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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Nov 02. 2021

나 같은 월급쟁이 꼭 있다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내 눈에 피눈물 난다

서른 살에 처음 이직을 했다. 그 후로 10년 동안 7곳의 회사를 옮겨 다녔다. 7곳의 직장을 옮겨 다니기 위해 수 없이 많은 곳에 이력서를 냈다. 직장을 다니면서 이직을 준비하기도 했고, 욱하는 성질에 뛰쳐나와 몇 달을 쉬면서 취업을 준비하기도 했었다. 자주 옮겨 다니다 보니 깊이 오래 알고 지내는 관계도 드물었다. 그 덕분에 재취업을 준비하면서도 지인 찬스를 사용한 적이 없었다. 아니 딱 한 번 있었다. 그러나 내 욕심 때문에 소개해준 분을 곤란하게 만든 적이 있었다.   

  

아무런 대책 없이 또 뛰쳐나왔다. 이놈의 성질을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았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그렇게 대책 없이 행동했다면 의아한다. 겉모습은 완전 모범생(?) 스타일이라 그런 오해를 한다. 다행인 건 내가 그렇게 행동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 짐작하고 이해해준다. 물론 그들의 이해를 바라고 행동한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순간 욱하는 성질을 참지 못해 만든 결과일 뿐이다. 그렇게 튀쳐 나오면 당장 구직활동부터 해야 한다. 아내에겐 미안하다는 말 뿐이다. 처음 한 두 번은 잔소리도 들었지만 횟수를 거듭할수록 아내도 슬슬 포기하는 눈치다. 오히려 홀가분하게 취업준비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갈 곳이 정해져 있지 않아 하루 종일 이곳저곳을 옮겨 다닌다. 피시방, 도서관, 카페 등  인터넷이 되는 곳을 전전한다. 수시로 올라오는 채용공고를 확인하며 입사지원서를 제출한다. 기업마다 정해진 양식을 제출해야 하는 곳도 있고, 채용사이트에 올려놓은 입사지원서를 받는 곳도 있다. 정해진 양식을 제출받은 기업은 매번 정성 들여 입사지원서를 써야 한다. 작성하는데만 두 어 시간은 족히 걸린다. 그렇게 정성 들여 입사지원서를 제출했던 회사가 하나 있었다. 몇 달 전에도 직장을 다니면서 지원했었다가 서류전형에서 떨어졌었다. 종합건설사 도급 100위 안에 드는 탄탄한 기업이었고, 채용 직무였던 ‘자재구매’를 꼭 해보고 싶었다. 마침 다시 같은 내용으로 채용공고가 올라와 있었다. 앞전에 제출했던 입사 지원서는 지우고 새 마음 새 각오로 새롭게 썼다. 반나절은 걸렸던 것 같다. 될 거란 믿음을 담아 이메일을 보냈다. 


며칠 뒤 연락이 면접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기운이 통한 것 같았다. 비장한 각오를 마음에 새기고 면접장에 도착했다. 나를 포함 다섯 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내가 제일 나이 들어 보였다. 면접관의 질문에 답도 제대로 못했다. 많이 묻지 않았다. 내가 바라는 결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간절히 바랐지만 준비가 부족했던 것 같다. 그래도 가늘게라도 이어져 있는 실은 끊어진 게 아니듯 기대를 안고 면접장을 나섰다. 언제 연락이 올지 모르는 막연한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기다리는 동안 지인 찬스를 알아보기로 했다. 전화번호부에 연락 가능한 지인을 뒤져봤다. 눈에 들어온 이름이 있었다. 두 해 전 같은 현장에서 소장님으로 함께 근무했던 분이었다. 그때도 나만 살겠다고 도망치듯 회사를 그만두었다. 말도 안 하고 도망친 건 아니었다. 미리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인수인계까지 마친 뒤 퇴사했다. 그러니 연락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소장님도 내 전화를 반갑게 받아주었다. 약속을 정하고 현장으로 찾아갔다.    

 

“소장님은 여전하십니다. 이 정도 공사 규모면 3년은 거뜬하겠습니다.”

“3년은 버틸 수 있지. 이제 시작이라 어수선하다. 너는 요즘 어디 있냐?”

“저 백수예요. 얼마 전에 때려치우고 지금 일자리 알아보고 있습니다. 빈자리 있으면 저 좀 써주세요.”

“안 그래도 직원 한 명 더 필요했는데 생각 있으면 자리 마련해볼까?”

“정말요? 그래 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소장님은 흔쾌히 자리를 마련해보겠다고 말했다. 물론 본사에 승인을 받아야 하니 며칠 기다리라고 했다. 며칠 뒤 연락이 왔다. 다녔던 곳에 다시 들어가는 조금은 민망한 상황이었지만 소장님이 힘써준 덕분에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감사의 인사를 전할 겸 다시 사무실을 찾았다. 이미 내 자리를 마련해 놓았고 다음 주부터 출근하라는 연락도 받았다. 기꺼이 다시 입사를 허락해준 회사에도 감사했다. 처음 보는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현장 분위기도 익힐 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지난주 면접 봤던 보람건설입니다. 최종 면접에 합격하셔서 연락드립니다. 다음 주부터 출근 가능하실까요?”

“네! 합격이요? 네 물론 가능합니다. 준비할 게 있을까요?

끊어질 것 것처럼 가늘던 실이 굵은 밧줄이 되는 순간이었다. 마치 운명의 장난 같았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소장님께 말하자니 웃긴 놈이 될 것 같고, 말하면 당연히 가지 말라고 할 게 뻔했다. 반대로 말을 안 하자니 놓치기엔 너무 아까운 기회였다. 퇴근할 때까지 고민만 하고 있었다. 결국 말도 못 꺼내고 퇴근하며 다음 주에 뵙겠다는 거짓말을 남긴 게 마지막이었다.    

   

뜬 눈으로 주말 밤을 보냈다. 일요일 밤 마음을 정하고 메일을 썼다. 수신자는 소장님과 본사 인사담당 임원이었다. 내 사정을 이해 바라는 구구절절 내용을 담았다. 한마디로 변명만 가득했다. 우유부단한 성격과 소심함 때문에 소장님은 물론 인사담당자까지 실없는 사람이 되었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실수를 하고 나서 어떻게 행동하는지가 그 사람의 됨됨이를 말해준다. 그때 나는 그걸 몰랐다. 단순히 내 욕심만 챙겼다. 그들이 난처할 거라는 걸 짐작은 했지만 적적하게 대응하지는 못했다. 처음부터 나의 필요에 의해 찾아간 자리였고, 나를 위해 기꺼이 애써준 그들의 수고를 외면해버렸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고 했다. 내 욕심은 결국 두 달 만에 끝났다. 입사하고 알게 되었다. 내가 탐냈던 자리는 그 회사에서도 이직률이 높기로 유명했다. 팀장은 0.1도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초고층빌딩처럼 곧게 뻗은 성격을 가졌고 이를 버텨내는 팀원이 드물었다. 타 부서의 부러움을 살 만큼의 살인적인 업무량도 한몫했다. 그래서 수시로 채용 공고가 올라왔다는 걸 그때야 알게 되었다. 결국 내 발로 도망쳐 나왔다. 다시 백수가 되었지만 아무에게도 연락할 수 없었다. 내가 자초한 잘못된 선택 덕분에 몇 달을 백수로 지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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