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말을 글로 쓰다(2)
소통의 기술로써 글쓰기
※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쓰다(1)의 마지막 부분 중 일부를 가져왔습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다양한 사람과 얕고 깊은 관계로 자연스레 정리되었습니다. 그들에게 맹목적인 공감을 바랐거나 무조건적인 친밀감을 바랐다면 관계를 지속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저는 단지 제가 하고 싶은 말을 글로 표현했을 뿐입니다. 얼굴 마주하고 말로 대화하는 대신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글로 대화를 했던 겁니다. 글을 매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만들어진 관계 덕분에 위로와 격려 응원을 받기도 합니다. 데이비드 버커스는 인생과 커리어를 바꿀 수 있는 힘이 '약한 연결'에서 비롯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약한 연결은 저처럼 온라인 속 연결을 일수 있고 아는 사람을 통해 소개받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재취업이나 비즈니스에 실질적인 도움을 약한 연결을 통해 얻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합니다. 이미 알고 있는 관계에서는 새로운 정보를 얻는 게 제한적입니다. 하지만 두 세 다리 건넌 약한 연결은 그들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새로운 정보에 연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기회가 더 많다는 겁니다. 이런 장점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도구가 온라인 속 연결이 될 수 있습니다. 도구보다는 방법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이는 IT기술의 급격한 발전과 스마트 폰의 보급이 가져다준 순 기능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억을 거슬러 보면 90년대 초만 해도 사람을 연결하는 도구는 유선 전화가 전부였습니다. 할 말이 있으면 집전화나 공중전화를 이용했습니다. 삐삐가 세상에 나오면서 집전화보다는 기동성을 갖게 됩니다. 삐삐가 손이었다면 공중전화가 발이 되어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켰습니다. 그러나 PCS폰이 나오면서 본격적인 모바일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더 이상 공중전화에 길게 줄 설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2009년 스마트 폰이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손 안의 연결이 가능해졌습니다. 스마트폰은 기존의 음성 통화를 넘어 다양한 형태의 대화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음성 통화의 형태도 나날이 발전했습니다. 일대일 음성 통화에서 영상이 더해지고, 이제는 일대 다의 영상통화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이동이 제한되자 기다렸다는 듯 영상 통화 기술이 삶의 한가운데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기업은 물론 학교, 학원, 개인에 이르기까지 실생활에 활용하게 되었습니다. 텍스트를 이용한 소통의 방법도 다양해졌습니다. 음성이나 영상통화는 대상을 지정해야 한다면, 텍스트는 불특정 다수와 소통이 가능합니다. 다양한 형태의 SNS를 활용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텍스트의 형태로 말을 겁니다. 상대방을 특정하지 않았다는 건 말하는(글을 올리는 사람) 사람이 듣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쓴 글에 공감하는 이들은 반응을 보입니다. 그들의 반응에 나도 반응합니다. 그렇게 낯선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낯선 관계의 장점은 얼굴을 보고 대화를 주고받으며 만들어지는 관계보다 끊어내기 쉽다는 겁니다. 쉽게 연결되면 쉽게 끊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두 개의 현실 속에 삽니다. 우리 몸이 살아 숨 쉬는 실제 현실과 온라인이 만든 가상 세계입니다. 어쩌면 가상 세계의 수는 정해져 있지 않을 겁니다. 기술의 발전은 실제와 가상현실의 간극을 좁히고 있습니다. 가상현실이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현실에서 소통보다 온라인 속 소통이 더 자연스러워지고 있습니다. 얼굴을 마주하고 위로와 공감을 받기보다 얼굴 본 적 없는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얻는 게 더 자연스러워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순기능이 있다면 역기능도 있기 마련입니다. 나의 의도가 왜곡되기도 하고 뜻하지 않게 피해를 입기도 합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정말 보이지 않는 건 아닐 겁니다. 온라인 세상에서도 소통의 기술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음성이나 영상 통화는 나를 드러내야 하지만 텍스트는 그렇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악의를 드러내도 문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텍스트에는 양면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표현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습니다. 같은 말을 얼굴 보고하면 표정과 동작을 짐작해 오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텍스트는 보이는 게 전부입니다. 표정이나 감정을 짐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짐작은 오해를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니 텍스트를 사용할 때 더 조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 일상과 떼어놓을 수 없는 온라인 세상에서 텍스트가 소통의 도구가 된다면 그에 맞는 사용법도 알아야 할 겁니다. 누군가 그럴 겁니다. 태어나 지금까지 말하고 살았는데 글 쓰는 게 뭐 어렵냐고.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일상에서 직장에서 글 쓸이 별로 없었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게 전부였습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글을 쓴 적도 없습니다. 그러니 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지도 못했습니다. SNS를 이용한 소통에도 관심이 없으니 굳이 글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 없었습니다. 시대가 변할수록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방법도 달라졌습니다. 가만히 있는 나에게 다가와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내게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먼저 다가가야 했습니다. 주변을 뒤져가며 사람을 찾아다니는 때도 지났습니다. 이미 온라인 세상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기회의 장이었습니다. 그러니 관계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면 온라인 세상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습니다.
