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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n 09. 2021

좋아하던 두부조림을
못 먹게 되었다

밥상머리에서 배운 것들

갓 지어낸 밥은 구운 김 한 장만 얹어도 한 공기를 순식간에 비울 수 있다. 금방 조리된 반찬은 어떤 밥을 갖다 놓아도 한 그릇 뚝딱할 수 있다. 밥은 쌀을 깨끗이 씻고 물량만 잘 맞추면 밥솥의 기술력을 빌어 맛있게 지을 수 있다. 반찬은 다르다. 우리 엄마들이 주방에 오래 머물 수밖에 없는 건 반찬 때문이다. 이런 수고를 덜어 줄 다양한 즉석조리 식품이 마트를 장악하고 있다. 프라이팬에 데우거나 전자레인지에 몇 분 만 돌려도 갓 조리한 반찬 못지않게 그 맛이 일품이다. 물론 바쁜 일상을 사는 우리에게 이 정도 편법(?)은 너그러이 봐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즉석조리 식품이 없었던 우리 어머니 때에는 매일 반찬을 만드는 건 수행에 맞먹는 고난의 연속이지 않았을까 싶다.     


“다녀왔습니다.”

“밥은?”

“아직이요.”

“금방 다 되니까 손 씻고 나와.”

옷을 갈아입고 손을 씻고 밥상에 앉으면 반찬과 국, 밥그릇이 제 자리를 찾는다. 아침 밥상에서 본 반찬이 다시 보여 실망하려던 찰나,

“우와~ 두부조림이네!”

“방금 했으니 식기 전에 어서 먹자.”


지금껏 먹어본 여러 반찬 중 두부조림만큼 조리 과정에 정성과 노력이 드는 반찬은 드물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두부를 길이 방향으로 두툼하게 썬 후 그 안에 물기를 빼내야 한다. 쟁반에 종이 타월을 깔고 그 위에 두부를 펼쳐놓은 다시 종이 타월 덮으며 물기를 닦아낸다. 물기를 최대한 뺀 후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다. 간이 밴 두부는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서 노릇할 정도로 구워준다. 겉이 노릇할 정도로 굽기까지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센 불에 구우면 겉만 타기 때문에 약한 불로 오래 구워야 씹히는 식감이 생긴다. 노릇하게 구워진 두부는 다시 조림용 냄비로 이동한다. 두부가 구워지는 동안 조림을 위한 양념장을 만든다. 고춧가루, 간장, 설탕, 맛술, 참기름, 양파, 대파, 마늘 등을 섞는다. 구운두부를 한 단 깔고 그 위에 양념장을 바르고 다시 한 단 깔고 양념장을 바른다. 준비 된 두부와 양념장을 다 두르고 나면 이제 보통 불로 조리기 시작한다. 두부 안으로 양념장이 충분히 베일 때까지 불 조절을 하며 조려준다. 이렇게 설명이 길 듯 실제 조리 시간도 한 시간 이상 걸리기도 한다. 음식 맛은 정성에 비례한다. 그러니 어쩌다 두부조림이 나오면 이성을 잃고 젓가락을 멈추지 못했다. 그렇게 먹고 나면 밥으로 배가 부른 건지 어머니의 정성으로 배가 채워진 건지 가늠할 수 없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집에서 독립하고부터 집밥을 먹을 기회가 적어졌다. 지인이 운영하던 고시원 방 한 칸에 월세를 내며 독립생활을 시작했다. 낮엔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고, 저녁 6시부터 학교 수업을 들었다. 자연히 하루 세끼는 밖에서 해결했다. 아침은 편의점에서 빵과 우유로 때웠다. 아르바이트하며 점심은 해결할 수 있었다. 수업 들어가기 전 학교 앞이나 교내 식당에서 4-5천 원 짜리 밥을 먹었다. 하루 한 끼도 집밥을 먹지 않아도 마냥 좋은 때였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는 건 밥보다 더 큰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먹는 것에 집착 하는 편이 아니라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는 주의였다. 그렇게 8년 동안 이어진 나 혼자 사는 동안 입맛도 자연히 변하게 되었다. 만나는 사람이 달라지고 직장을 옮기게 되고 사는 환경이 달라지면서 먹는 음식과 좋아하는 음식도 자연스레 변해갔다. 하루 세끼 어머니가 차려준 음식만 먹던 시절을 벗어나 새롭게 맛본 음식의 가짓수가 점점 늘어갔다. 식당에서 파는 음식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맛을 내야 한다. 개인의 입맛보다 다수의 입맛을 만족시키기 위해 조금은 자극적인 맛을 낼 수밖에 없다. 그런 맛에 익숙해질수록 예전에 먹던 집밥과는 자연히 멀어졌던 것 같다.      


결혼한 이후부터 인지, 마흔이 넘어서부터인지 정확하진 않지만, 두부를 먹을 때면 속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맛있게 먹고 돌아서면 기다렸다는 뱃속에서 가스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먹었던 음식이 다 소화될 때까지 불편함은 이어졌다. 한 번 두 번 이어질 때마다 두부를 자연히 멀리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도 내가 두부조림을 좋아하는 걸 알고 가끔 반찬으로 낼 때가 있다. 나만 먹는다면 안 만들면 되지만 아이들도 먹이려다 보니 만들게 된다. 몇 번은 불편함을 참으며 내색하지 않았다. 두부를 좋아하는 아내와 아이를 위해 나만 참고 넘어가면 그만이었다. 문제는 어머니가 만들어주는 반찬이었다. 한 달에 한 번꼴로 반찬을 만들어 보내주신다. 대부분 어릴 적 먹었던 반찬이다. 그때 그 맛이 나는 반찬도 있고, 조금은 맛이 달라진 반찬도 있다. 어머니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간을 보는 입맛도 변해가는 것 같았다. 여전히 아들이 두부조림을 좋아한다고 알고 계신다. 두부를 먹으면 속이 불편해진다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했다. 반찬통 뚜껑이 안 닫힐 만큼 만들어 주지만 한두 번 맛만 보고 냉장고 안을 지키게 된다. 아이들이 먹으면 좋겠지만 약간 매콤하게 하는 편이라 입도 안 댄다. 며칠 지나면 결국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나이가 들고 환경이 변하면서 자연히 입맛도 변해왔다. 입맛이 변하면서 몸도 변했다. 매일 하루 세끼를 책임져준 어머니의 손맛에 익숙했던 시기를 지나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독립하면서 차츰 다른 맛에 익숙해져 갔다. 가족만을 위해 만든 음식과 찾아오는 손님을 위해 만든 음식은 분명 다르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가는지 보다 어떤 마음으로 만들어 내는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집밥을 만드는 어머니의 정성을 어느 식당에서 따라갈 수 있을까? 집밥의 맛을 내겠다며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는 식당도 분명 있다. 그들의 노력을 깎아내릴 마음은 없다. 다만 자식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 힘든 일상에서도 갓 지어낸 밥과 한 시간 이상 불 앞 서서 반찬 하나를 만들어내는 정성은 우리의 어머니이기에 가능했던 게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비록 예전에 젓가락을 멈추지 못할 만큼 두부조림을 먹진 못하지만, 그때 그 밥상에서 느꼈던 어머니의 정성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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