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줄 알았다

나를 탓해야지 누굴 탓할까

by 김형준

해고의 충격에서 벗어나려면 최대한 빨리 아르바이트를 구해야 했다. 또다시 생활정보지를 파고들었다.

‘전단지 배포 / 4시간 근무 / 2만 원 / 원하는 시간 가능’


어이없는 해고를 만회해줄 수 있는 꿀 같은 아르바이트가 될 것 같았다. 당장 전화했다. 별다른 질문 없이 다음날부터 출근할 수 있냐고 물었다. 출근할 수 있다고 했다. 근무시간은 선택하라고 했다. 하루 중 전단지 배포 시간은 오전 4시간, 오후 4시간이었다. 오전은 6시부터 10시, 오후는 4시부터 8시까지였다. 오전에 일하면 오후 동안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일찍 일어나는 게 몸에 밴 때라 6시에 나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음 날 5시 반쯤 사무실에 도착했다. 전단지는 명함 크기였다. 그 안에는 ‘중고차 대출 알선’을 홍보하는 내용이었다. 배포 방법은 길가에 주차된 차량 운전석 유리 틈에 꽂기만 하면 됐다. 몸 쓸 일은 없었지만 4시간 동안 ‘길가에 주차된 차’에 명함을 꽂으려면 쉼 없이 걸어야 했다. 그때 내가 살던 동네는 성남 구 시가지로 거의 모든 골목이 경사지였다. 한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차가 올라가지 못할 만큼 가팔랐다. 그런 언덕길을 오르고 내리며 4시간 내내 걸어야 했다. 군대에서 평지 40킬로미터를 8시간 동안 걷는 행군을 한다. 그때랑 비교하면 경사가 가파른 골목길 20킬로미터를 4시간 동안 걷는 행군이나 다름없었다.

어떤 업종에도 경쟁사가 있기 마련이다. 중고차를 담보로 대출을 알선하는 대부업 또한 경쟁이 치열했다. 전단지를 꽂는 과정에도 불꽃 튀는 경쟁이 있었다. 전단지를 주차된 차에 빠짐없이 꽂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리 꽂혀 있는 경쟁사 전단지를 제거하는 것도 중요한 업무다. 내 것을 꽂으려면 남의 것을 빼버려야 한다. 지역이 넓다 보니 경쟁사와 마주칠 일은 드물다. 간혹 같은 동네를 돌다 보면 나보다 앞서거나 뒤 따라오며 서로의 전단지를 빼서 버리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한다. 성격이 괴팍한 사람을 마주치면 몸싸움이 나기도 한다고 미리 귀 뜸 해줬다. 고용주가 들으면 어이없을 수 있겠지만 나는 소심해서 그런 사람을 마주칠 것 같으면 알아서 피해 갔다. 그들과 마주쳐 불미스러운 일을 당할 바에 전단지를 안 꽂는 한이 있어도 모른 척 돌아서고 싶은 게 내 진심이다. 다행히 두 달 동안 그런 일은 없었다.

처음 1주일을 걸어보니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평지를 4시간 걷는 것도 만만치 않은 데 오르막과 내리막을 오가는 건 체력 소모가 더 심했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2주 간격으로 월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루 2만 원, 2주 24만 원은 적은 돈이 아니었다. 몸이 힘들 즘 현금이 들어오니 다시 힘낼 수 있었다. 꾸준히 하면 학비는 물론 생활비도 넉넉하게 쓸 것 같았다. 이런 기대는 두 번째 급여를 받으면서 불안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2주 치 급여의 절반밖에 나오지 않았다. 사장은 다음 주에 남은 절반을 주겠다며 계속 일할 걸 요구했다. 그 말의 뉘앙스에는 다음 주에 안 나오면 못 받은 돈을 안 줄 수도 있다는 의미로 들렸다. 돈만 잘 나오면 이만한 아르바이트도 없었다. 야간 수업을 들으니 근무시간도 괜찮았다. 못 받은 돈 때문에 그만 두기보다 참고 다닐 이유가 더 많았다. 왜 안 나오는지 묻지 않았다. 그냥 사정이 있는가 보다 생각했다. 계산이 밝은 사람은 이럴 때 꼬치꼬치 캐물었을 거다. 나는 계산도 안 밝고 따질 만큼 강심장도 아니다. 그리고 다음 주에 준다고 하니 일단은 믿고 계속 다니기로 했다. 첫인상부터 사장의 말투와 이미지는 마음에 안 들었지만 믿어보기로 했다.


