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하는 건 접어두기로
친구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친구니까 이해할 줄 알았다. 악담을 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화를 내야 했나? 그 자리에서 이해되지 않았지만 기분 나빠하는 모습을 보고 바로 사과했다. 한편으론 찜찜했다. 친구사이니까, 술자리에서 대화 중에 그럴 수 있는 것 아닌가? 나쁜 의도도 아니었고, 내가 잘나서도 아니었다. 걱정돼서 가볍게 던진 말에 그 친구는 불같이 화를 냈다.
추억을 공유하는 친구가 있다는 건 발 뻗고 편히 쉴 수 있는 내 방이 있는 것과 같았다. 언제든 나를 맞아주고 마음 편히 쉴 수 있게 해주는 존재다. 길가에 수북이 쌓인 낙엽처럼 아무렇게나 차이던 20대를 지나고 있을 때였다. 일 년 중 하루 저녁 고등학교 동창을 만날 때면 길바닥 낙엽 대신 첫눈처럼 귀한 대접을 받았다. 그만큼 서로가 서로를 귀하게 여겼다. 맛있는 음식과 술을 사이에 두고 한 해 동안 쌓아두었던 말보 따리를 풀어놓는다. 엿 같은 상사 험담, 썸녀를 사로잡을 방법, 뼈 빠지게 일해도 채워지지 않는 통장과의 거리감. 술이 들어갈수록 말을 토해냈다. 망치질을 잔뜩 당한 쇠를 불에 달구기 전 찬물에 담그듯 정적이 흐르는 때가 있다. 그때 친구 J가 괴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나 조만간 회사 잘릴 것 같다.”
“왜? 무슨 일 있어? 회사가 어렵냐?” 옆에 앉은 친구가 물었다.
“일도 줄고 월급도 안 나오고 분위기가 별로야.”
“잘 다니고 있어서 괜찮은 줄 알았더니 아닌가 보네. 걱정이 많겠다.” 다른 편에 앉아 있던 친구가 말했다. 듣고 있던 다른 친구도 같은 마음이었을 거다. 너나 나나 별 다를 것 없는 처지여서 누구보다 공감했을 터였다. 듣고 있던 한 친구가,
“야! 세상 뭐 있냐 그냥 생긴 대로 살고 사는 대로 열심히 살면 되는 거지. 오늘은 그냥 즐겁게 마시자, 건배 한 번 하자!” 이미 술이 그 친구의 혀를 말아먹은 것 같았지만 ‘건배’라는 단어는 또렷이 들렸다. 술잔을 부딪치며 눈으로는 서로를 응원했다. 그때 ‘동창회장’이라는 감투를 빌려 내가 한 마디 했다.
“야! 회사에서 잘리면 나한테 말해, 내가 너는 책임져 준다.” 술자리니까 이 정도 말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별 의미 없이 던진 말이었다.
“야 이 새끼야! 네가 잘 나면 얼마나 잘났다고 그딴 소리를 하냐! 네가 얼마나 대단한 회사를 다니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라! 책임져? 뭘 어떻게 책임질 건데? 사업한다고 눈에 뵈는 게 없냐?”
감정이 잔뜩 실린 말이었다. 말을 하면서 감정이 격해지는지 자리에 일어서기까지 했다. J의 반응에 나도 당황했다.
“아니, 별 뜻 없이 한 말을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여.” 내 의도와 다르게 이해한 J에게 날을 세워 말하기보다 진정시키는 쪽을 택했다. 별 효과가 없었다.
“별 뜻 없이? 직장에서 잘리는 게 너한테는 별 일 아니지? 좆나 가볍게 말하네. 너 원래 그렇게 재수 없었냐?” 괜한 말을 또 했다. 내 의도가 어떠하든 일단 J를 진정시켜야 했다.
“정말 미안하다. 기분 나빴다면 진심으로 사과할게.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잘나서 그렇게 말한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라.” 옆에 있던 친구들까지 말리면서 겨우 상황이 마무리됐다. J는 그 기분에 더는 술 마시기 싫다며 자리를 떠났다. 서로의 오해를 풀지 못하고 헤어졌다. 나도 소심한 편이라 먼저 사과할 용기를 못 내고 있었다. 이대로 그냥 시간이 해결해주길 기다려야 하나? 먼저 연락을 해볼까? 연락하면 받아줄까? 내 마음 편하자고 너무 성급하게 행동하는 건 아닐까? 한동안 불편한 마음으로 지냈다. 내가 불편해하는 걸 하늘도 아셨는지 기회가 생겼다. 얼마 뒤 장례식장에서 마주 앉았고 이날 있었던 일에 대해 정식으로 다시 한번 사과를 했다. J도 그렇게까지 화를 낼 일이 아니었는데 심란한 마음에 탓에 말이 지나쳤다고 같이 사과했다.
20년 전의 일이었다. 그때 나는 대화에 서툴렀다. 하고 싶은 말만 할 줄 알았지 상대방의 말에 공감하는 방법을 몰랐다. 친구의 푸념을 이해하고 공감했다면 그렇게 허세 부리듯 내뱉지 않았을 거다. 그 일로 나는 말하기 전 한 번 더 생각하게 됐다. 그러나 말을 조심하려고 생각만 했지 고치려는 노력은 안 했던 것 같다. 서툰 부분이 있었다면 고쳐야 했다. ‘혀는 무거울수록 좋다’는 말은 나 같은 사람에게 필요한 말일 수 있다. 하지만 혀가 무겁다고 서툰 대화 실력이 나아지지는 않는다. 올바르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의 혀의 무게는 상대방을 배려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겐 그저 불편한 침묵일 뿐이다.
2018년부터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책을 통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배웠다. 배운 걸 나에게 적용해보기 위해 내가 경험했던 상황을 글로 적었다. 한 장면씩 적으며 상대방의 감정을 짐작해봤다. 나라면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나라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그 상황에 적절한 표현은 어떤 게 있을까? 무엇이 문제였고, 어떤 부분을 고쳐야 하고,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대화를 할 수 있는지 글을 쓰며 하나씩 배웠다. 다양한 상황을 글로 적어보며 그에 맞는 표현을 배우고 있다. 아마도 20년 전에 그 일을 겪고부터 달라지기 위해 연습했다면 지금쯤 더 능숙하게 대화할 수 있었을 거다. 읽고 쓰고 배우며 혀의 무게에 대해 생각한다. 말 한마디가 친구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타인이 받은 상처를 위로하고 다친 마음을 치료하는 건 말 한마디에서 시작된 다는 걸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