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며 나를 돌아보았듯 책을 쓰면서 나를 돌아본다.
얻기 위해 읽었다면, 주기 위해 쓴다.
내가 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많은 이야기를 한다.
살아온 경험, 전하고 싶은 지식, 명확한 정보 등을 담아낸다.
이를 위해 자신을 돌아보고, 자료를 조사하고, 사례로 풀어낸다.
나의 경험을 전하기 위해 살아온 기억을 더듬어 본다.
그 속엔 행복한 추억, 아픈 기억, 좌절의 순간, 탄생의 신비, 천진난만한 웃음,
고뇌의 시간들이 담겨 있었다.
내가 겪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내가 줄 수 있는 가치는 유일하다.
나의 행복한 추억을 담아 내면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며,
나의 아픈 기억을 담아 내면 아픔을 이해하고 치유의 기회를 갖게 될 것이며
나의 좌절의 순간을 담아 내면 좌절을 딛고 희망의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나는 이별의 아픔을 겪었다.
살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겪게 된다.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레 멀어지는 이별도 있고,
감정이 상해 극단적으로 헤어지는 이별도 있고,
사랑의 유효기간이 경과한 서글픈 이별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이별은 새로운 만남으로 잊히게 된다.
죽음은 새로운 만남을 만들지 않는다.
두 해전 큰형과 이별했다. 새로운 만남을 기약할 수 없는 이별이다.
간다는 인사도 없이 홀연히 떠났다.
지병으로 인해 삶의 마지막 순간을 고통 속에서 홀로 마감했다.
그 순간 무엇을 떠올리고 있었을까?
육체가 고통 속에 시들고 있는 순간 정신은 무얼 기억하고 싶었을까?
두려웠을까? 순응하고 있었을까? 부정하고 있었을까?
누구도 알 수 없다.
내 기억의 마지막 모습은 평온해 보였다. 그나마 다행이다.
고통의 흔적이 담긴 모습을 보면 더 깊이 무너질 것 같았다.
형과의 기억은 그 순간 멈췄다. 더 이상 써 내려갈 여백이 없었다. 펜도 잃었다.
형을 잃은 아픔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
남겨진 가족들이 겪고 있는 아픔을 이해해야 했다.
나의 어머니는 세상의 1/3을 잃었다. 아니 어쩌면 모든 걸 잃으셨다.
작은형과 나는 가족을 이루고 있기에 큰형에 대한 애착이 더 컸을거다.
형을 지병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하셨다.
셀수 없는 날을 불안과 걱정으로 이어오셨다.
살 수 있다는 희망만은 놓지 않으셨다.
확고한 믿음이 힘든 시간을 버티기 해준 유일한 이유였다.
하지만 끝내 지키지 못한 후회는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후회로 인해 약해지실까 두려웠다. 당신의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시간을 드려야 했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안된다는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야 했다.
떼어 낼 수도 떨어지지도 않을 아픔이기에 다른 이유를 덧붙여 들여야 했다.
상대를 이해한다는 건 상대의 입장이 되어보는 거다.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하지만 무얼 해야 할지 아는 것만으로 위로가 될 수 있다.
상대도 특별한 걸 원하지 않는다. 채워질 수 있는 게 아님을 서로가 잘 알기 때문이다.
그저 내가 당신을 생각하고 있고, 힘이 필요하면 언제든 함께 하겠다는 마음만 알려주는 걸로 충분했다.
우리 가족은 큰형의 빈자리를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로 채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