새벽길을 반소매 옷을 입고 걸어도 땀이 나던 때를 지나, 긴 팔 옷을 입고 걸어도 땀이 안 나는 시기가 되었다. 그 사이 못 받은 월급은 2주 치가 되어있었다. 그러는 동안 묻고 따지지 않고 기다리기만 했다. 그만두고 다른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시간보다 계속 다니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만두면 못 받은 돈 마저 받을 방법이 없을 것 같은 불안 마음도 있었다. 일방적으로 일을 그만두라고 하지 않으니 일단은 참고 다니고 있었다. 사장은 묻지 않아도 매번 먼저 언제 주겠다고 알려줬다. 알려주기는 했지만 약속을 지킨 적은 없었다. 그리고 얼마 뒤 같은 시간 출근했는데 사무실 문이 잠겨 있었다. 다니는 동안 처음 있는 일이었다. 휴대전화가 보급되기 전이라 사무실 전화가 유일한 연락수단이었다. 불길했지만 오늘 하루겠지 생각하고 다음 날을 기다렸다. 다음 날은 정상 근무를 했다. 사장은 별다른 말없었다. 나도 물어보지 않았다. 어쩌다 하루 일이 있었나 보다 했다. 다음 날 출근하니 또 문이 잠겨 있었다. 낮에 사무실로 전화하니 연결도 안 된다. 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일단 하루 더 두고 봤다. 다음 날도 문은 잠겨 있었다. 낮에 사무실을 찾아갔다. 사장이 있었다. 별다른 설명 없이 그만 나와도 된다고 한다. 그럼 밀린 급여는 어떻게 하냐고 물으니 다음 주쯤 주겠다고 한다. 졸지에 직장을 잃었다. 못 받은 돈은 일단 기다려 보기로 했다. 앞으로 어떤 일을 겪게 될지도 모른 체 그동안 감사했다는 인사를 전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약속된 날짜에도 돈을 못 받았다. 전화도 안 받는다. 집 전화로, 공중전화로 번호를 바꿔가며 해봐도 내 전화인 줄 아는지 안 받았다. 사무실을 찾아갔지만 잠겨 있거나 여직원만 있었다. 내가 갈 걸 미리 아는지 갈 때마다 자리에 없었다. 새벽에는 문을 열지 않을까 싶어 몇 번 찾아갔지만 그마저도 허탕이었다. 3주를 끌다가 겨우 사장을 만났다. 미안한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줄 때까지 기다리면 내가 안 주겠냐는 식의 반 협박 말투였다. 그 말에 주눅 든 나는 더 이상 대꾸하지 못했다. 당연한 권리를 눈앞에서 빼앗기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못 했다. 결론은 며칠 뒤 주겠다는 똑같은 약속만 받았다. 몇 주를 끌다가 결국 포기했다. 더 이상 연락도 안 됐고 사무실도 비어 있었다. 새벽이슬 맞으며 가파른 골목을 오르내리며 벌은 2주 치 급여를 손도 못 쓰고 홀라당 날려 버렸다. 뒤늦게 후회가 들었다. 처음 급여를 받지 못했을 때 차라리 그만두었으면 이런 꼴을 안 당했을 것을. 아무 말 못 하고 너무 쉽게 사람을 믿은 이런 내 성격 때문에 내 이럴 줄 알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직장 내 필요악 뒷담화, 나는 대놓고 앞담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