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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an 07. 2022

어휘력이 전부다

습작하는 김작가 - 24


글을 쓸 때 흔히 직면하는 어려움 중 하나가 가용 어휘의 부족이다. 문장과 단락들은 어휘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어휘력이 부족하면 당연히 글쓰기가 수월치 않을 것이다. 글쓰기는 어휘를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기본적인 원칙은 가장 먼저 떠오른 낱말을 쓰는 것이다. 물론 그 문장 속 다른 어휘들과 호응하고 아울러 생생하고 상황에 적합한 것이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글쓰기는 스타일이다》 - 장석주






서툰 저는 뒷북치는 경우 종종 있습니다. 뒷북이기보다 대화 자리에서 미처 꺼내지 못했던 말이 나중에 생각나는 겁니다. 이럴 땐 이 말을 할걸, 안 해도 될 말을 해버렸네 등 순발력이 떨어져 때를 놓치거나 눈치가 없어 실수를 하는 경우입니다. 더 안타까운 건 같은 실수를 또 한다는 겁니다. 다음엔 꼭 이렇게 말해봐야지 생각해놓아도 막상 같은 상황에서 또 같은 실수를 한다는 겁니다. 말주변은 머리로 느는 게 아닌가 봅니다. 대화법 책을 읽어보면 주어지는 상황에 알맞은 표현을 제시해 주고 연습을 꼭 해보라고 합니다. 실전 같은 연습을 해야 실전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글을 쓰는 것도 일종의 대화라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글을 도구로 독자에게 말을 겁니다. 독자는 글자화 된 작가의 말을 눈으로 읽는 동안 일종의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일 방향 대화이지만 작가가 어떻게 글을 쓰느냐에 따라 독자가 그 시간이 즐거울 수도 있고 지루할 수도 있습니다. 즉, 작가의 표현력, 어휘력에 따라 독자의 감흥도 달라진다는 의미입니다. 같은 표현이라도 상투적이면 독자는 금방 지루해집니다. 예를 들면, 꽃들이 만발했다, 거리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낙엽이 붉게 물들었다처럼 읽어도 별 감흥 없는 표현입니다. 누구나 쉽게 표현하고 어디서 읽은 듯한 어휘는 읽는 재미를 반감시킵니다. 심장을 때리고 무릎을 칠 정도의 비유나 의미를 담아내지 못한다면 적어도 눈에 보이는 대로 묘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주변이 선명했다. 그림자도 또렷했다. 길 옆에 이제 막 피기 시작한 꽃들이 보인다. 어지럽게 핀 개나리 옆으로 다소곳이 얼굴을 내민 민들레가 보인다. 몇 발 걸으니 벚나무가 보이고 가지 끝에 매달린 모아 무리 안에는 잔뜩 부푼 꽃잎들이 금방이라도 뚫고 나올 기세가 전해진다."   


잘 썼다고 할 수 없지만 이런 식으로 보이는 풍경을 구체적으로 쓰는 게 독자에겐 읽는 재미를 줄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평범한 단어를 대신할 수 있는 같은 뜻의 다른 단어도 찾아보는 겁니다. 이밖에도 독자의 눈을 붙잡아 둘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가장 효과적인 건 문장을 짧게 쓰는 겁니다. 호흡을 짧게 할수록 읽는 속도도 빨라지고 한 눈 팔 걱정도 줄어듭니다. 또 한 문장 안에 같은 단어 반복을 피하는 겁니다. 글을 말처럼 쓰다 보면 말할 때 버릇이 나옵니다. 스피치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쪼'라고 표현합니다. 기회가 있으면 자신이 한 말을 녹음해 들어보면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일정한 단어가 있습니다. 가장 많은 단어가 '이제'입니다. 저도 스피치를 배울 때 강사님이 지적하지 않았으면 모르고 넘어갈 뻔했습니다. 말할 때 '쪼'가 많으면 듣는 사람이 집중을 못 하고 의미 전달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고칠 방법은 연습밖에 없다고 합니다. 말을 할 때 의식하며 최대한 사용하지 않는 겁니다. 문장을 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침밥을 먹고 나왔는데 출근하다 보니 금방 배가 고파져도 또 아침밥이 먹고 싶네."  

이 문장에 아침밥이라는 단어가 반복됩니다.

"아침밥을 먹고 나왔는데 출근하다 보니 금방 배가 고파져 또 식사(빵을, 간식거리를, 요기를) 하고 싶네."

괄호 안에 다른 표현을 활용해 보면 읽는 재미를 줄 수 있습니다. 


글에는 정답이 없다고 하지만 좋은 글을 쓰는 데 몇 가지 원칙은 있습니다. 세계적인 작가의 화려하고 유려한 문장도 오랜 시간 반복된 연습에서 나온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모두에게 그런 문장을 쓰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냥 취미로 글을 쓴다면 그렇게까지 연습할 이유도 없을 겁니다. 다만 전문 작가든, 취미로 글을 쓰든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몇 가지 원칙을 배우고 이를 연습하면 얼마든 바라는 문장을 쓸 수 있다는 겁니다. 단점을 하나 꼽자면 때려치우고 싶은 감정이 불쑥불쑥 올라온다는 겁니다. 말이 좋아 배우고 연습하면 된다고 하지만 쓰면 쓸수록 내 뜻대로 써지지 않는 게 글인 것 같습니다. 의지는 타오르지만 꺾이는 건 순식간입니다. 그래도 가끔 절묘한 단어, 뒤 목이 서늘해지는 표현, 가슴이 쿵쾅 거리는 문장을 쓸 때면 이 맛에 글을 쓰는구나 싶습니다. 그런 단어가 표현이 문장이 아직 이쑤시개 끝에 묻은 검정 잉크만큼 적다는 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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