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크게 두 종류이다. 스스로 정한 원칙을 지키지 못했을 때 무너지는 사람과,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지켜내는 사람이다. 이 둘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자기가 정한 원칙을 대하는 태도에 달렸다. 매일 책을 읽겠다고 다짐한 사람이 업무로 인해 책을 읽지 못했다. 다음 날도 같은 상황이 반복돼 책을 읽지 못했다. 일주일 중 나흘을 건너뛰었고 주말이 됐다. 그는 두 가지 선택지 앞에 놓인다. 하나, 나흘을 건너뛰었으니 이미 틀렸다며 책 읽기를 포기한다. 둘, 나흘 동안 읽지 못했으니 이제라도 다시 읽기를 선택한다. 혹자는 당연히 두 번째를 선택하지 않겠냐고 묻는다. 불행히도 사람은 '당연한 선택'을 하는 동물이 아니다. 인간의 의지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강하지 않다.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은 의지가 강해서가 아니라 시스템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갔었다. 여행의 목적은 즐겁고 행복한 순간을 추억으로 남기기 위해서다. 즐겁고 행복한 순간에 빠질 수 없는 게 음식이다. 먹는 즐거움은 여행의 추억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그걸 알면서도 음식 앞에서 머뭇거렸다. 먹는 그 순간은 즐거울지 몰라도 먹은 뒤 몸의 변화와 다시금 입이 터져 양껏 먹게 되지 않을까 싶은 걱정이 앞섰다. 쉽게 살이 찌는 체질이라 의지가 무너져 그동안 노력이 물거품이 될까 싶었다. 그래서 음식을 앞에 두고 깨작깨작 거렸고, 한 입 먹어보라고 건네면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먹는 즐거움보다 내 몸 챙기는 게 먼저였다. 그러니 여행이 주는 즐거움을 절반밖에 누리지 못했었다.
그렇게 나흘을 보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었다. 여행 내내 의지로 버틴 덕분에 4년 넘게 반복해 온 루틴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의지 이전에 일종의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몸으로 기억하게 만들었달까. 상황이 바뀌고 환경이 달라져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회복 탄력성을 스스로 만들어 놨었다.
여행은 우리를 반복되는 일상에서 180도 다른 환경으로 데려다 놓는다. 여행을 통해 느끼는 낯선 자극이 우리에겐 활력소가 된다. 그래서 회수가 많을수록 삶이 더 풍요로워진다고 많은 전문가가 말한다. 한편으로 떠나고 돌아옴이 반복될수록 내가 지켜야 할 일상이 쉽게 무너지기도 한다. 앞에서 말한 두 가지 선택지 앞에 매번 놓이게 된다.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여행은 약이 될 수도 독(조금 과장하자면)이 될 수도 있다.
엊그제 다시 일 년 만에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떠났다. 2박 3일 여정이라 더 진하게 남기도 싶었다. 나름대로 정한 콘셉트는 먹고 죽자였다. 물론 무엇을 먹을지는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주기로 했다. 대신 무엇을 먹든 나 또한 그 순간을 즐기기로 정했다. 이틀 동안 먹은 음식을 일일 나열할 수 없지만, 적어도 과거처럼 음식을 앞에 두고 입을 막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손이 가는 대로, 입이 원하는 대로 마음껏 양껏 먹었다. 가족은 음식을 나누어 먹기 때문에 '식구'라고도 말한다. 음식을 두고 둘러앉아 먹을 때 유대감은 더 돈독해진다. 서로의 입에 떠먹여 주며 애정도 깊어지고. 그 시간과 기회가 많을수록 친밀감 또한 높아진다. 먹기 전, 중, 후 이 모든 순간에서 느끼는 감정 덕분에 가족은 더 끈끈해질 수 있다. 끈끈함에 따라 서로에 대한 사랑도 깊어질 테다.
여러 해 동안 반복된 '회복 탄력성' 덕분에 이번 여행도 먹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중이다. 한편으로 여행에 몰입하는 게 더 쉽게 원래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여행에 온전히 집중한 사람은 여행이 주는 가치를 충분히 만끽한다. 그 충만함을 다시 느끼기 위해 다음 여행을 기대한다. 그 기대를 위해 오늘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면 여흥에서 빠져나오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렇게 다시 원래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시스템이 만들어진다.
오늘을 끝으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마지막 날인만큼 다양한 먹거리를 준비했다. 먹는 순간과 맛에 집중하면 더 오래 기억에 남는 법이다. 기억은 추억이다. 추억은 삶의 원동력이다. 고로 즐겁고 행복한 추억이 많을수록 삶을 내 의지대로 살 수 있는 힘을 스스로 만들어 낸다고 할 수 있다. 그 힘이 클수록 회복 탄력성도 커진다. 결국 회복 탄력성에 의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시스템을 갖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