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좋은 빽(?)은 없다

내 뒤를 지켜주는 사람들

by 김형준

킥보드를 타고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 아이가 있다. 그 뒤엔 아이의 할머니로 보이는 분이 서 있다. 신호가 바뀐다.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있는 힘껏 발을 차고 나간다. 옆을 지나는 사람은 신경 쓰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간다. 아이의 할머니는 느릿하게 뒤를 따른다. 횡단보도를 건넌 아이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계속 앞으로 간다. 뒤따르는 할머니를 의식해서인지 잠시 멈춘다. 할머니와의 거리가 좁혀지면 또다시 발을 차고 나간다. 지하철 입구, 출근 시간이라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도 아랑곳하지 않는 아이의 모습엔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어서 일거다. 조용히 뒤따르는 할머니가 있음을 알기에 사람들 사이를 여유롭게 오고 갈 수 있을 거였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기 시작하면 삼삼오오 산을 오른다. 산을 찾는 이유는 제각각이다. 꽃이 핀 모습을 눈으로 보기 위해, 얼음이 녹은 냇가에 흐르는 물소리를 듣기 위해, 새순이 돋아 나는 나무와 풀을 보며 생명의 신비를 느껴보고 싶어서 일거다. 산을 오르며 보고 듣고 느꼈다면 마지막으로 입이 즐거운 경험도 빼놓을 수 없다. 산 아래 식당에 자리를 잡고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사이에 두고 대화가 이어진다. 허기가 채워지고 취기가 오르기 시작하면 대화가 토론이 된다. 토론이 격해지면 언쟁이 되고, 언쟁이 심해지면 말싸움이 된다. 도를 넘은 말싸움은 몸싸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대개의 몸싸움에는 말리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말리는 사람이 있다는 건 믿을 구석이 있다는 의미이다. 말리는 사람이 있으니 더 열을 내며 싸우려고 한다. 가끔 말려야 할 사람들이 말리지 않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뻘쭘한 표정으로 싸움이 끝나기도 한다.


몇 년 만에 친구들과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다. 결혼 전이라면 아무렇지 않게 다녀올 수 있다. 결혼을 하고부터는 혼자만의 시간, 자기 자신을 위해 무언가 한다는 게 쉽지 않다. 상대방의 이해와 배려가 없으면 자치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즉흥적으로 계획을 짜면서 내심 허락을 받을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다. 실 것 준비해놓고 허락을 받지 못하면 실망감도 들겠지만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순서가 틀렸기 때문이다. 먼저 상대방에게 양해와 허락을 얻은 뒤 계획을 세우는 게 순서일 거다. 그렇지 못했다면 상대방이 거절해도 뭐라 할 수 없는 거다. 다행히 하루 동안 내 역할까지 기꺼이 해주겠다는 아내가 있었기에 믿고 갈 수 있었다.


아이의 뒤를 따르던 할머니, 싸움을 말리는 친구, 나를 배려해준 아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분비는 사람들 사이를 겁내지 않고 다닐 수 있게 해 주고, 감정보다 이성으로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돕고, 가끔 지친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 준다. 할머니의 보살핌은 받은 아닌 커서 다시 할머니를 보살필 수 있게 될 거다. 싸움을 말리는 친구 덕분에 더 좋은 우애를 지켜갈 수 있게 될 거다. 내가 힘들고 지친 때 아내의 배려로 활력을 찾음으로써 더 가정에 충실한 남편이 될 수 있을 거다. 내가 믿고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건 나도 믿고 의지 할 사람이 되어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세상일 중 당연한 건 없다고 했다. 나를 위해 누군가는 희생하고 배려해야 한다. 또 그렇게 받는 다면 되돌려 주는 것도 당연한 거다. 그들이 조건 없이 나에게 주었듯 나도 아무런 조건 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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