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치유의 힘을 담고 있다.
출장을 갈 땐 차 안에서 e-북을 듣는다. 그날도 전자도서관에서 읽을 책을 고르고 있었다. 문득 읽었던 책 목록이 눈에 들어왔다. 많은 책을 읽었다. 짧은 시간이었다. 많은 양의 책들이 녹아들고 있었다. 제대로 읽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많은 양의 책을 읽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책 읽기 시작한 초기는 의미를 받아들이기 보다는 글을 읽는데 치중하게 됐다.
책 읽기가 익숙하지 않았던 내게 책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새로운 도전에는 준비 기간 필요하다.
에베레스트를 오르기 위해 등반팀이 구성되면 수개월 동안 준비 기간을 거친다.
실제로 산에 오르는 과정을 가정한 산행이 수없이 반복되며, 이 속에서 각자의 역할에 맞는 연습이 이루어진다.
실제로 등반이 이루어지면 어떤 상황이 어떻게 펼쳐질지 아무도 알 수 없기에 반복을 통한 연습만이 그들을 위험으로부터 구하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준비 기간 동안 어떻게 준비했는지에 따라 그들의 등반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충분한 준비 기간을 거친 도전만이 원하는 성과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나의 책 읽기도 일정 기간은 준비 기간이 필요했다. 오랜 시간 책을 멀리했고, 책 읽기를 몇 차례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기 때문에 이번만은 달라야 했다.
글자를 읽으며 책과 친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했다.
책 읽기가 반복되며 책에 대한 거부감이 덜해지고, 읽는 즐거움을 깨닫게 되었다.책과 친숙해진 이후 책 속의 의미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책 읽기를 시작할 즈음의 직장생활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때였다.
건설회사는 현장 운용이 핵심이다. 재정 흐름이 현장에서 발생한다.
당시 매출의 80%가 현장에서 이루어졌다. 대부분의 현장은 한 달 단위로 결제해주는 시스템이다.
매달 정기적으로 결제를 해줘야 현장이 원활히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재정적으로 빈약한 회사는 결제가 늦어지게 되고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하루만 늦어도 업체나 근로자는 득달같이 연락이 온다. 그들에게는 정당한 요구이다.
당연히 받아야 할 걸 달라고 하는 거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격한 감정을 토해 낸다.
나는 회사를 대표해 그들의 감정을 받아내는 일을 했다. 그들이 감정적으로 나를 대해도 나는 그럴 수 없다.
일을 시키고 돈을 못 주는 면 어떤 이해도 받을 수 없다. 한마디로 죄인이다.
내 월급에는 이들을 상대하는 대가가 포함되어 있다. 싫어도 받아내는 게 내 일이다.
그게 월급쟁이다. 하지만 나도 사람이다. 좋은 것도 한두 번은 좋다.
하물며 그런 악감정을 한 달 내내, 아니 기한에 상관없이 돈이 지급되는 그 순간까지 감당해야 한다면
과연 어느 누가 온전한 정신으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겠는가.
이런 감정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어느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직장 내 상사에게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별수 있냐 우리도 돈을 받아야 주지 않겠냐'... 무책임 한 말이지만 별수 없다.
그들도 같은 월급쟁이이다. 유일한 낙은 퇴근 후 지인들과 소주 한잔하며 풀어내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효과는 술자리까지 만이다.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오히려 몸과 정신이 축나는 악순환만 이어졌다.
"사람들이 책에서 찾고 싶어 하는 것은 즐겁고 행복한 감정을 회복하는 것이다.
페이지 위에 쓰여 있는 신호들에 녹아들어 가고, 해석이 아닌 텍스트 속으로
흠뻑 젖어 들어가고 싶은 것이다. 그럴 때는 의미를 묻는 일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는 책들- 레진 드탕벨 저
당시에는 자기 계발서 위주로 읽었다.
자기 계발서는 보통 저자의 실패에서 성공까지의 스토리를 담고 있다.
내가 처한 상황보다 더 극한 상황도 있었다. 내가 상상하지 못한 처참한 모습도 있었다. 여러 책을 접하며 내 상황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나를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내 주변의 상황은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결국 모든 상황은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나를 객관화 시킨 이후 읽은 책들은 내게 위로도 되고, 충고도 해주었고, 다시 시작 할 수 있다는 용기의 말을 건네왔다. 책에서 위로와 용기를 얻는 건 나의 선택이다. 같은 책이라도 그 사람의 상태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게 다르다고 한다.
누군가에겐 무의미한 책이 누군가에겐 치유의 내용이 되기도 하는 이유다.
책 속의 텍스트는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텍스트에 귀를 기울여 보자.
이를 통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감정이 무엇인지 들여다보자. 그 답을 찾게 되면 이전에 못 느꼈던 행복과 즐거운 감정이 되살아날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