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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n 25. 2021

반찬에 대한 단상

마흔의 밥심

어묵볶음, 진미채, 감자볶음, 달걀말이, 분홍 소시지 전, 두부조림, 멸치볶음, 무채 무침 등 어머니가 자주 해 주셨던 내가 좋아하는 반찬들이다. 하나같이 손이 많이 가는 것들이다. 아이가 학교를 다니면서 주중은 아내가, 주말은 내가 식사를 담당한다. 주말 이틀이지만 식사 때마다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의 연속이다. 볶음밥, 스파게티, 비빔밥 등 반찬이 적어도 되는 단품 요리를 주로 하게 된다. 가끔은 주중에 아이들 먹을 반찬을 미리 준비하기도 한다. 반찬 두어 가지를 만들려면 주방은 폭탄을 맞은 것처럼 아수라장이 된다. 씻고 손질하고 볶고를 반복하며 반찬통 하나 분량씩 만들어 놓는다. 요즘은 배달음식을 자주 시켜 먹다 보니 집 밥을 먹는 횟수도 자연히 줄었고, 그만큼 반찬의 양과 가짓수도 줄 수밖에 없다. 내가 학교 다닐 땐 급식이 없었다. 매일 아침밥을 먹고 점심으로 먹을 도시락을 싸서 다녔다. 또 저녁이면 가족이 모여 저녁식사까지 마쳐야 하루가 끝났다. 정말 특별한 날에만 외식을 했고, 배달은 중국음식점의 특화된 서비스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니 어머니에게 매일 새 끼 반찬을 만들어내는 일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고된 과정이 아닐 수 없었을 거다.  

   

세 아들이 학교를 다니는 동안 어머니도 장사나, 직장을 다니며 한 번도 쉬지 않고 일을 하셨다. 일을 시작하기 전 아침밥과 점심 도시락을 준비했고, 일을 마치고 가족이 먹을 저녁밥을 준비했다. 밖에서 일은 끝났지만 집에서 일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던 거다. 일로 힘들었을 몸을 더 피곤하게 만드는 건 어떤 반찬을 준비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아니었을까. 세 아들의 도시락 반찬을 매일 다르게 보이기 위해 적절한 로테이션이 필요했을 거다. 반찬의 종류는 거의 정해져 있고 적절한 주기로 반복될 뿐이다. 반복 주기에 따라 같은 반찬에서 새로운 맛을 느끼기도 했다. 이런 치밀한 전략은 우리네 어머니들 정도의 내공을 갖지 않고서는 감히 흉내 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날의 반찬에는 어머니의 감정이 들어가 있기도 하다. 일 때문에 몸이 피곤하면 당연히 아침밥 준비도 귀찮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안 하는 건 어머니 사전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준비를 하지만 손이 많이 가는 반찬 대신 김치나 장아찌 같은 오래 두고 먹는 반찬을 위주로 나온다. 거기에 달걀 프라이로 부족한 영양분을 채워준다. 낮 동안 장사가 잘 되거나 기분 좋은 일이 있었다면 저녁 반찬도 덩달아 흥이 난다. 아무리 손이 많이 가는 반찬이라도 순식간에 만들어 내는 신비로운 힘을 발휘한다. 반찬에도 만드는 사람의 감정이 담길 수 있다는 걸 내가 해보면서 깨닫게 되었다. 물론 음식을 만들어 가족에게 먹이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도 드물다. 또 음식 맛을 좌우하는 것 중 재료의 신선도나 양념의 양도 중요하지만 만드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도 있다. 어머니의 기분에 따라 밥상에 올라오는 반찬의 종류는 달라졌지만 각각의 맛은 웬만해선 변하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당신의 감정을 반찬에 담지 않으려는 보이지 않는 노력이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매 끼 밥상에 올라오는 반찬은 조화를 이루었다. 우선 김치는 나트륨을 채워줬다. 밥은 우리 몸에 가장 필요한 탄수화물을 공급해 준다. 여기 두부나 달걀 요리는 적정량의 지방과 단백질을 공급해준다. 계절마다 바뀌는 다양한 나물 반찬은 장 건강에 필요한 섬유소를 공급해 준다. 바쁜 일상에 기력이 떨어질 때쯤이면 어김없이 고기가 등판한다. 삼겹살, 소고기, 닭고기, 각종 생선은 떨어진 원기를 회복해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레시피대로 정량을 계량해 만들지 않더라도 그 맛은 한 결 같이 유지되어 왔다. 어머니의 손맛이다. 매 끼 밥상 위에 우리 몸에 필요한 모든 영양소를 골고루 담아내려 했듯 각각의 요리에도 똑같은 맛을 내기 위한 어머니만의 손저울이 존재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 않도록 균형을 잡는 것 또한 어머니의 내공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이 남았지만,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면 삶에는 균형이 필요한 것 같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균형을 잃으면 자칫 모든 걸 잃을 수도 있게 된다. 건강이 그렇고, 투자가 그렇고, 인간관계가 그런 것 같다. 몸이 건강해지려면 고른 영양과 운동이 필요하고, 현명한 투자를 위해서는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도가 필요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남으로써 삶의 깊이와 활력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식판에 내가 먹을 만큼의 밥과 반찬을 먹는 급식은 한 끼에 필요한 영양분으로만 채워진다. 도시락 크기에 따라 밥과 반찬의 양이 정해진다. 집에서 먹는 만큼 꾹꾹 눌러 담아도 충분치 않을 때가 더 많다. 그래서 도시락 세대인 우리는 점심시간이면 삼삼오오 모여 앉아 각자의 반찬을 나누며 부족한 영양분을 서로에게 채워줄 수 있었던 것 같다. 집에서 먹는 밥상에도, 학교에서 먹는 도시락에도 ‘골고루’의 균형이 담겨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물론 우리의 어머니들은 매일 한 끼 한 끼가 전쟁처럼 치열했을 거다. 그만두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을 거다. 그래도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그릇에 담긴 음식을 깨끗이 비워지는 걸 보면서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 여겼을 거고, 그렇게 노력과 보상의 균형을 맞추며 하루하루 성실히 걸어오셨다고 생각한다. 밥만 있으면 밥상이라고 할 수 없다. 반찬만 있어도 밥상이라고 할 수 없다. 밥과 반찬이 골고루 올라와야 한 끼를 채워주는 균형 잡힌 밥상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인생을 잘 살기 위해 균형이 필요하다는 걸 이미 밥상에서부터 우리 부모님들은 가르쳐 주셨던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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