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 상대의 마음을 여는 열쇠

#12. 쓸수록 쓸모 있는 단어

by 김형준

대화

: 상대의 마음을 여는 열쇠


#1. 학교

새 학년이 시작되면 반 배정을 받는다. 아는 얼굴 반 모르는 얼굴 반이다. 나는 낯을 많이 가려 처음 보는 친구들과 섞이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먼저 다가가는 성격이 아니었다. 상대가 먼저 다가오면 반 발 물러난 체 경계를 풀지 못했다. 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익숙해질 즘 마음을 열었다. 내 성격과 반대되는 친구들이 의아했다. 어떻게 저렇게 행동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들은 언제나 먼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스스럼없었다. 특별하지도 않았다. 일상의 언어를 사용하며 오래 알고 지낸 것처럼 편하게 대했다. 나는 그게 힘들었다. 눈을 마주치는 것도 불편했다. 눈이 마주치지 않기 바랐다. 말을 건네는 것도 어려웠다. 먼저 걸어오는 것도 불편했다. 내가 익숙해져야 그들과도 편할 수 있었다. 그래도 끝까지 불편한 친구도 있다. 불편하면 불편한대로 놔둔다. 굳이 먼저 다가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2. 직장

지금까지 열 번 정도 이직을 했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5년이었다. 첫 출근의 어색함이 제일 힘들었다. 경력이 적을 땐 상급자 도움을 받았다. 술자리도 몇 번 하면서 자연스레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줬다. 경력이 쌓이면서 이런 호의마저도 없어졌다. 입사 첫날 가볍게 인사 나누는 게 전부였다. 분위기 적응도 업무 파악도 모두 당사자 몫이었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2년 정도 있었다. 일 년 전쯤 새로 입사한 공사부장이 있었다. 입사 후 며칠 뒤 회사 체육대회였다. 그분은 본사 직원인 나를 처음 봤고 가깝게 지내고 싶다며 말을 건넸다. 하필 체육대회 날이 7월 말 무더위가 최고조일 때라 더위를 잘 타는 나는 마음에 여유가 없었고, 뜨뜻미지근하게 인사를 건넸다. 인사를 주고받고서도 하루 종일 별 다른 대화가 없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이날 내 행동이 마치 자신을 피해 다니는 것 같았다고 했다. 내 의도와 다르게 그분에게 안 좋은 첫인상을 남겼다. 그 뒤로도 현장과 본사 근무로 얼굴 볼 일이 거의 없었다. 그분은 일 년 이 흐른 지금도 첫인상 때문에 내가 어렵다고 했다.


#3. 수강생

작년부터 주말마다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 독서모임, 글쓰기 수업, 부동산 강의 등 다양한 내용을 들었다. 각각의 강의는 4주에서 8주까지 기간도 다양했다. 같은 강의를 듣는 대부분은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다. 공통의 관심사로 모이긴 했지만 선뜻 편해지지는 못했다. 여전히 낯 섬을 경계했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래도 이런 나를 아랑곳 않고 먼저 말을 건네는 이들이 꼭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적극적인 성격 덕분에 짧은 시간 내 거리를 좁힐 수 있었다. 대화는 보통 그들이 주도했다. 일상적인 대화를 자연스레 건네며 간격을 좁혀왔다. 적극적으로 다가와 준 덕분에 아직까지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내가 왜 소극적인지 이유를 찾지 못했다. 타고난 기질일 수도 있다. 아니면 먼저 다가갔는데 거절당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 이런 성격은 학교 생활을 지나 사회생활로 이어지는 내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러지 말자고 늘 다짐해봐도 그때뿐이었다.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성격을 고치려고 도움되는 책을 읽어봐도 결국 스스로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다. 여러 차례 시도는 했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가벼운 대화를 던져봐도 잠깐 뿐이었다. 더 깊이 있는 대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상대방과 나 사이에 놓인 낮은 담을 허물고 싶어 건넨 대화가 오히려 높은 투명벽을 얹는 꼴이었다. 내가 어색해하면 상대방은 더 어색해했다. 외국 속담에 친구를 만들고 싶으면 바보처럼 행동하라고 했다. 바보의 의미는 자신을 드러내고 낮추라는 의미이다. 상대방에게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못하면 상대방도 드러내질 않는다. 내가 먼저 다가가고자 했다면 약간은 바보스러워 보이는 게 오히려 쉽게 가까워지는 방법일 수 있다. 생각해보면 가까워지기 위해 대화는 시도했지만 진실되진 못했던 것 같다. 늘 마음 한편에 투명한 벽을 치고 넘어오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타고난 본성' 같은 것은 없다. 그 말 자체는 사람들을 멋대로 분류하고 구실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다. 나는 내 선택의 총화이며 내가 간직한 꼬리표들은 모두 '지금까지는 그랬지'라는 새 꼬리표로 바꿀 수 있다. 웨인 다이어의 말이다.

나는 '대화'의 정의를 상대방의 닫힌 마음을 열 수 있는 열쇠라 생각한다. 누구나 첫 만남은 어색하다. 기질적으로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거다. 그 외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력으로 이를 극복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제일 먼저 자신을 드러내고 낮추는 것부터 시작했을 거다. 그런 노력이 결국 나 같은 사람의 마음을 먼저 열게 했던 거라 생각 든다. 어쩌면 '나는 그런 사람이야'라는 꼬리표를 스스로 붙이고 있었다. 변해보고 싶었지만 적극적이지 못했다. 변하고 싶은 모습이 한두 번의 시도 만으로 된다면 누구나 원하는 모습을 갖게 될 거다. 하지만 변화는 그리 만만하지 않다. 특히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더욱 드렇다. 사람을 얻기 위해 서로의 벽을 허무는 처음 대화만큼 중요한 것도 없을 거다. 나도 상대를 경계하듯 상대도 나와 같다. 하지만 진심을 다해 상대를 대하고 다가갈 수 있는 대화로 물꼬를 튼다면 생각보다 빨리 내 사람을 얻게 되지 않을까 생각 든다.

이중 삼중 생체인식까지 겹겹의 잠금장치로 열기 힘든 문도 있지만, 내가 먼저 다가가고 나를 낮춤으로써 열 수 있는 문이라면 그 어떤 문보다 가치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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