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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Feb 04. 2022

어쩌다 한 번, 아버지 찬스

정신줄 놓지 말자

7시 20분, 발행 버튼을 누르고 한 숨 돌린다. 데드라인을 지켰다. 미디엄 사이즈 아메리카노도 바닥이 보인다. 노트북을 케이스에 담고 마우스와 무선 이어폰도 원래 자리로 돌려놓는다. 가방을 둘러메고 주차장으로 향한다. 시동을 켜고 온열 시트가 예열되길 기다린다. 온기를 느끼며 핸들을 돌린다. 사거리 교차로 세 개를 지나는 동안 오늘 할 일을 그려본다. 연휴 전에 제출한 계획서는 아직 검토하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오늘까지 두고 보고 내일 피드백을 받자. 오늘은 수정할 부분이 없는지 다시 한번 검토해보는 걸로. 그러려면 노트북부터 다시 세팅해야겠......노트북! 너무도 태연하게 출근했다. 사무실 노트북을 다시 가져갈 생각조차 못했다. 손 안 타게 책장 위에 올려놓은 게 화근이었다. 눈에서 멀어지니 존재 자체를 까먹고 있었다. 먼저 출근한 직원에게 눈도장을 찍고 다시 집으로 차를 몰았다. 다행히 출근시간 정체는 시작 전이다. 막힘없이 차를 몰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대신 가져다주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 오늘 미술 시간에 물감을 가져가야 하는데......"

"물감? 형이 쓰던 거 없니? 있을 건데 잘 찾아봐."

"찾아봤는데, 없는 색도 많고 있는 것도 얼마 안 들어있어서요."

"일단은 학교부터 가. 나중에 챙겨서 보내줄 테니까."

학교 갈 때 준비물을 챙겨가지 못하면 수업 시간에도 빈 손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식당일로 바빴던 부모님은 아침밥과 도시락을 챙겨주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다. 준비물은 한 번쯤 빼놓고 갈 수는 있지만, 도시락을 안 싸 보내는 건 용납이 안 되는 게 부모님의 원칙이었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하루 건너 하루 준비물을 챙겨야 했지만 늘 우선순위는 아니었다. 있으면 가져갔지만 없다고 유난을 떨며 챙겨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날도 물감은 도시락에 밀렸고 빈 손으로 학교에 갔다.

점심을 먹고 난 뒤 5교시 미술 시간이었다. 친구들 책상 위에는 물감과 스케치북이 자리하고 있었다. 내 자리에는 스케치북만 있었다. 그때는 친구들과 똑같지 않으면 창피함을 느꼈던 것 같다. 뭐라고 하는 친구가 없어도 스스로 주눅 들었다. 괜히 눈치만 보고 있게 된다. 그때 창가에 앉은 한 친구가 학교 안으로 오토바이 한 대가 들어온다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볼 수는 없었지만 수업 중에 외부인이 들어오는 건 흔치 않은 광경이다. 잠시 뒤 수위실에서 교무실로, 교무실에서 내가 있는 반으로 연락이 왔다. 아버지였다.

교실을 나와 운동장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운동장 한가운데 오토바이를 세우고 내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수업 중이었지만 전교생의 시선이 닿는 곳에 아버지와 나만 덩그러니 있었다. 낡은 오토바이에 두툼한 솜 옷을 입고 헬멧까지 쓴 아버지는 눈만 보였다. 운동장엔 아무도 없었지만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것처럼 내 행동은 어색했다. 솜옷에 헬맷을 쓴 아버지 모습이 반갑지 않았다. 빨리 이 상황이 지나갔으면 했다.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낚아채듯 받아 들고 교실로 뛰어갔다. 아버지가 돌아가는 모습도 보지 않았다. 교실에 돌아왔을 땐 아버지는 이미 가고 없었다. 


현관문 여는 소리에 놀랬까 싶어 도착 전 미리 문자로 알렸다. 아내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노트북을 갖고 다시 회사로 차를 몰았다.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을 땐 '부모님 찬스'가 있었다. 찬스가 필요한 경우는 많았지만 팍팍한 살림 탓에 부모님은 제 역할을 못해줄 때가 더 많았다. 나도 한 번 두 번 기대가 꺾일 때면 스스로 포기하고 적응하며 살았던 것 같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아버지가 물감을 싸들고 온 날은 그날뿐이었다. 더 이상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에게 한 번이었듯 아버지에게도 단 한 번뿐인 기억이었을 테다. 관심과 애정을 넘치게 줘도 모자를 때 단지 먹고사는 문제로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부모님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도 부모가 되어보니 조금은 짐작이 간다. 다행히 내 자식은 부모 찬스를 덜 경험하고 지낸다. 그때보다는 풍족한 일상을 살고 있어서 이기도하다. 돌이켜보면 아버지 모습이 부끄럽긴 했지만 '짠'하고 나타난 그때는 세상 누구보다 든든한 부모 찬스를 경험했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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