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준 Nov 03. 2021

작가님은 출판사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나요?

오후 4시. 집 앞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이른 퇴근 덕분에  카페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집에는 7시까지만 들어가면 아무런 의심받지 않는다. 이런 여유도 있어야 숨 쉬며 살 수 있을 것 같다. 처음 보는 번호로 전화가 온다.


"ㄱ출판사 ㅇㅇㅇ이라고 합니다. 김형준 작가님 맞으시죠?"

"아, 네 맞습니다. 안녕하세요."

드디어 계약인가? 출간 거절은 메일로 보내는 게 보통이고, 계약 진행은 전화 연락한다고 들었다.

"투고해 주셔서 연락드립니다. 내용을 보니 에세이네요. 근데 출간 기획서에 판매전략 같은 내용이 없어서요, 혹시 생각하고 계신 홍보 방법이나 선 구매 부수를 알 수 있을까요?"

"아, 홍보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진 않았는데요."

"그러시군요. 저희가 출판 한 번 하면 보통 1천만 원 이상 드는데 출판사에 남는 게 없다면 작가님 이름만 알리는 수단밖에 안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보통 자비 출판이나 반씩 부담을 하거든요. 혹시 그럴 생각은 없으세요?"

"아니요. 아직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혹시 생각 바뀌시면 연락 주세요."


좋다가 말았다. 기분이 확 가라앉는다. 단 게 당긴다. 단골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과 초코빵과 생크림으로 탑을 쌓은 케이크 하나를 주문했다. 한 입씩 먹으며 통화내용을 곱씹었다. 지난번 투고 때도 이런 전화를 몇 통 받았다. 그때도 기분이 좋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내 원고가 매력이 없으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방금 전 통화도 그때와 같은 내용이긴 하다. 출판사 입장만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인지도 없는 작가에게 책을 내주는 건 모험이다. 물론 초보 작가라도 원고 내용에 따라 기꺼이 출간할 수도 있다. 옥석을 가리는 건 어디까지나 출판사 고유 권한이다. 그런 혜안이 출판사 생존과 직결되니 왈가왈부할 수 없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과연 내 원고를 충분히 검토한 뒤 전화를 한 걸까? 가능성은 보이지만  초보 작가라는 게 부담스러운 건지, 가능성도 없는데 작가가 부담하면 기꺼이 출간해 주겠다는 의미인지 의아했다. 두 경우는 분명 다르다. 전자는 내 글을 어느 정도 인정받은 거라면 후자는 단순히 장사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한다. 워낙 척박한 출판 시장에서 버티려면 어떤 방식으로든 책을 내는 게 기업을 유지하는 방법일 테다. 그리고 하루에도 수십 통씩 쏟아지는 투고 메일 중 쓸만한 원고를 발굴해 내는 것도 여간  일이 아닐 거다. 여러 사정을 십분 양보한다 치더라도 어떤 방식으로 출간 하든 원고를 검토 한 뒤 제안하는 게 순서라 생각한다. 혹여 운이 좋아 출판사가 부담하고 출간해도 바라는 결과가 안 나올 수도 있다. 그런 경우를 안 겪어 봐서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마 얼굴을 제대로 못 볼 것 같다. 책임감에라도 발바닥에 불이 나게 홍보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아는 사람 통해 다리에 다리 놓아서라도 어떻게든 팔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책이 좋고 나쁨은 결국 판매 부수에 따라서 결정될 테니 말이다. 출판사 관계자가 이 글을 읽으면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디까지나 내 주관이라는 걸 밝히고 싶다.


케이크 한 조각을 다 먹고 나니 설탕이 혈관을 타고 도는 느낌이다. 이것도 내 주관적인 느낌이다. 쓴 커피와 단 케이크로 떠있던 기분을 가라앉혔다. 결론은 뻔했다. 제대로 쓰자. 끌리는 글을 쓰자. 읽히게 쓰자. 그러려면 계속 써야 한다. 다시 초고 파일을 열고 이어서 썼다.  쓰고 싶다고 잘 써지는 것도 아니다. 한참을 들여다보고 겨우 몇 줄 쓴다. 또 한동안 창밖을 보다 겨우 몇 줄 쓴다. 그래도 기분에 휘둘려 안 쓴 것보다는 나았다. 작가는 쓰기 싫을 때도 쓰고, 쓰고 싶을 때도 쓰고, 써질 때도 쓰고, 안 써질 때도 써야 한다고 했다. 어떠한 상황에도 쓰면 작가요, 안 쓰면 아무도 아니라고 내가 말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 좀 놔줘요! 아니지 네가 못 놓고 있잖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