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묘사가 글맛을 살린다
글쓰기에 대한 글쓰기
휴가 삼일째. 여전히 새벽 5시 알람이 울린다. 알람을 끈다. 몸은 여전히 이불 속이다. 새벽 공기가 서늘하다. 이불을 안 덮으면 추울 정도다. 선풍기를 틀어도 자다가 깨기를 반복하던 열대야가 며칠 만에 사라졌다. 사라진 열대야 대신 찬 공기가 이불을 끌어당기게 만든다. 잠이 덜 깬 채로 스마트 폰 시계를 확인한다. 5분이 지났다. 정신은 서서히 맑아진다. 그래도 몸은 여전히 이불속이다. 선잠이 들었다. 시계를 확인하니 25분이 지났다. 5시 반, 몸을 일으킨다. 남은 잠을 깨기 위해 화장실로 향한다. 양치질로 잠을 쫓는다. 유산균 한 봉지와 물 두 컵을 마신다. 체중계에 올라간다. 주말 이틀 동안 게으름을 부린 탓에 몸무게 1kg 늘었다. 두 가지 생각이 든다. '휴가니까 봐주자' 아니 '휴가라도 관리는 해야 한다' 아직 결론 내리지 못했다. 아니지 '휴가'보다 우선해야 하는 게 무엇인지 따져보면 답은 나온다. 습관을 만들었으면 습관이 먼저다. 휴가라고 예외는 없다. 주말 동안 게으름을 부렸으니 그걸로 됐다. 다시 책상에 앉는다. 노트를 꺼낸다. 10분 쓰기를 시작한다. 한 페이지 분량을 10분 동안 막힘없이 쓰는 연습이다. 6월을 시작하면서 다시 시작했다. 주 5일 동안 쓴다. 스스로 만든 규칙이다. 한 페이지를 채우고 나니 6시다. 노트를 가방에 넣는다. 옆으로 밀어 놨던 노트북으로 내 앞으로 가져온다. 받침대를 세우고 화면을 열어 전원을 켠다. 윈도가 켜지는 동안 인스타그램에 '스토리'를 올린다. 요즘 인스타그램 '피드'는 물론 '스토리'도 열심히 올리고 있다. 한 번 올린 스토리는 24시간을 주기로 삭제된다. 그 사이 일어난 일을 기록하는 거다. 스토리가 휘발성이 있다 보니 보는 사람이 피드보다는 적다. 대신 한 번 본 사람은 꾸준히 보는 것 같다. 마치 고정 팬이 생긴 것 같다고 할까. 비롯 10여 명이 전부지만. 바탕화면에 크롬 아이콘을 누른다. 브런치 아이콘을 실행시킨다. 로그인을 한다. 글쓰기 메뉴를 선택한다. 하얀 화면과 마주한다. 이어폰을 귀어 꽂는다. 멜론을 실행시켜 플레이리스트로 들어간다. 『모차르트 모멘텀 - 1785』 첫 곡을 플레이한다. 쓸 내용을 머리로 정리한다. 첫 문장을 쓴다. '휴가 삼일째'를 시작으로 여기까지 써 내려왔다.
주말 동안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었다. 휴가 시작하는 날 교보문고에서 1시간 동안 돌아본 뒤 선택했다. 10년 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킨 소설이라는 띠지가 붙어있었다. 소문은 들어 알고 있었다. 그만큼 독자의 기대를 충족한 훌륭한 소설이다. 한 번 펼치면 덮기 싫을 정도로 흡입력이 컸다. 왜 그런지 생각해 봤다. 스토리가 탄탄한 건 당연했다. 소재가 독특한 것도 큰 몫이다. 인물이 따로 놀지 않는 것도 중요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게 구체적인 묘사 때문이라 생각한다. 인물의 행동, 주변 환경, 심리상태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지나칠 만큼 친절하게 묘사한다. 그런 표현이 이어지는 내내 눈을 뗄 수가 없는 것 같다. 소설뿐 아니라 글을 쓸 때 구체적으로 쓰는 건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장르에 따라 불필요한 경우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나 같이 글 쓰는 연습이 필요한 초보에게 중요하다. 쉬운 예로 탑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야 튼튼하게 쌓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탑은 없다. 밑동이 튼튼하면 쉽게 넘어지지 않는 것처럼 지나칠 정도 자세하게 묘사하는 연습이 된다면 쓰고 싶은 글을 좀 더 자유롭게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작가가 표현하고 싶은 상황 속으로 독자를 데려다 놓는 것. 그것이 독자를 내가 쓰는 글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