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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Dec 30. 2021

복지리탕을 사랑하게 되었다

내공이 상당하신 복어 전문점 사장님

점심으로 복지리탕을 먹었습니다. 원래 저의 점심은 샐러드 한 그릇이지만 해장을 바라는 상무님 손에 끌려 근처 식당을 찾았습니다. 입구 간판이 낡은 걸 봐서 같은 자리에서 오래 영업을 한 곳 같았습니다. 지하로 한 층 내려간 식당은 4인 테이블이 8개 있었습니다. 테이블 간격도 좁아 가게 안은 더 답답해 보였습니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고 회사가 많은 곳 치고는 손님이 두 테이블뿐이었습니다. 이게 현실이구나 싶었습니다. 모든 식당이 그런 건 아닙니다. 옆 건물 1층에 곰탕 전문점은 사람으로 붐벼 보였습니다. 사람이 없으니 한가롭게 식사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여 사장님 혼자 주방과 홀을 챙겼습니다. 주방과 배식대 손님 테이블까지는 두어 걸음으로 충분할 만큼 가까웠습니다. 그러니 혼자서 사부작사부작 음식을 차려줬습니다. 물 한 잔 따르고 수저 세팅하고 두어 마디 나누니 반찬이 차려집니다. 반찬은 어묵볶음, 깻잎장아찌, 파무침, 감자조림, 김치에 서비스로 고추장아찌까지 내줬습니다. 반찬도 양념을 최소로 재료 본연의 색과 맛을 살려 준비한 것 같았습니다. 반찬 한 두 개 맛을 보는 사이 한 번 끓여 낸 복지리탕이 가스버너에 올려집니다. 냄비를 덮은 미나리부터 맛을 보라는 사장님 말씀에 바로 젓가락을 들이댔습니다. 미나리는 부드럽게 씹혔습니다. 사장님 왈, 요즘 미나리 재배 기술이 좋아진 건지 좋은 미나리를 산 건지 모르지만 아무튼 씹는 맛이 좋을 거라고 합니다. 한 젓가락 덜어 고추냉이를 푼 양념장에 적셔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의례 뻣뻣한 미나리가 아닌 마치 잘 삶은 시금치를 씹는 것 같았습니다. 향도 자극적이지 않았습니다. 해장이 목적이었던 상무님도 미나리를 리필하며 만족해했습니다. 이분이 워낙 미식가여서 식재료가 국산인지 수입인지 생 인지 냉동인지 꽤나 따지는 분입니다. 별다른 말 없이 몸속에 남아있는 알코올을 빼내려 뜨거운 국물과 콩나물 미나이를 쉼 없이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이미 얼굴엔 땀인지 알코올인지 알 수 없는 액체로 흥건 했습니다. 


저는 복지리탕은 처음 먹어봤습니다. 복어살은 질겨 회는 비칠 정도로 얇게 뜬다고 알고 있어서 탕속 살이 질긴  줄 알았습니다. 착각이었습니다. 첫 입 물어 입에 들어온 살은 마치 수비드 방식으로 쪄내 저항감 없이 씹히는 닭가슴살 같았습니다. 씹을 것도 없고 목 넘김까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어느 곳에서나 같은 맛을 즐길 수 있다면 저는 앞으로 복지리탕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맛에 반해 손은 통제력을 잃고 밥 한 공기와 냄비 절반 가량을 먹어치웠습니다. 샐러드로 점심을 대신했던 식사량에 비하면 과식을 넘어 폭식에 가까웠습니다. 먹는 동안 사장님은 익숙한 듯 이런저런 세상 일을 중계해 줬습니다. 최근 뉴스를 꿰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사장님의 내공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손님과 거리감을 줄이고 격이 없이 편안하게 대화하는 것입니다. 경력이 부족하거나 덜 사교적인 사장님은 멀뚱멀뚱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거나 틀어놓은 TV만 보고 있습니다. 먼저 말을 걸어주고 대화를 이끄는 게 만만한 건 아닙니다. 말 그대로 먹는장사를 오래 해 온 경험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움입니다.  손님이 밥을 먹든 술을 한 잔 하든 그 자리에 늘 있던 것처럼, 자신의 역할이 처음부터 정해져서 아무렇지 않게 하나가 되는 존재. 


최근 어려움을 겪는 업종 중 식당을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는다고 해도 언발에 오줌도 안 될 겁니다. 결국 스스로 살 방법을 찾아야 하고 못 찾는 분들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오늘 만난 사장님의 내공 정도라면 이 시기를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고,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손님으로 북적대는 식당으로 만들거라 믿어봅니다. 모든 자영업이 하루빨리 예전의 그 모습을 되찾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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