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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Sep 01. 2021

어머니 카레맛이 심심해요

밥상머리에서 배운 것들

어머니와 몇 달째 데면데면하게 지내고 있다. 전화 통화는 안 한지 한 달이 넘었다. 어머니도 연락을 안 하는 나 대신 아내를 먼저 찾는다. 아내도 조금씩 걱정 반 귀찮음 반의 반응을 보인다. 나와 어머니 사이가 회복불능으로 갈지 걱정하면서, 나를 찾아야 할 일도 직접 전화하지 않고 자신을 사다리처럼 이용하는  게 싫은 눈치다. 아직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지만 아마 곧 터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먼저 연락 좀 해. 언제까지 피하려고?"

"조만간 할게."


일요일, 아이들 아침으로 떡만둣국을 끊였다. 둘 만 먹는 양이었지만 그마저도 남겼다. 남은 음식과 빈 그릇을 씻고 고무장갑을 벗으니 아내에게 전화가 와 있었다. 어머니였다.

"아침 먹었니? 감자가 맛있어서 카레를 좀 끊였는데 어디 안 가면 가져다줄까 하는데?"

"무거우면 애 아빠 보낼게요. 버스 타고 오려면 번거로우니 저희가 가지러 갈게요."

옆에서 통화 내용을 듣고 있었다. 안 간다고 말하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싫은 티부터 냈을 거다. 통화를 마친 아내가 언제 갈 건지 묻는다.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읽던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내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30분 동안 책만 읽었다.


"혼자 가기 싫으면 채윤이 데려가." 게임할 시간을 벌기 위해 억지로 공부 중이던 채윤이에게 날벼락은 같은 말이었다.

"엄마! 나 꼭 가야 돼? 안 가면 안돼?"

뜬금없는 소환에 가기 싫은 눈치였다. 안 가도 된다고 안심시키고 옷을 갈아입었다. 언젠간 한 번은 내 의사를 전해야 한다고 마음먹고 또 먹고 있었다. 선뜻 갈 용기가 없었고 몇 주째 눈치만 보고 있었다. 차에 시동을 켜고 주차장을 빠져나오며 도로에 올라서도 여전히 몸과 마음은 따로인 듯했다. 무슨 말부터 할지 순서를 정했다.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짐작도 해봤다. 괜한 부스럼을 만드는 게 아닌지 걱정도 됐다. 대화의 방향이 생각지 못한 곳으로 흐를 것 예상해야 했다. 10여분을 달려 마지막 좌회전 신호를 받는 교차로에 섰다. 전화가 온다. 언제 도착하냐고 묻는다. 

"다 왔어요. 곧 도착해요."


어머니는 작년에 이사 오고 난 뒤 공동현관 비밀번호와 현관 비밀번호를 쪽지에 적어줬다. 혹시라도 문을 열어주지 못할 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 갖고 있으라며 건넸다. 받아둔 쪽지는 차 안 수납공간 안쪽에 던져두었다. 불쑥 찾아가 벨을 누르고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 언제나 부르면 가거나, 가야 할 일이 있을 때만 미리 알리고 찾아갔다. 그러니 언제나 예고된 방문이었고 벨을 눌러 도착을 알리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주차를 하고 공동현관에서 벨을 눌렀다. 공동현관을 지난 현관 벨을 눌렀다. 문을 열어주며 눈을 마주칠 사이도 없이 주방으로 가신다. 미리 준비해 놓은 음식을 하나 씩 담는다. 카레를 만들어 놓았다는 건 담아갈 그릇을 들고 오라는 의미였다. 빈 손을 보고는 보자기를 꺼내 카레가 담긴 냄비를 통째로 싸신다. 보자기에 싸인 냄비에서 내용물이 흐를까 다신 한 번 비닐 장바구니에 옮겨 담으신다. 선물로 들어왔다며 스팸도 몇 개 담아주신다. 한 달 전, 아이들에게 만들어 준 샌드위치를 잘 먹는 걸 보고 또 만들어 놓으셨다. 고기를 갉고, 양파와 당근을 다지고, 으깬 두부에 달걀물로 반죽해 구운 패티 위에 오이, 양상추, 치즈를 올리고 케첩을 듬뿍 뿌렸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모양은 아니지만 그 맛은 짐작이 갔다. 내가 어릴 때도 휴일이면 한 번씩 만들어주셨던 것과 같은 모양이었고, 맛도 짐작이 갔다. 받아 들고 나오기까지 10분도 안 걸렸다. 어머니는 점심시간이었지만 밥 먹었냐고 묻지도 않고 준비한 음식만 챙겨주셨다. 아마 물어도 안 먹을 거라는 걸 알고 있듯이. 오는 내내 머릿속에 맴돌 던 말은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챙겨주는 대로 받아 들고 차에 싣고 시동을 켰다. 꼬깃한 오만 원짜리 두 장을 건네며 점심은 잘 챙겨 먹으라는 말도 잊지 않으신다. 집에 올 때마다 며느리 몰래 용돈을 챙겨주려고 했지만 번번이 마다했었다. 

