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준 Dec 21. 2021

아내를 꼬셨다

대학원 합격을 축하합니다.

아내도 책을 읽기 시작했고, 1년 정도 된 것 같다. 시작이 아름답지는 않았다. 몇 달간 이어진 다툼이 겨우 한 가닥실로 매듭을 진 뒤였다. 단순한 호기심에 책을 꺼내 들었다. 내가 책에 미친 이유를 아내도 알고 싶다는 거였다. 경쟁하듯 읽어나갔다. 시키지 않아도 필사하고 생각을 기록했다. 무슨 책을 읽었는지도 적어갔다. 아내는 한 해동안 50 여 권 이상 읽었다. 이때부터 아내의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유치원 교사로 20년 넘게 일 하고 있었다. 오랜 경력 탓에  담임은 잘 안 시킨다고 했다. 아내 몫이면  5년 차 선생님 두 명을 채용하게 더 낫기 때문이다. 그러니 파트타임 밖에 할 수 없었다. 몸도 안 따라주는 것도 있고 조금씩 회의감도 든다고 털어났었다. 그런 상황이 기폭제가 되었던 것 같다.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새로운 일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책을 사 읽고, 인터넷을 뒤졌다. 언젠가 저녁밥을 먹으면 아내가 결심한 듯 한 마디 던졌다.

"나 대학원 갈래."

"그래! 잘 생각했어."

1초도 안 망설이고 맞장구쳤다. 나는 내심 바라고 있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경력을 살릴 려면 관련 분야의 공부는 꼭 필요했고, '아동놀이치료' 전공을 선택했다.


막상 선택했지만 걱정이 많은 눈치였다. 학비, 시간, 과제, 졸업 후 진로 등 선명한 게 하나도 없었다. 흔들리는 아내에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일단 시작하면 어떻게든 될 거야. 아직 원서도 안 썼는데 벌써 그런 걱정은 너무 앞서간다. 단순하게 지금만 생각하자고."

그 뒤로 모집요강 발표가 됐을 때, 입시 설명회를 듣고 나서도, 원서 접수하는 그 순간까지 망설임은 이어졌다. 그때마다 나는 아내를 다독였다. 큰 결심인 만큼 원하는 결과를 꼭 얻길 바랐다. 정해진 게 없으니 일단 끝까지 가보자고 당근도 내밀면서 말이다.


입시 설명회 며칠 후 원서접수 기간이었다. 자소서, 학업 계획, 지원 동기를 작성했다. 주말 동안 노트북에 얼굴을 묻고 있었지만 결과물이 신통치 않은 눈치였다. 아내는 직장을 옮긴 적이 몇 번 없었다. 이력서, 자기소개서 쓰는 게 어색하다고까지 했었다. 그러니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을 때부터 서류가 커다란 복병이었고 현실로 마주하니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던 거였다. 내가 나섰다. 허세 좀 부리며 기꺼이 봐주겠다며 거드름 피웠다. 아내는 눈 꼴 시렸을 거다. 굳이 그렇게까지 했던 건 아내가 기죽지 않길 바라서다. 운이 어느 정도 작용하는 게 전형일 테다. 운은 차치하더라도 최선을 다했을 때 후회가 덜 할까 싶어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없는 글재주 달달 그러모아 빨간펜을 꺼내 들었다. 아내에겐 미안했지만 냉정하게 봐줬다. 나도 대충 해서 후회를 남기고 싶진 않았다. 물론 무보수였다.


빨간펜 덕분에 아내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원서를 냈다. 며칠 후 면접 통보를 받았다. 덕분에 내 어깨도 한 뼘 더 올라갔다. 아내도 이제는 내 재주를 인정해줬다. 그간의 노력이 이 한 번으로 충분한 보상이 되었다. 이제 면접 준비였다. 나는 9번 이직 경험이 있다. 9번 직장을 갖기 위해 수 없이 면접을 봤었다. 대학원 면접도 다를 것 없다고 안심시키고 내 노하우를 마구 마구 풀어냈다. 여기서도 아내는 나를 의심하지 않았다. 내가 전하는 방법을 경청했다. 꼭 필요하고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알짜 팁 위주로 전달했다. 알려준 대로 활용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아내는 면접의 벽도 가뿐히 넘고 합격증서 손에 쥐었다.


진학을 준비하면서 불안함에 흔들릴 때면 단호하게 말했었다. 내 말에 아내도 다시금 결심을 다잡곤 했다. 내가 단호했던 건 일종의 유인이었다. 노후를 위한 자신만의 일을 갖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나도 어렵게 작가라는 직업을 선택해 아직까지 이어오고 있다. 나이 들어서 더 잘하기 위해 매일 노력 중이다. 아내도 그런 일을 갖길 바랐고 스스로 찾아 커다란 한 고비를 막 넘어섰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생각한 대로 안 될 수도 있다. 딱 하나만 기억했으면 좋겠다. 느리게 돌아갈 수는 있어도 포기만은 안 했으면 한다. 꾸준히 될 때까지 하는 게 유일한 성공 법칙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쓰고 보니 내 자랑만 잔뜩이다. 그래도 괜찮다. 아내를 꼬신 덕분에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고 결과가 이 정도라면 기꺼이 시도해볼 만하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술, 이제 너를 놓아주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