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가 서툰 나를 위한 조언
초등학교 6학년, 큰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하고 싶은 말 다하면 잔소리꾼이 된다는 걸 압니다. 아니, 말하기도 전에 안 들으려고 합니다. 가끔 식사 중 훈계 비슷한 말이 나오면 표정부터 바뀝니다. 정색을 하는 건 아니지만 안 했으면 하는 눈치입니다. 저학년일 때는 말해도 이해 못할 것 같아 주저했고, 고학년이 되니 듣기 싫어하는 것 같아 망설이게 됩니다. 다만 딸이 궁금해서 묻는 것에는 성심껏 답해주고, 딸도 내 대답에 귀 기울여 줍니다. 내가 먼저 필요로 하지 않는 말을 늘어놓기보다 필요로 하는 내용만 줄여서 말하게 됩니다. 다행인 건 아직 중학생이 되기 전이라 반항보다 잠자코 들어주고 수긍하려고 합니다. 그럴수록 저 또한 말에 더 신중을 기하게 됩니다.
말이 많은 사람을 다른 표현으로 '투머치 토커'라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방송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박찬호 선수를 꼽을 수 있습니다. 박찬호 선수는 대학 2학년 때 메이저리거가 되었습니다. 중고등학교를 거쳐 한양대 입학 후 아마추어 FA 계약으로 미국 무대로 진출했습니다. 그때가 1994년이었습니다. 2010년 메이저 리그 은퇴 후 일본을 거쳐 국내로 복귀하기까지 그의 활약을 TV 화면으로만 접할 수 있었습니다. 2012년 한화 이글스를 마지막으로 그는 야구선수를 공식 은퇴합니다. 이후 해설위원 활동을 시작으로 다양한 TV 프로그램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TV에 자주 보이면서 사람들은 박찬호 선수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됩니다. 그에게 질문을 던지면 돌아오지 않는 공처럼 답변 대신 그가 하고 싶은 말만 쉴 새 없이 늘어놓는다는 겁니다. 예능 프로그램 사전 인터뷰에서 작가의 귀에 피가 날 정도로 그의 말을 듣고 있어야 했다는 이야기는 과장되긴 했지만 얼마나 말이 많은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사례로 준비하면서 궁금한 게 생겼습니다.
'그는 왜 말을 많이 하는 걸까?'
'원래부터 말이 많았는데 우리가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걸까?'
언론에서도 그가 말을 많이 하는 이유가 궁금했나 봅니다. 모 신문 인터뷰를 읽으며 박찬호 선수가 왜 '투머치 토커'가 되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박찬호 선수도 여느 야구선수와 비슷한 길을 걸었습니다. 공주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운동선수로 성장했습니다. 가끔 뉴스를 통해 중고등학교 운동부 내에서 코치나 선배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을 접하곤 합니다. 또 군대 못지않는 강압적인 문화도 심각한 수준이라며 입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박찬호 선수 역시 그와 비슷한 환경에서 운동을 했다고 합니다. 운동선수라면 그러한 환경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했을 겁니다. 그는 대학교 2학년 때 메이저리그로 진출했습니다. 그때 미국의 유소년 야구 캠프에 참여할 기회를 갖게 됩니다. 캠프에서 그가 본 운동 환경은 충격이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자랐던 환경과는 180도 달랐습니다. 그는 학생 때를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선배가 알려주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따라야 했다.'
'코치에게 물어봐도 궁금한 게 해소될 만큼 알려주지 않았다.'
'질문하면 혼부터 났다. 그러니 자연히 질문을 안 하게 된다.'
그가 경험하고 알고 있던 문화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메이저리그를 거치며 주변 선수와 코치로부터 질문과 피드백이 당연하고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문화 속에서 15년 간 이어진 선수생활은 자연히 말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박찬호 선수는 덧붙여 중요한 말을 남겼습니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자기 생각을 솔직하고 분명하게 말하세요. 주변 환경에 주눅 들지 말고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실수에도 당당할 수 있는 멘털을 가져야 합니다."
(출처:중앙선데이 [이태일의 인사이드 피치] 수다쟁이 총대 맨 '코리안 특급' 중)
멘털은 운동선수에게만 필요할까요? 저는 누구나 강한 멘털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대화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찬호 선수가 멘털에 대해 말한 내용을 다시 옮깁니다.
"우리는 쉽게 멘털, 멘털 하는 데 제가 이해하는 그 멘털은 지식이 기초가 되지 않으면 그저 근성에 지나지 않습니다. 뭐든 제대로 알고 그 정보를 지식으로 만들어야 그다음 레벨로 올라갈 수 있고, 그 맨 꼭대기가 메이저리그라고 봅니다. 실제로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엄청난 노력을 하고 그 대부분은 맹목적인 훈련이 아니라 그체적인 공부를 합니다."
(출처 : 중앙선데이 [이태일의 인사이드 피치] 수다쟁이 총대 맨 '코리안 특급' 중)
이 말은 운동선수의 경기력은 운동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을 공부하는 데서 나옵니다. 이를 우리 일상에 적용해 보면 관심 있는 분야를 구체적으로 익히고 노력하는 만큼 잘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대화를 누구보다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욕심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공부하고 익히며 멘털을 키우면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는 걸 박찬호 선수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대화는 상호작용이라고 했습니다. 박찬호 선수는 열정이 넘치고 후배를 사랑하는 만큼 많은 걸 알려주고 싶어 '투머치 토커'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메이저리그를 경험하며 운동선수로서 훌륭한 커리어를 쌓은 이면에는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고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게 큰 역할을 했을 겁니다. 좋은 게 있으면 아낌없이 나누고 픈 마음. 그 마음이 앞서다 보니 뜻하지 않게 투머치 토커라는 별명도 얻게 된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자식에 대한 애정과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넘쳐납니다. 큰딸이 바란다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걸 몇 날 며 칠이 걸려도 전해주고 싶습니다. 다만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인 상호작용을 통해서입니다. 큰딸도 궁금한 걸 자연스레 물어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느근한 마음으로 답해줄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싶습니다. 그렇게 차근차근 배우다 보면 큰딸의 멘털도 단단해지고 더불어 아빠와 딸의 관계도 나아질 거라 믿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