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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an 30. 2022

낯선 맛에 도전한다는 의미

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는 건

 '감히 라면 주제에'라는 카피로 광고 중인 라면을 한 봉지 더 준다는 말에 혹해 4개 들이 한 팩을 샀습니다. 이정재의 외모만큼이나 포장은 깔끔했습니다. 깔끔한 포장 덕분에 마트에서도 금방 눈에 띄었던 것 같습니다. 2주 동안 묶혀 두었다가 어제 처음 끓였습니다. 두어 달에 한 번 라면을 먹지만 그때마다 '라면은 신라면이지'를 속으로 외치며 습관처럼 끓여 먹었습니다. 습관처럼 먹던 라면 대신 새로 산 라면을 먹는 데는 나름의 준비 기간이 필요했었나 봅니다. 건더기는 지금까지 먹어본 라면 중 양과 다양함에 최고점을 주고 싶습니다. 국물은 사골을 우려 내 액상으로 만들었다고 했지만 저 같은 막 입이 다른 라면 맛과의 차이점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입안의 모든 미각을 동원해 맛을 보았지만 라면은 그냥 라면인 것 같았습니다. 아마 신라면에 익숙해졌던 탓에 새로운 라면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낯선 맛에 도전하는 게 인생을 걸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 신중을 기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2018년 1월 1일부터 제 인생에 책이 들어왔습니다. 43년이 걸렸습니다. 4년을 꽉 채우고 5년째 접어들었습니다. '인생 뭐 있어? 살던 대로 사는 거지'라며 매일을 의미 없이 흘려보냈 던 것 같습니다. 살던 대로 살면서 낯선 도전을 할 이유도, 어제와 다른 삶을 살아야 할 이유를 가질 필요 없었습니다. 정답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정답을 찾으려고 안 했습니다. 신라면 대신 다른 라면을 먹는 건 배신인 것처럼 말입니다. 

책을 손에 들 때도 두려움은 있었습니다. 책을 읽는다고 얼마나 달라질 수 있겠어? 책이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겠어? 믿지 않았지만 뚜렷한 대안이 없으니 일단 집어 들었습니다. 몇 권을 읽다가 포기해도 미지는 장사는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까짓 다른 라면 한 번 먹는다고 신라면이 도망을 가겠습니까? 세상에 신라면만 라면이 아니었습니다. 신라면이 내 입맛에 맞는 건 인정하지만 다른 라면도 충분히 맛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책이 43년 인생에 끼어들었습니다. 그리고 4년을 꽉 채웠고 5년째 접어들었습니다. 그 사이 책이 글쓰기를 낳았고, 지금까지 애지중지 잘 키워오고 있습니다.      


잘 키운 덕분일까요, 글이 모여 책이 되었고, 책이 된 덕분에 작가라는 직업을 가졌고, 작가라는 타이틀이 생겨 강의까지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강의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입니다. 내 삶이 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입니다. 물론 내가 어떤 강의를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집니다. 누구나 처음은 두렵기 마련입니다. 저처럼 새로운 라면을 맛보는데도 2주의 시간이 필요하듯, 낯선 이의 강의를 듣는다고 선뜻 자신의 삶 속으로 받아들이긴 어려울 겁니다. 라면 한 봉지를 내 손에 쥐기까지도 샐 수 없이 많은 광고에 노출될 겁니다. 하물며 얼굴도 본 적 없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이의 강의를 선뜻 듣겠다고 용기를 내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울타리를 치고 그 너머에서 '당신이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두고 보겠어'라는 마음이 가장 먼저 들 겁니다. '당신이 이만큼의 돈을 원한다면 기꺼이 내겠지만 적어도 몇 배로 돌려줄 자신이 있어야 할 거야'라며 계산을 합니다. 당연합니다. 낯선 이의 강의를 듣겠다면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강의를 듣는 건 돈을 떠나 내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겠다는 의미이고, 시간의 가치를 돈으로 따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21일 과정에 1만 원을 받았습니다. 두 번의 강의를 통해 글쓰기에 도움이 될 내용과 동기부여를 해줬습니다. 지난 금요일, 과정이 끝났습니다. 저를 포함 다섯 명이 3주 동안 함께 글을 썼습니다. 하루 10분, 15분 동안 글을 썼습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글을 썼습니다. 네 명 모두 기꺼이 완주해 줬습니다. 그보다 더 의미 있는 건 스스로가 글을 쓰는 이유를 찾게 되었다는 겁니다. 매일 10분 동안 쓴 글을 통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자신과 흐릿했던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제가 전하고자 했던 글쓰기의 의미를 기꺼이 당신들의 삶 속으로 받아들였다는 겁니다. 4년을 꽉 채워 우려낸 제 맛을 기꺼이 선택해 주었습니다. 각자에게 같은 맛이 나지는 않을 겁니다. 살아온 삶의 모습이 다르듯 입 안을 채우는 맛도 다를 겁니다. 단맛이 날수도, 쓴맛을 느낄 수도, 매운맛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맛을 느끼더라도 새로운 맛에 도전했다는 게 중요합니다. 여러 맛을 경험해봐야 자신이 어떤 맛을 낼 수 있을지도 알게 됩니다. 앞으로도 매일 글을 쓰면서 자신의 맛을 찾아갈 수 있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들 곁에서 저도 더 깊은 맛이 나도록 함께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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