사람과의 연결에서 내가 쓴 한 문장은 나를 드러내는 명함 같았습니다. 내가 어떤 의도와 생각을 담고 쓰느냐에 따라 나는 그런 사람으로 비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악의적 단어를 쓰면 악의를 품은 사람이고, 선의의 단어를 사용하면 선량한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물론 그 안에는 또 다른 의도를 갖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텍스트로만 그 사람을 판단하는 건 성급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온라인 세상은 점점 더 우리 일상과 뗴어놓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나의 말 한마디가 이전과는 다른 파급력을 갖게 될 겁니다. 유명한 인플루언서의 말에만 힘이 생기는 건 아닙니다. 앞으로는 온라인 세상에서 만들어지는 관계가 당연해지는 만큼 보다 나은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말 한마디의 힘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영향을 미칠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글쓰기 역량은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겁니다. 아니 이미 중요해졌습니다. 어쩌면 오래전부터 글쓰기는 필수 역량이었습니다. 안타깝지만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은 글쓰기의 중요성을 외면해 온 것 같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닷컴 열풍이 불며 IT기술이 폭발적으로 성장했을 때 이를 주도한 건 미국이었습니다. 우리 삶 곳곳에 이전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기술과 문화를 선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탄생한 기업이 'GAFA(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라 부르는 세계 4대 IT기업입니다. 이들의 탄생 배경에는 인간을 이해하는 인문학과 글쓰기 교육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일찍부터 이 두 가지 역량을 가르쳤습니다. 그 결과물로 세계를 주도하는 국가가 될 수 있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도 늦은 감은 있지만 몇 해전부터 인문학과 글쓰기가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TV에서는 인문학 명사의 강의가 이어지고 서점에는 글쓰기에 관한 책이 쏟아졌습니다. SNS와 미디어 콘텐츠가 주류인 요즘 글쓰기와 연관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사진만 잘 찍어 올리거나, 재미있고 흥미 있는 영상만 만들어내면 그만 아니냐고 말할 겁니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글쓰기는 떼어놓을 수 없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책을 읽고 훌륭한 생각을 해도 머릿속에 머물면 망상일 뿐입니다. 생각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도구가 글쓰기입니다. 끄집어내도 올바르게 표현하지 못하면 제대로 전달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쓰기 역량을 키워야 합니다.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 전달하기 위한 도구로써의 글쓰기 역량입니다. 표현하고 전달하는 건 소통과도 연결됩니다. 긴 글 짧은 글도 내 생각을 올바로 담을 수 있으면 소통하고 연결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저처럼 대화에 서툴고 말을 잘하지 못해도 진정성 있는 글을 쓸 수 있다면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세상이 변하면서 다양한 방법도 생겨나고 거기에 발맞출 수 있다면 기회가 생깁니다.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을 만나 대화로 연결되는 세대는 지나가고 있습니다. 관계의 정도에 따라 대화 능력도 반드시 필요하긴 합니다. 하지만 약한 연결이 당연하게 되는 앞으로는 글로 소통하는 기술이 더욱 중요해 보입니다. 이런 이유로 텍스트 중심의 온라인 세상에서는 글쓰기 역량이 가장 중요한 소통의 기술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