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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Oct 06. 2021

계약은 된다.
출판사만 정해지지 않았을 뿐.

세 번째 초고를 투고하다

매일 밥을 먹으면서 밥상에 의미를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중고등학교를 지나는 동안 거의 매일 도시락을 싸 다녔지만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자식을 위해 하루 세 끼를 챙기는 건 부모의 당연한 의무로만 여겼습니다. 한 끼 식사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얼마나 정성이 들어가는지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한 끼 식사를 준비하는 과정이 소통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밥을 나누어 먹은 기억은 추억을 공유하는 것이었습니다.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조차 밥을 먹고 기운을 차렸습니다. 늦은 밤 허기를 달래 준 배달 음식은 삶에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중 하나일 겁니다. 혼자 먹던 밥상에 숟가락 숫자가 더해지며 가족이 되어 갑니다. 내가 만든 음식을 자식들이 맛있게 먹을 때면 보는 것만으로 배가 불렀습니다. 든든하게 한 끼를 먹고 난 뒤 빈 그릇을 설거지하며 나쁜 감정도 함께 씻어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낼 수 있었던 건 밥심 때문이었습니다. 


세 번째 초고에 담긴 내용입니다. 6월 초부터 집필에 들어갔습니다. 출근 전 1시간에서 1시간 반 거의 매일 썼습니다. 브런치에 썼던 글을 뼈대로 30개의 글 덩어리를 덧붙였습니다. 뼈대가 있었던 덕분에 50일 만에 초고를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더위가 절정으로 내달리는 7말 8초, 퇴고에 들어갔습니다. 코로나 덕분이라고 해야 하나요? 휴가에도 여행 갈 엄두가 안 났습니다. 집을 사수하며 퇴고에 열을 올렸습니다. 첫 책 보다 더 깐깐하게 챙겨주신 이은대 작가님 덕분에 휴가 이후 8월 내내 원고를 엎어뜨리고 메치기를 이어가야 했습니다. '들어가는 글', '나오는 글'은 열흘 이상 걸렸습니다. 쓰고, 고치고, 생각이 멈추고 다시 이어지길 열 흘. 그 열 흘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든 나오는 것 같습니다. 결과의 만족도는 차치하더라도 마무리했다는 건 큰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9월을 넘겨 최종 퇴고라는 결과물을 손에 올려놓게 되었습니다. 추석과 월말로 이어지는 9월을 보내고 드디어 어제, 투고에 들어갔습니다.


투고를 준비하며 가장 먼저 한 건 마음 가짐이었습니다. 출판사에 까일 준비입니다. 출판사가 제 원고를 선택하지 않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겁니다. 출판사 색깔과 안 맞을 수 있고, 원고 내용이 부족할 수도 있고, 작가에 대한 확신이 없을 수도 있고, 이도 저도 아니면 쏟아지는 메일 중에 휩쓸려 쓰레기통으로 직행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유가 어떠하든 까이는 건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하나하나에 일일이 반응하면 안 그래도 약한 멘털이 남아나지 않을 겁니다. 이은대 작가님도 출판사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나마 두 번째이다 보니 말랑했던 살 위에 굳은살이 한 곁 붙은 것 같습니다. 아마 이번 투고 과정이 지나면 또 한 곁 붙을 것 같습니다. 색이 바래 떨어지는 나뭇잎을 덤덤하게 바라보듯, 출판사가 떼어내는 저의 원고도 그렇게 바라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원고는 두 달만에 계약했습니다. 이번 원고는 조금은 빨라지지 않을까 조심스레 짐작해봅니다. 왜냐하면 첫 원고보다 아주 조금은 나아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 스스로에게 당당하기도 합니다. 그동안 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읽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초고와 퇴고를 이어오는 동안 매달 20권 이상 읽었고, 읽고 얻은 내용을 글로 남겼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책을 읽었기에 비교적 짧은 기간 초고를 완성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책을 통해 매일 새로운 자극을 주었고, 그 자극이 초고를 쓰는 원동력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초고, 퇴고의 언덕을 넘어 투고의 산을 넘고 있습니다. '계약'이라는 중간 목적지에는 닿게 되어있습니다. 중간 목적지가 어느 출판사인지 정해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출판사가 정해지고 나면 또 다른 목적지로 발을 떼야합니다. 어쩌면 한 권의 책을 낸다는 건 끝이 정해지지 않은 산행을 이어가는 거라 생각합니다. 내가 쓴 책이 세상에 나오면 또 다른 누군가의 삶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겁니다. 그 숫자가 적든 많든 그 자체로 의미 있을 겁니다. 그의 삶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다시 전해질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사람들 속에서 멈추지 않는 여정을 이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하나를 바라고 오늘도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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