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대한 글쓰기
"보민아! 점심은 나가서 먹을까?" 휴가와 방학이 겹쳐 단 둘이 집에 있었다.
"어디 가서 먹을 건데?" 집을 좋아하는 딸은 학원 아니면 친구를 만날 때 말고는 집 밖을 안 나간다.
"생각 중이야. 너는 먹고 싶은 거 없니?"
"난 딱히 먹고 싶은 건 없는데."
"일단 나가보자." 더운 걸 감안해 자가용으로 갈 수 있는 곳을 찾고 있었다.
"아빠, 안 나가면 안 돼? 그냥 시켜 먹으면 안 될까?" 집콕 모드가 작동하는 것 같다.
"시켜먹자고? 먹고 싶은 게 있어?" 뭐가 먹고 싶은지 드러나 보고 싶었다.
"어! 로제 떡볶이."
"떡볶이? 그럼 로제 떡볶이 잘하는 집 찾아서 먹고 오는 건 어때?" 먹고 싶은 게 정해졌으니 주변에 갈만한 곳을 찾아보자고 했다. 요지부동이다.
"로제 떡볶이는 '배 떡'이 제일 맛있는데, 그냥 시켜먹으면 안 될까 아빠!" '배 떡'은 배달만 하는 가게다. 나가는 건 포기다.
"그렇게 하자. 튀김도 시킬까?" 이왕 먹는 거 제대로 먹자.
"어! 튀김도 같이."
14줄 쓰는 데 10분도 안 걸렸습니다. A4 한 페이지 중 1/3을 차지하는 분량입니다. 대화의 내용도 일상적인 내용입니다. 있는 그대로 옮겨 적기만 하면 됩니다. 분량 채우는 데 대화체만큼 효과적인 게 없습니다. 그러나 위 대화 내용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 걸까요? 점심으로 뭘 먹었는지?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딸을 데리고 나가려는 노력? 메뉴를 고르게 된 과정? 떡볶이에는 튀김?
모든 글에는 주제가 명확해야 합니다. 위 글도 주제가 정해져 있다면 그에 따른 한 장면이 될 겁니다. 하지만 대화체를 쓰면서 많이 하는 실수가 단순히 분량만 채우겠다는 욕심이 앞선다는 겁니다. 제가 그런 실수를 하는 바람에 한 달 간 이어진 퇴고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소설에서 대화체는 빼놓을 수 없습니다. 소설 쓰기에 관한 책에도 대화체를 주제로 책 한 권이 있을 정도로 중요합니다. 대화는 상황을 묘사하기도 하고, 심리를 드러내기도 하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대화체를 활용하는 방법도, 쓰는 방법도 다양합니다. 하지만 소설 이외의 장르에서는 대화체를 자칫 과용하면 내용이 산으로 갈 수 있습니다. 또 전혀 사용하지 않으면 글의 생동감이 반감되기도 합니다. 적절한 곳에 알맞은 분량을 사용할 수 있으면 대화체는 글 맛을 살리는 유용한 도구가 됩니다.
위 글처럼 상황만 늘어놓는 대화체는 독자에게 읽는 재미를 반감시킬 수 있습니다. 길게 이어지는 대화이지만 주제와 상관없다면 독자의 시간을 빼앗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이런 경우 대화를 늘어놓기보다 짧게 상황을 설명하는 게 오히려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보민이 방학과 휴가가 겹쳤다. 오랜만에 단 둘이 점심을 먹어야 했다. 나가는 걸 싫어하는 아이는 떡볶이를 시켜 먹자고 한다. 같은 떡볶이라도 나가서 먹으면 좋겠다고 설득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로제 떡볶이는 '배 떡'이라며 기어이 배달을 고집했다. 오랜만에 함께 하는 점심이니 서로 기분 좋게 먹는 게 더 중요했다. 이번에는 내가 양보했다. 대신 튀김은 양보할 수 없었다.
저는 4줄로 줄여 봤습니다. 필요하다면 좀 더 늘릴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특히 에세이를 쓸 때 대화체는 주제를 드러내는 도구로 활용하거나 이해를 돕는 선에서 간략하게 활용해야 합니다. 39개의 꼭지를 쓰면서 거의 모든 글에 대화체를 사용했습니다. 짧게는 몇 줄, 길면 1/2을 대화로 채웠습니다. 두 번 퇴고를 하면서 이중 2/3를 날렸지만 그래도 중언부언하는 대화체가 남아 있습니다. 이제 한 번 더 퇴고에 들어갑니다. 남은 분량 중 날릴 것과 주제에 맞게 수정할 부분에 손을 대려고 합니다. 어디부터 손을 댈지 막막하지만 그래도 남는 건 있습니다. 이 글로 그간의 과정을 정리해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소득입니다. 물론 싫은 소리를 들어야 하는 건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닌 건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