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싶을 때 울어도 괜찮다
눈 밑에 점이 있다. 이 점을 '눈물점'이라고 부른다. 어머니는 눈물 점이 있으면 살면서 눈물 흘린 일이 많게 되니 빼자고 했었다. 어머니의 그런 믿음을 나는 미신이라 여겼다.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렸다. 그러나 4년 전부터 나에게 일어난 일들이 미신만은 아니라고 여기게 되었다.
24살, 독립을 하면서 큰형과도 거리가 멀어졌다. 함께 살 때도 살갑게 지냈던 건 아니었다. 몸이 멀어지니 얼굴 볼 수 있는 기회도 줄었다. 명절 때 보는 게 전부였다. 결혼 이후에도 두어 달에 한 번 점심 한 끼 먹는 짧은 그 시간뿐이었다. 형제라는 단어로 엮여 있을 뿐 어쩌면 남보다 못한 사이였을 수 있다. 서로에게 짐이 안 될 만큼만 처신하는 게 서로를 위한 거라 생각했었다. 고민이 있어도 형을 찾기보다 친구가 더 편했었다. 막내라는 핑계로 응석을 부리며 소주 한 잔 하자고 할 수 있었지만 떨어진 시간만큼 마음의 거리도 멀어져 있었다.
2017년 7월 큰형은 한 마디 인사도 없이 죽었다. 그러면 안 됐지만 형의 죽음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형은 2년 넘게 신장 투석을 받았고 그전부터 여러 합병증으로 몸이 급격히 나빠져 있었다. 허공에 가느다란 쇠줄 위를 걷는 것처럼 아주 작은 흔들림에도 떨어질 것 같은 날을 보내고 있었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맞닿드린 현실은 짐작과는 너무 달랐다. 적어도 떠나는 순간만큼은 곁을 지켜주고 싶었다. 그 곁에서 엇나갔던 우리 둘의 관계를 바로잡아 보고도 싶었다. 그럴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은 체 형은 홀로 생의 마지막 숨을 쉬었다. 형을 마지막으로 마주한 건 입관하는 날이었다. 병으로부터, 부모의 기대로부터, 살아내기 위해 그동안 두 어깨에 지고 있던 모든 무게를 내려놓아서 인지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편안한 얼굴을 보니 아무 생각할 수 없었다. 우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미안했고 안타까워고 후회됐다.
2017년 나머지 몇 달은 정신이 반쯤 나간 체 살았다. 일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직장에서 겉돌고 있었다. 떠다니던 마음을 잡아준 건 책이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어떤 모습인지 보이기 시작했다. 일당 백의 유능한 직장인도 아니었고, 아내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자상한 남편도 아니었고,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친구 같은 아빠도 아니었다. 특히 아이들에겐 거침없이 소리를 지르고 비난을 쏟아붓는 덜 여문 아빠였다. 다른 건 몰라도 아이들에게 향했던 나쁜 행동은 당장 끊었다. 아이에 대해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었다. 생각과 행동을 바로 잡는 건 하루아침에 되지 않았다. 시간이 걸려도 더 늦기 전에 바로 잡아야 했다.
한 번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불과 1년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걸 말하는 자리였다. 준비 한 내용 중 아빠로서 잘못된 행동을 했었다는 걸 고백하는 순간이었다. 이야기를 꺼내자 잔뜩 겁먹고 있는 아이들 얼굴이 떠오르며 다음 말을 잊지 못했다. 많은 사람 앞에서 우는 게 창피하지 않았다. 낯선 자리 낯선 사람들 앞에서 잘못했던 행동을 인정하고 반성함으로써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24년 전 이혼을 결심하고 가족을 떠났던 아버지가 처음으로 전한 소식이 당신의 죽음이었다. 주민센터 담당 공무원을 통해 장례절차를 치를 의사가 있는지 물어왔다. 아버지는 사망 당시 무연고자여서 서류상 직계가족인 형과 내가 원한다면 장례를 치를 수 있다고 했다. 원하지 않는다면 시에서 운영하는 화정터에서 일괄 화장 후 유골은 안치가 아닌 몇몇 곳에 뿌려지게 될 거라고 했다. 사망 소식도 당혹스러웠지만 무연고자였다는 게 더 화가 났다. 분명 아버지는 더 잘 살기 위해 가족을 등졌다고 믿고 있었다. 24년을 떨어져 살며 아무 소식 전하지 않았다면 잘 살고 있어야 했다. 작은 형도 나도 혼란스러웠다.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그 결정에는 어머니의 결심도 꼭 필요했다. 하지만 짐작컨데 어머니는 모른 척했을 거였다. 형과 나는 어머니에게 말하지 않기로 했다. 어쩌면 어머니를 뒤로 숨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또, 이제 와서 아버지의 존재를 주변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여러 핑계를 방패 삼아 아버지의 시신을 위임 처리해주길 바라는 동의서를 작성했다.
얼마 뒤 아버지가 남겨 놓은 흔적을 정리해야 했다. 반 지하 방 두 칸짜리 집은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마지막을 알고 스스로 정리해 놓은 것처럼. 작은 형과 나는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냉기뿐인 집 안을 한 동안 서성였다. 아버지와 떨어져 지낸 24년을 남겨진 유품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백이다. 아쉬움에 남겨진 유품이라도 사진에 담아 보려고 했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 거리던 스마트 폰을 꺼내 들지 않았다. 남겨진 유품들을 눈으로 만 담아두었다. 카메라 렌즈처럼 두 눈은 선명했다.
우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니 웬만한 일에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눈물 점은 얼굴에 난 점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큰 형의 죽음 이후 눈물의 의미가 달라졌다. 눈물은 감정의 한 부분이었다. 억눌러서는 안 되는 당연한 감정 중 하나였다. 어느 새벽 책 속 한 문장에 소리 내 울기도 했었고, 아이에게 잘못했던 행동에 대해 후회하고 반성하는 눈물을 흘렸고, 잘 살고 있을 거라 믿었던 아버지가 무연고자가 되었다는 소식에 울분을 토해 내기도 했었다.
눈 밑 점을 보고 어머니가 한 걱정은 아마 나쁜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컸을 거다. 그래서 점을 빼야 한다고 말했을 수도 있다. 미신을 안 믿는 것도 있지만 지금은 눈물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살면서 눈물 흘릴 일이 생긴다는 건 여러 의미가 있을 거다. 하던 일이 잘 안 될 수도 있고,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낼 수도 있고, 잘못으로 인해 반성과 용서를 구해야 할 때 눈물을 흘릴 수 있다. 이유가 어떻든 울 일이 생기면 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눈물은 실패를 딛고 다시 서겠다는 다짐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며 오래 기억하겠다는 마음이고, 잘못한 행동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