"애 엄마한테는 말하지 말고 너 먹고 싶은 거 사 먹어. 다 쓰면 또 줄테니까 아끼지 말고 써."

    

차는 주차장에서 멀어지고 있었지만 어머니는 그 자리에 있었다. 교차로에서 빨간불로 멈췄던 차가 다시 움직일 때까지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리자 어머니도 시야에서 사라졌다. 

'내가 생각이 너무 많나?'

자식에게 무엇이든 먹이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일 거다. 학생 때도, 독립을 해서도 먹고 싶은 게 있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차려주는 대로 먹는 게 전부였다. 그러니 어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함께 살던 그때 만들어 줬던 것들로 멈춰 있는 것 같다. 카레, 두부조림, 소불고기 전골, 샌드위치는 예전의 모양과 맛 그대로다. 맛은 조금 변한 것 같다. 어머니도 입맛이 변해서 인지 음식 간이 안 맞을 때도 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해주는 것만큼 음식 만드는 사람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는 게 없다. 나도 차라리 먹고 싶은 걸 먼저 말했으면 받으러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을 수도 있다. 무조건 챙겨주고 싶은 어머니, 그게 부담스러운 나. 어디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는지 찾아 올라가면 많은 것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글을 쓰며 하나씩 풀어보고 싶었다. 내 안에 꼬여 있는 걸 찾고 풀었으면 이제 어머니와 엉켜 있는 걸 풀 차례였다. 그래서 몇 주, 몇 달째 머리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냥 하자. 애초부터 부모 자식 관계가 묻고 따져서 만들어진 게 아니다.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나를 낳은 부모님은 나름 최선을 다해 키워주셨고, 여전히 부모역할을 해주고 있다. 자식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게 손익계산을 따지며 생기는 감정이 아니다. 나도 내 자식이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면 아무리 손이 많이 가도 해주고 싶다. 그저 먹는 모습 보는 게 좋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냥 받자. 엉킨 실타래는 언제 풀려도 풀리게 되어있다. 안 풀려도 그만이다. 


"한 냄비 끊였는데 카레 가루를 적게 넣었나 봐. 간이 심심해. 고형 카레 넣고 한 번 더 끓여야 할까 봐." 간을 본 아내가 말했다. 며 칠은 두고 먹어야 하니 입맛에 맞게 다시 끊이는 게 맞을 것 같았다. 늦은 아침을 먹은 아이들에게 할머니가 싸준 샌드위치를 꺼내자 하나 씩 집어 들더니 그 자리에서 먹어치웠다. 나도 반 조각 꺼내 맛을 봤다. 케첩 맛이 강했지만 어릴 때 먹었던 그 맛이었다. 두 조각을 더 먹었다. 그냥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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