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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an 02. 2022

장기판 졸(卒)의 각오로

습작하는 김작가 - 22


남보다 책을 많이 읽다가 작가의 길로 들어선 사람들의 이야기는 흔하게 들을 수 있다. 작가들이란 족속은 책을 쓰는 존재이기 이전에 책을 읽는 존재이다. "닥치는 대로, 손에 걸리는 대로, 가리지 않고, 게걸스럽게, 순서와 체계도 없이 책에 빠져들었던 독서 체험을 해보지 않은 작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모든 작가들은 작품을 쓰기  이전에 남보다 책을 많이 읽는 다독가 들이었다." 그들은 또한 새로운 책을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글쓰기는 스타일이다》 - 장석주





글을 쓰는 건 누구나 시작할 수 있습니다. 쓰게 되는 계기도 사람마다 다양합니다. 어떤 이유에서 시작하든 글을 쓰는 사람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계속 쓰는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계속 쓰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다독가입니다. 다독의 의미에는 양도 있지만 오래 반복해서 읽는 이도 포함됩니다. 그들이 책을 많이 읽는 이유는 책만큼 글에 영감을 주는 건 드물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책을 통해 다양한 간접경험을 하고 이를 이용해 글감으로 활용합니다. 즉, 읽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쓰는 것 또한 장담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저는 글을 쓸 생각 없이 책만 읽었습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읽은 지 5개월 동안 100여 권을 읽고부터였습니다. 정말 무모한 도전이었습니다. 그때 꿰인 코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글쓰기에 재능이 없다는 건 금방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포기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실력이었습니다. 쉽게 포기하지 못했던 건 오기 같은 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오기가 생긴 계기도 책 때문이었습니다. 책을 놓지 않은 덕분에 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책 중에는 울림이 깊은 것도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책도 있었습니다. 그런 책들이 오히려 제 오기를 건드렸던 겁니다. '나도 조금만 노력하면 저 정도는 쓰겠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오만이었습니다. 책을 내기 위해 몇 번의 원고를 써보니 세상에 나온 책들이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그 자체로 대단한 성과물이었습니다. 그들의 노력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했습니다. 기를 쓰고 매달려도 책을 못 내는 나는 비교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더 매달렸던 것 같습니다. 처음은 오기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글 앞에 정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물었습니다. 왜 글을 쓰고 싶은지에 대한 물음은 여전히 답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묻고 답하고, 또 묻기 위해 책을 읽고, 읽고 나면 다시 쓰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니 글쓰기와 책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책을 읽고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계속 책을 읽었습니다. 직장만 다녀도 버거울 시간에 책까지 읽는 건 인생 일대의 도전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다 글까지 쓰려니 더 버거웠습니다. 둘 중 하나만 할까 고민도 했습니다. 그때 만약 하나를 버리고 하나만 선택했다면 지금 후회했을 것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 같습니다. 얼마 못가 남은 하나마저 포기했을 수도 있습니다. 분명 벽에 부딪히는 순간이 왔을 테고 그 벽을 넘지 못했을 겁니다. 다행히도 둘 다 놓지 않았기에 여러 번의 고비도 넘길 수 있었고 아직까지는 포기할 마음 없이 이어오고 있습니다. 지나온 시간 속에 저는 보잘것없었습니다. 남들만큼 책도 많이 못 읽었고, 이렇다 할 책 한 권 제대로 써내지 못했습니다. 비교의 감정에만 빠져있었다면 초라해서 못 견뎠을 겁니다. 비교의 감정이 안 들었다면 거짓말입니다. 그럴 때면 나 스스로를 다잡으려 노력했습니다. 책으로 시선을 돌리고, 글쓰기로 정신을 집중했습니다. 덕분에 오래 안 가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묵묵히 견뎌내니 지금은 슬며시 반쪽 명함을 내밀 정도는 된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저를 지켜본 주변 분들이 제 반쪽 명함에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책은 글을 쓰기 위해서도 필요했지만 제대로 살 수 있게 버텨주는 역할도 해줬습니다. 아직은 손이 덜 탄 책처럼 뻣뻣하기도 하고 잉크 냄새가 진한 초보 작가입니다. 지금까지는 닥치는 대로 읽고 손이 가는 대로 써 온 덕분에 지치지 않고 패기 가득 이어가고 있습니다. 직업으로써의 작가의 삶을 선택한 이상 더 치열하게 읽고 더 과감하게 써야 할 겁니다. 일단 장기판에 들어섰으니 졸(卒)이라도 죽이고 전사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 졸 이 과거의 모자라던 제 자신이 될 수도 있고, 경험해 보지 못한 베스트셀러일 수도 있고,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나은 삶으로 이끄는 영향력일 수도 있습니다. 장기판에 졸 이 제일 무섭다고 했습니다. 졸의 각오로 더 열심히 읽고 쓰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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