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금지된 빵을 씹어 먹었다

어쩌다 오늘

by 김형준

샐러드 매장이 있는 건물 지하 1층엔 당연히 자리가 없었다. 늘 가던 대로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램프를 내려오자 대각선으로 빈자리가 보인다. 서두르지 않고 빈자리가 보이는 곳으로 차를 몰았다. 저 정도 위치면 엘리베이터를 타기에 가까운 거리였다. 가는 중에 또 빈자리가 보인다. 엘리베이터 바로 앞자리였다. '아싸, 이런 날도 있네.' 한 껏 여유를 부리며 최대한 천천히 주차를 했다. 기어를 'P'에 넣자 전화가 왔다. 익숙한 번호였다.

"차장님 어디쯤이세요?"

"밥 먹으려고 나와있어요."

"사장님이 찾으셔서요. 식사하러 갔다고 했는데도 전화해보라고 해서요. 언제쯤 들어올 수 있으세요?"

"10분쯤 걸릴 것 같은데요. 밥 먹으러 간 거 아시지 않나요?"

"그러게요. 그래도 전화하라고 해서요."

"알았어요, 바로 들어갈게요."

이러려고 괜찮은 빈자리가 눈에 띄었구나 싶었다. 차를 몰고 오는 내내 늘 먹던 메뉴를 앞에 두고 맛있게 먹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왔다. 하릴없는 휴일 오후 비빔면 한 그릇이 먹고 싶어 오이를 썰고, 수프 양념장에 장모님이 직접 짜서 보내준 참기름 반 스푼을 더하고, 얼음이 동동 떠있는 물을 준비한 뒤 봉지에 적인 레시피대로 물과 시간을 지켜 끊여 낸 면을 찬 물에 씻어 낸 뒤 얼음물로 한 번 더 행군 후, 미리 준비해 놓은 비빔장과 면을 맨 손으로 골고루 비빈 후 썰어 놓은 오이를 고명으로 얻은 비빔면을 이제 막 젓가락으로 뜨려던 찰나에 걸려온 전화로 인해 입맛이 뚝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차에서 내리지 않고 시동을 켰다. 지하 2층으로 내려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올라갔다. 주차장 입구 차단기 화면에 '회차 차량'이라고 뜬다. 회차 차량이 되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게 아니었는데. 주차장을 빠져나와 큰길로 들어섰다. 점심시간이라 도로에 차가 없었다. 조금 속도를 높이면 1분이라도 빨리 도착할 거다. 앞에 보이는 교차로 신호등이 녹색불이다. 바뀌기 전에 지나가려 발에 힘을 준다. 속도가 올라가려는 찰나 녹색불이 꺼지고 빨간 불이 들어온다. 마음만 급하다. 또 전화가 온다.

"차장님! 어디쯤이세요?"

"다시 돌아가고 있어요. 왜요 또 무슨 일 있어요?"

"그게 아니고요. 사장님이 차장님 들어오면 전화하라고 하시고 손님하고 식사하러 나가셔서요. 천천히 드시고 오셔도 될 것 같아서요."

"......"

"괜히 제가 다 미안하네요."

"아닙니다. 과장님이 왜 미안해요. 가고 있으니 금방 도착해요."

창문을 열었다. 선루프도 열었다. 교차로 신호가 바뀌자 오른발에 남은 힘을 모조리 실었다. 터보 엔진의 사랑한 소리와 열린 창으로 시원한 바람이 훅 밀려온다. 밀려오는 바람으로도 뜨거워진 얼굴이 식을 것 같진 않았다. 옆 차선으로 몇 대 안 되는 차로 따돌리며 출발했던 그 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남아 있던 반찬 냄새가 코를 건드린다. 냄새를 빼기 위해 문을 열어놨지만 7인분의 묵직함을 빼기엔 시간이 더 필요했던 것 같다. 사무실을 나간 지 30분 만에 다시 내 자리에 앉았다. 관리부 김대리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이전의 사무실 상황을 짐작하게 했다.

"사장님이 이거 전해주고 전화하라고 하셨어요."

메모 한 장과 USB를 건넸다. 앞뒤를 잘라먹은 듯한 메모와 맥락을 짐작할 수 없는 파일 몇 개만 담겨 있었다. 메모에는 3개의 지시 내용이 있었다. 그중 내일까지 끝내라는 것 말고는 급한 게 없어 보였다. 화면을 들어다보고 있는 나를 지나치던 상무님이 말을 건넨다.

"뭐 좀 먹었어?"

"아니요. 조금 있다가 먹어야죠."

"꼭 챙겨 먹어."

"네! 알겠습니다."


1시가 조금 넘어 사장님이 힘차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곧장 내 자리로 오더니 메모에 대해 설명했다.

"제일 급한 게 이 현장 이 부분을 검토해서 내일까지 정리해 줘야 하거든. 이 현장 파일 열어봐."

"이 현장 파일은 사장님이 갖고 계십니다."

"그래? USB 줘봐 다시 담아줄게."

"......."

내일까지 하라고 했지만 파일을 연 이상 당장 끝내고 싶었다. 1시간이며 충분했다. 결과물을 건네받은 사장님은 남은 두 가지를 이번 주까지 마무리하라는 말을 남기고 사무실을 나갔다. 팽팽했던 사무실 공기도 그제야 빈 틈이 느껴졌다.

"차장님 식사하셔야죠?"

"그래야죠. 다녀올게요."

가까운 파리***에서 샐러드 한 팩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먹을 때는 편하게 먹고 싶었다. 딴생각 안 하고 먹는 데만 집중했다. 느긋하게 한 팩 먹고 걷기 시작했다. 걸으며 생각해봤다. 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어딘가 잘못된 부분은 분명 있었다. 잘못된 부분을 내가 이해하고 넘어가는 게 맞을 거다. 왜? 나는 그러려고 월급 받고 있는 거니까. 어쩌다 한 번이고 사장님도 그 당시는 급하다고 여길 수 있는 일이었을 거다. 당연히 자리에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내가 안 보이니 의도적으로 수선을 부린 걸 수도 있다.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내가 자리를 비운 게 잘못이다. 왜? 월급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사무실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내가 점심을 먹기 위해 자리를 비운 게 촌각을 다투는 일을 처리하지 못해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면 할 말이 없다. 경위서 몇 장이라도 쓰라면 써야 한다. 하지만.

샐러드로는 채워지지 않은 허기와 당 충전이 필요했다. 다시 파리***을 찾아 시나몬과 시럽이 잔뜩 얹어진 빵을 집어 들었다. 주중에 금지된 빵이지만 지금 이 순간은 이걸 씹어 먹어야만 다시 사무실을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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