깝습니다. 물론 쓸모를 다하고 장렬하게 퇴장하는 건 연필에게 이보다 큰 영광은 없겠죠. 반면 사라지는 게 반갑고 당연한 게 하나 있습니다. 우리 감정 중 '분노'라는 녀석입니다. 왜일까요?


평소 분노를 아무렇지 않게 달고 사는 사람 있습니다. 작은 일에도 화를 내고 손톱만큼 손해도 참지 못하죠. 이런 태도는 정의롭다기보다 자기중심적 사고죠. 죽으면 죽었지 털끝만큼 피해에도 분노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입니다. 이 분노가 혼자에게만 영향을 미치면 아무 상관없습니다. 불행히도 거의 모든 분노는 주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굳이 자기에게 화살이 오지 않아도 그 상황 자체만으로 좌불안석을 만드니 말입니다.


연필이 자신을 그만 괴롭히라고 화를 내면 어떨까요? 주인은 눈치를 보겠죠. 얘를 써야 해 말아야 해. 글씨를 쓰지 못하게 성질을 부린다면 더는 연필로써 가치는 없습니다. 성질이 더러운 주인이라면 당장 버리고 샤프나 불펜을 사용하겠죠. 분노는 이처럼 전염성도 강합니다. 화를 내는 연필(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두 가지뿐입니다. 눈치를 보든가 더 크게 화를 내든가. 연필처럼 힘이 없는 녀석에게는 아마 더 크게 화내는 걸 당연하게 여길 겁니다. 그러나 연필이 아닌 자기보다 힘이 세고 권력을 가졌다면 분노는 스스로 사그라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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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라면 자녀에게 한 번쯤 화를 냈을 겁니다. 그 화에는 다 이유가 있었고요. 밥 먹는 태도, 부모의 통제에 따르지 않고, 시키는 걸 제대로 하지 않는 등등. 어떤 상황에서든 부모는 아이를 올바르게 키우기 위한 선택이라고 합리화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아이의 입장에서 부모의 분노는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질까요? 자신이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이성적으로 판단할까요? 아니면 왜 화를 내는지 모를 때가 더 많을까요?


아이가 사춘기를 지나 이성적 사고가 가능해질 때까지 대개 후자로 더 많이 생각합니다. 자기 잘못을 깨우치기보다 부모의 분노에 더 겁을 먹을 뿐이죠. 왜 자신이 지금 부모에게 혼나는지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부모의 분노는 그저 그 순간 피하고 싶은 공포일뿐입니다.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아이는 점점 부모에게 멀어짐을 선택합니다. 스스로 벽을 세우는 거죠. 부모는 자신의 태도가 잘못됐다는 걸 인식하지 못하는 이상 아이의 태도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점점 멀어집니다.


사회적으로 공분을 살 만큼 잘못한 대상에게 분노를 느끼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때 분노는 정의에 가깝고 지극히 당연한 감정으로 인정받습니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 사이에 느끼는 분노는 조금 다릅니다. 분노가 시작되는 상황이 공분을 살만큼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니라는 거죠. 앞서 아이의 사례도 그렇고, 직장에서도 동료 선후배 사이에 분노를 느끼는 상황은 사소한 감정에 의해 촉발될 때가 많습니다. 지나고 보면 먼저 사과 한 마디 하면 커지지 않았을 그런 일이었죠. 그 순간 감정을 이기지 못해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고 말았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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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8년 동안 책 읽고 글 쓰면서 점점 사람처럼 살고 있습니다. 자극에 따라 감정이 롤러코스트를 타지 않게 하려고 부단이 노력해 왔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주변 사람에게도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말이죠. 분노할 때 그 본 노는 가장 먼저 자신을 찌릅니다. 기분이 정말 뭣같아지는 거죠. 내 기분이 그렇다는 걸 주변 사람이 알아주는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그들 속으로 '미친개는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여길지 모릅니다. 자신에게 좋을 게 하나 없는 감정이 분노입니다.


"감정 폭발은 곧 이성의 결함이다. 어리석은 자가 격분하고 있을 때 냉정을 잃지 않는 사람은 성숙한 인간의 징표이다. -발타자르 그라시안-


연필은 쓸수록 사라져 가는 게 안타깝지만, 분노는 드러낼수록 자신만 더 안타까운 사람이 되고 맙니다. 분노를 다스리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잘 압니다. 쉽지 않기 때문에 더 노력해야 할 가치 있겠죠. 노력으로 인해 분노로부터 멀어지면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이 더 가까워집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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