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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an 08. 2022

쉬운 듯 쉽지 않는 평이한 문장

습작하는 김작가 - 25


난해한 문장이 지성적인 사람의 문장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난해한 문장이란 독자의 독해력에 어리광을 부리는 문장에 지나지 않는다. 많은 사람에게 열려 있는 평이한 문장만큼 쓰기 어려운 문장은 없다.


《작가의 문장수업》 - 고가 후미타케






《세상을 향해 지랄할 수 있는 그냥 하기의 힘》 책 제목에  '지랄'을 읽더니 두 딸이 자지러지게 웃는 겁니다. 무슨 뜻인지는 알고 웃냐고 물어봤습니다.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그냥 웃기다는 겁니다.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단어 의미를 알고, 자주 썼기 때문에 새로울 게 없습니다. 아이들에겐 처음 보는 단어였고, 발음이 재미있었나 봅니다. 저도 제목에 끌려 집어 들었습니다. 지랄은 마구 법석을 떨며 분별없이 하는 행동을 속되게 이르는 표현입니다. 책이 말하는 내용도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앞뒤 재지 말고 일단 시작해야 성공이든 실패든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일상을 살던 평범한 직장인에서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180도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 일단 지르고 보니 못할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를 독자의 눈에 꽂히는 표현으로 지랄을 선택한 건 탁월했던 것 같습니다. 책 내용만 놓고 보면 '지랄' 만한 단어가 연상 안 됩니다.


책은 제목이 8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일 쏟아지는 책 중 독자의 선택을 받기 위한 첫 단추가 제목입니다. 내용이 딱딱할 수밖에 없는 경제경영, 철학, 인문은 제목부터 어딘지 모를 거리감이 있습니다. 《ESG혁명이 온다》, 《거대한 가속》 , 《나는 왜 내가 힘들까》, 《무기력이 무기력해지도록》 제목만 보면 호기심은 생기지만 손이 나가지는 않습니다. 책이 다루는 주제가 쉽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은 아니라 어쩔 수 없을 겁니다. 기존 생각을 깰 수 있는 건 이런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 아직은 읽을 준비가 안된 거라 생각합니다. 반대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니까》 , 《아무튼 술집》, 《우리가 돈이 없지, 안목이 없냐?》,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등 제목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전해집니다. 이런 장르의 글은 읽기도 수월합니다. 독자와 마주 앉아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내용을 하나씩 차근차근 풀어주는 것 같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장르를 구분하긴 했지만 무거운 주제도 위트 있고 이해가 잘 되게 적은 책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차이는 작가의 문장력에서 오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려운 주제를 어렵게 표현하는 건 쉽다고 합니다. 이 말은 어려운 주제를 다루는 전문가는 이미 관련 지식이 풍부하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 통용되는 전문 용어로 채우기만 하면 된다는 의미입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어려운 주제를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게끔 풀어쓸 수 있는 게 진정한 전문가라고까지 합니다. 전문용어를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쓰려면 고민의 깊이가 달라집니다. 



자본주의 자체에는 도덕적 나침반이 없다. 우리 주변에도 규제받지 않는 자본주의의 문제가 널려 있다. 행위자가 행위에 따르는 비용(또는 이익)을 부담하지 않는 외부 효과도 존재한다. 《위대한 가속》 중



'도덕적 나침반', '규제받지 않는 자본주의의 문제', '외부효과' 각각이 어떤 의미인지 사전 지식이 있다면 읽으면서 바로 이해가 가능할 겁니다. 이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읽고 나서 다시 곱씹어 봐도 여전히 이해가 안 됩니다. 물론 이 문장 보더 더 쉽게 풀어서 쓸 수도, 더 어렵게 쓸 수도 있을 겁니다. 저자도 이 부분이 고민일 겁니다. 어느 정도 수준에 맞춰 풀어내느냐의 문제입니다. 권위를 선택하느냐 소통을 택하느냐? 진정한 권위는 대중과 소통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권위와 소통, 둘 다 잡으려면 어려운 주제를 쉽게 풀어쓰는 능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글쓰기 책, 수업에서 한 결같이 말하는 게 있습니다. '쉬운 어휘를 사용하라' 같은 표현이라도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단어를 선택하라고 합니다. 쓰다 보면 만만치 않습니다. 단어 선택에서 항상 두 갈래 고민을 합니다. 권위냐 소통이냐. 제 문장력이 아직 권위를 가질 만큼은 아니라 소통에 집중하려고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내가 아는 단어 안에서 가장 쉬운 단어를 찾으려는 것도 공부가 필요합니다. 쉬운 문장은 얼마나 다양한 단어를 알고 있느냐와도 연결됩니다. 즉 문장력은 어휘력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어휘력은 다양한 독서와 많이 써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다양한 음식을 맛보려면 뷔페를 찾듯, 다양한 어휘를 배울 수 있는 것도 결국 여러 종류의 글을 써보는 게 최선의 방법일 겁니다. 가끔 늦은 밤 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백종원 대표의 스트리트 푸드파이터라는 프로그램을 봅니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길거리 음식을 전문으로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누구나 알만한 음식이 아닌 현지인에게 인기 있는 음식에 대해 세세한 부분까지 막힘없이 설명합니다. 그분의 설명을 듣고 있으면 누구보다 음식에 진심이구나를 느낄 수 있습니다. 조리 방법, 식재료, 향신료, 역사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함이 없습니다. 그건 그만큼 애정을 갖고 공부하고 탐구했기에 가능할 것입니다. 


누구나 읽을 수 있는 평이한  문장을 쓰는 것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글 쓴 이의 관심과 노력에 따라 소통할 수 있는 문장이 될지 그렇지 않을지 정해질 겁니다. 글쓰기의 매력도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도달할 수 있는 실력 수준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겁니다. 쓰면 쓸수록 부족함이 커지고 공부의 필요성을 실감합니다.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고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이 아닌가 싶습니다. 평이하고 공감 가는 매력적인 글을 쓸 수 있다면 쓰는 이 또한 매력적인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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